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엽편을 다 쓴 뒤, 빈백에 몸을 기대며 '인연'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와 나눴던 대화보다, 그 순간을 더 아름답게 채색하는 것은 우상화했던 '그'가 아니라 '그'를 그렇게 바라보는 '그 시절의 그녀'였다.
그때의 그녀는 라푼젤을 동경했다.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에 모든 것을 걸 줄 아는 용기가 너무도 빛났다.
사랑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어버렸다.
첫 소개팅 날은 발렌타인데이 전날이었다.
그녀는 상대가 누구든, 인연이 닿든 아니든, 오랜 짝사랑이 남긴 씁쓸함을 지울 수 있길 바라며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세 달간 눈물과 콧물에 젖은 베개를 뒤로 하고, 새로운 인연을 기대하며 술을 끊고 멈췄던 스트레칭과 운동도 다시 시작했다.
약속장소에 도착한 그녀는, 사탕으로 만든 꽃다발을 든 상대를 보았다.
서로의 손에 든 선물을 보며, 또 서로에게 건네며 웃었다.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기분 좋은 시간이 이어졌다.
정류장에서 그가 '오늘부터 1일'이라며 그녀를 배웅했을 때, 설레는 마음으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소라의 ‘track3’를 선물하며 그녀의 탑을 부수고 다가왔다.
그가 꺼내 보이는 진심은 언제나 따뜻하고 진솔했다. 늘 그녀와 함께 하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덜컥 겁이 났다. 그의 눈부신 진심 앞에 자신의 마음이 너무나 나약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라푼젤의 사랑 동경하던 그녀는 그렇게 웃으며 시작한 인연에서 겁쟁이처럼 도망쳤다.
뜨겁고 순수한 열정, 이 단어가 주는 허상 때문에 그녀는 더욱 사랑을 어렵게 느꼈다.
인생이란 '사랑받고 싶은 마음, 사랑을 주는 마음 사이의 가느다란 줄을 잡고 하는 줄다리기'라고 한다면,
그 시절 그녀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