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준비를 마친 그녀는 그제야 책상 위를 정리했다. 어제 마시던 커피가 담긴 일회용 컵, 뽑힌 스테이플러 심, 지우개 가루를 쓰레기통 속으로 쓸어 넣고, 구석에 밀려 있던 필기구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책상 한편에는 학생들이 건넨 간식과 편지, 그림, 손으로 만든 생활용품이 놓여 있었다.
작고 여린 손들이 건넨 것은 자잘한 물건들이 아니라, 잘 포장한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마치 과거에 그녀가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내민 마음 같았다.
그 마음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또 얼마나 쉽게 바뀌는지 그녀는 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모든 마음에 끝까지 응답해 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그녀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엄마! 아빠! 저거 사주세요!"라고 떼쓰는 아이는 아니었다.
시기에 맞춰, 트렌드에 맞춰 부모는 필요한 물건을 사주었다.
피아노 학원을 다닌 지 1년쯤 되었을 무렵, 아버지는 그녀에게 피아노를 사주었다.
처음엔 설렜다.
자신만의 피아노가 생겼다는 사실에 들떠 매일같이 '스와니 강'을 쳤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지는 아버지의 연주 요청,
특히 지인이 집에 올 때마다 준비 없이 무대에 올려진 기분이었다.
그때마다 가슴은 세차게 뛰었고 손가락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가족들은 연습 소리에 민원을 제기했고,
어느 날엔 할아버지가 TV 소리가 안 들린다며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피아노는 거실 한쪽의 장식품이 되었다.
그녀는 그 피아노를 원망하기는커녕 사랑했지만, 더 이상 음악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무렵 그녀는 만화책, 엽서, 수첩, 카탈로그 같은 것을 모으기 시작했다.
친구와 함께 만화책을 보고 굿즈를 사고, 서로 쓴 소설을 바꿔 읽고, 코스프레 축제장을 기웃거리던 시간들.
용돈을 아껴 하나씩 사 모은 것들은 온전히 자신의 세계였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물건들을 "잡동사니"라 불렀다.
“이 잡동사니 언제 버릴 거야?”
그녀는 차마 버릴 수 없었다.
기억이 담긴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그녀는 고모와 할머니 사이의 실랑이를 떠올렸다.
고모는 집 안 정리를 하며 고등학교 시절 고적대 퍼레이드에서 입었던 의상을 불쏘시개 삼아 버리려 했다.
그걸 할머니가 붙잡았다.
“아이고, 이건 안 돼. 이거 입고 단장했잖아. 그날 네가 예뻤는데.”
그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어른이 된 그녀는 더 이상 물건을 모으지 않았다.
그때 필요한 만큼만 쓰고, 순간에 몰입하고, 기록하고, 흘려보냈다.
무심한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그녀는 점점 자유로워졌다.
언제든 그녀는 마음을 쏟으리라 다짐했다.
이제는 엄마가 아닌, 남편의 익숙한 잔소리가 들린다.
“저쪽에 쌓인 물건 좀 치워.”
책은 책장에 꽂히지 못하고 거실, 주방, 침실을 떠돌았다.
그녀의 감정도 그 책들처럼 어딘가에 놓이고 흘러갔다.
누군가는 그것을 정리하지 못하는 습관이라 했지만,
그녀는 안다.
물건의 위치는 마음이 머무는 자리를 보여준다.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것들은 있다.
아이들과 다녀온 박물관 도록,
손수레에 실린 미술도구,
읽다 덮은 책,
구겨진 필사의 흔적,
오래된 노트북 속 글들.
그녀가 온전히 마음을 쏟은 순간들이 담겨 있다.
당장 그녀가 사라지더라도, 그 물건들은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말해줄 것이다.
그녀가 몰입했던 것들의 궤적은 글이 되고,
그림이 되고, 책장 속으로 잠들더라도, 그녀는 안다.
그 모든 순간마다, 그녀가 있었다는 것을.
최근 그녀의 눈길에 자주 닿는 것은, 몇 해 전 친구에게 선물 받은 말린 꽃다발이다.
이제는 싱그러운 향기는 없지만, 그날의 벅찬 감정이 옅어질 때까지는 곁에 둘 것이다.
책상 위의 선물들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그 마음들이 옅어지는 날이 오면, 그 물건들도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다하려 했던 흔적은, 분명 그녀의 일부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