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실을 넘기고 바늘에 꿰는 손길이 제법 익숙해졌다. 잠시 멈추고 무릎 아래로 늘어진 목도리를 들어 만져봤다.
손끝에 느껴지는 보드라움이 그에게도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바늘이 꿰어진 반대편, 목도리의 끝은 조금 엉성했다.
그동안 그를 향한 마음도 코를 뜨고 풀어낸 횟수처럼 서툴렀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엉성하고 서툰 내 호감도 잘 받아준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그를 꽤 오랫동안 지켜봤다.
그는 늘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주변엔 언제나 사람이 많았는데, 그건 그가 말을 참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혼란스러운 상황이나 과제가 막힐 때면 자주 그의 도움을 받곤 했다.
부드럽고 친절한 말씨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그의 모습은, 동화에서 튀어나온 기사님 같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훔쳐보고 싶지 않았다.
대신,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늘 그의 앞자리에 앉으려 애썼다.
곁눈질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를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관찰이 시작되자, 말 거는 일은 점점 줄었다.
나는 그의 대화, 그의 웃음, 그가 무리 속에서 섞이는 태도를 조용히 담아내는 데 더 집중하게 되었다.
무슨 용기였을까.
초록빛 나뭇잎이 붉고 노랗게 물드는 모습을 세 번이나 지켜봤더니, 나도 변하고 싶었던 걸까.
단풍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있던 그를 발견한 건, 졸음을 쫓기 위해 커피를 사러 가던 길이었다.
계속 그가 거기 있다면 말을 걸겠노라, 스스로에게 내기를 걸었다.
커피 두 잔을 들고 돌아왔을 때,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라비,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내가 내민 컵을 그는 말없이 받아 들었다.
눈빛이 스쳤고, 바람에 섞인 커피 향이 가슴 깊은 곳을 간질였다.
우리는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대화를 나눴지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쉴 새 없이 떠들었을까, 아니면 그가?
그렇게 둘만의 커피 타임은 꿈같이 나흘이나 계속되었다.
“넌, 나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어. 난 그렇게 완벽한 사람이 아니야.”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에겐 그래요.”
그 대화를 나눈 다음 날, 그는 그 벤치에 없었다.
커피 두 잔을 들고 앉은 나는, 그가 없다는 사실을 천천히 음미했다.
기다림의 쓴 맛에 처음으로 속이 시렸다.
'올해 크리스마스엔 특별한 선물을 해야지.'
하루 종일 털실 생각만 했다.
그가 겨울마다 입는 외투에 어울릴 만한 색, 촌스럽지 않으면서도 따뜻해 보일 색.
"솜씨가 서툴 테니까, 털이 굵고 풍성한 게 좋겠지."
뜨개방 사장님은 내 머뭇거림을 눈치채고 털실 하나를 권했다.
붉지도, 노랗지도 않은 그 중간에 있는 밤색.
사장님은 ‘멜란지 브라운’이라고 불렀지만, 내겐 그냥 ‘그의 색’ 같았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으면서도 따뜻한 색.
친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핵폭탄급 뉴스 아냐?”
“무슨 말이야?”
나는 목도리를 무릎에 내려놓고 친구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오늘 처음으로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다.
“너, 그 목도리 계속 뜰 거야?”
내가 귀 기울이자, 친구는 펜을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그 오빠, 다음 달에 결혼한대. 급했나 봐. 아기 먼저 생겼다더라.”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툭’ 하고 무너졌다.
친구는 더 이상 나를 보지 않았다.
다시 과제에 집중했다.
분명히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도, 바닥이 쑥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고, 무릎 위에 놓인 목도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실타래는 테이블 저편으로 또르르 굴러갔다.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방금 전까지 짜고 있던 털실의 감촉이, 목구멍을 막았다.
속이 울렁이고, 바닥이 기울었다.
마치… 내가 만든 이 목도리처럼, 눈앞이 엉성하게 풀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어두운 거실, 빈백에 기대앉아 그를 생각하며 글쓰기 모임에 낼 엽편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