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사랑의 그림자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목도리를 선물하겠다며
한 올, 한 올 털실과 씨름하던 여자가
어찌하여 진심을 건네는 손 앞에서 도망쳐버렸을까.
그에게 이별을 말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이해할 수 없다는 그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했다.
지금 거울 속 그녀의 표정도 그와 다르지 않으리라.
현실 속에서 그녀는 엽편처럼
“인연이 아니었다”거나 “때가 아니었다”는 말로
그 시절의 자신을 간단히 정리할 수 없었다.
그 시절에 생긴 작은 균열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서로를 닿지 못하게 하는 거리가 되었다.
마치 오래된 집 벽에 생긴 금 같았다.
먼 곳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시선이 닿을 때마다
‘아, 여기서 갈라졌구나’ 하고 느껴지는 금.
그 벽에 걸린 그림은 용감했던 라푼젤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사랑 앞에서 주저하던 ‘그 시절의 그녀’가 있었다.
세월이 지나 보니, 짝사랑의 씁쓸함은 석 달 남짓이었지만 첫 인연의 씁쓸함은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 마음의 벽은, 첫사랑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조금씩 생겨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뜨겁고 강렬하기만 한 줄 알았던 시절,
그 진실을 처음 알려준 사람은 다름 아닌 할아버지였다.
푸른 하늘이 붉은빛을 띠기 시작하면, 멀리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왔다.
‘두다다.’
골목 어귀에서 그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대문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던 엄마가 황급히 뛰어나와 대문을 열면, 할아버지의 오토바이는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마당에 들어섰다.
어린 그녀가 보기에도 할아버지는 멋진 남자였다.
짙은 눈썹 아래 움푹 들어간 눈두덩, 오뚝한 콧날, 가지런한 치아와 힘 있는 얼굴선.
180cm가 넘는 키와 장대한 기골.
계절마다 다르게 멋을 낸 옷차림에, 항상 포마드를 바른 머리, 부츠를 신고 타던 오토바이까지.
철이 들고 나서야 알았다.
할아버지는 남편으로, 아버지로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어린 시절 그녀에게는 언제나 다정하고 든든한 보호자였다.
그래서 가족들과 할아버지 이야기를 나눌 때면,
서로 다른 사람을 떠올리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어느 여름날, 그 사랑은 여전히 뜨겁고 거칠었다.
할머니가 사 오신 요구르트를 한 모금 마셨다가 ‘푸악!’ 하고 뱉어버렸는데, 유통기한이 나흘이나 지난 것이었다.
안방에서 TV를 보던 할아버지는 그 요구르트를 재빨리 손에 쥐고, 계산대에 던지듯 올려놓았다.
“이 XX 같은 새끼들, 이걸 돈 받고 팔아?!”
실내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나선 그의 모습은 위압적이었다.
직원에게 요구르트를 억지로 먹이며 분노를 보여주는 장면은 매장 안 사람들을 숨죽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