도넛 안에서 살기
'지속성장'
뉴스에서, 학교에서, 심지어 가정에서도 자주 듣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 나는 그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왜일까?
성장은 늘 옳은 것일까?
우리는 정말, 더 이상 성장하지 않으면 잘 살 수 없을까?
『도넛경제학』은 뜻밖의 도형 하나를 꺼내 놓는다.
도넛 모양의 이 도표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경제의 새로운 상상 지도를 그려낸다.
성장이 아니라 균형,
경쟁이 아니라 충분함,
그리고 무엇보다 공존의 조건을 묻는 그림이다.
케이트 라워스는 말한다.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되, 지구는 넘어서지 말자.”
도넛경제학은 이중의 경계를 그린다.
안쪽 원은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기초다.
물, 음식, 주거, 교육, 의료, 평등, 정치적 참여, 소득, 에너지 같은 것들. 이 안쪽보다 모자라면 사람들은 결핍 속에 놓인다.
반면 바깥 원은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생태적 한계다.
기후 변화, 생물다양성 파괴, 해양 산성화, 오염, 토양 침식.
이 경계를 넘어서면, 지구는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는다.
그리고 그 사이.
도넛의 중간 공간.
그곳이 바로 인간과 지구가 함께 번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성장’이라는 말에 매달려 있었다.
성장만 하면 모든 것이 좋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GDP는 산불이 나도, 질병이 퍼져도, 전쟁이 일어나도 오른다.
숫자는 늘어나지만, 삶은 점점 텅 비어간다.
더 빨리, 더 멀리, 더 많이.
익숙한 이 단어들이 이제는 지치게 만든다.
‘더 잘’이 아니라 ‘더 많이’를 목표로 삼는 삶은 결국 인간도, 지구도 고갈시킨다.
도넛경제학은 ‘탈성장’을 부드럽게 이야기한다.
무조건 멈추자는 게 아니다.
“무엇이 충분한가.”
질문을 바꾸자는 제안이다.
더 소비하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는 삶.
더 적게 가져도 불안하지 않은 사회.
더 많이 벌지 않아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구조.
도넛경제학은 이런 삶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2020년,
암스테르담은 도넛경제학을 도시 운영 원칙으로 채택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순환 가능한 건축 자재를 사용하고,
디지털 소외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공투자를 시작했다.
이 모든 시도의 방향은 하나.
“도넛 안에서 살자.”
누구도 결핍되지 않으면서, 지구도 넘어서지 않는 방식으로.
경제학이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도넛경제학은 내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선생으로서, 나는 성적보다 배움의 의미에 집중하고 싶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성공이 아니라 균형을 전해주고 싶다.
작가로서, 팔리는 글보다 오래 남는 글을 쓰고 싶다.
이 다짐들은 도넛의 안쪽, 사람과 지구 사이 어딘가에 놓여 있다.
나는 그 안에서 조금 더 다정하게, 조금 더 느리게 살아가고 싶다.
『도넛경제학』은 정답을 주지 않는다.
그 대신 다시 질문하게 한다.
“우리는 정말,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을까?”
☞ 2편〈도넛경제학은 실현 가능한가〉: 아름다운 이론과 복잡한 현실 사이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