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삼킨 부작용


그녀는 여전히 하루를 버텨냈다.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부엌을 지나 거실로 나아가는 동안, 마음 한편이 끊임없이 흔들렸다.

거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이 바닥에 길게 드리워져도, 그 빛은 마음을 데워주지 못했다.

지적이고 우아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은 여전히 꿈틀거렸지만, 현실은 늘 그 기대를 비껴갔다.

학력은 대졸에 불과했고, 꿈꾸던 교수의 길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결혼으로 얻을 거라 믿었던 편안함도, 남편의 그릇은 마음을 채워주지 않았다.


세상은 그녀에게 늘 간극으로 가득했다.

친구의 평가가 귓가를, 남편의 무심한 시선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회적 자리에서의 작은 실패는 마음을 더욱 무겁게 눌렀다.

과거 할아버지와 부모, 친구들에게 받았던 사랑마저, 스스로를 평가 절하하는 습관 속에서 희미해졌다.

가끔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할까.

나는 왜 충분하지 않은 걸까.’


하지만 그 질문의 답은 쉽게 오지 않았다.

불안과 분노는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칭찬받을 만한 일이 없으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일, 일상의 선택, 사회적 관계—모든 일은 성취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존재는, 현실 속에서 살아갈 힘을 조금씩 허락했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아이의 작은 손길 하나에도 살아 있음이 느껴졌다.

가끔은, 이대로도 좋고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가장 적은 에너지를 들여 이룰 수 있는 일부터 시작했다.

거실 탁자 위에 펼쳐진 그림책을 집어 들었다.

아이에게 한 페이지씩 읽어주는 목소리가 떨렸다.

읽는 동안에도 불안과 분노는 마음속에서 파도처럼 일렁였다.

아이의 눈빛은 따뜻하게 그녀를 따라왔지만, 그녀는 여전히 초조했다.

때론 작은 목소리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섰고, 아이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긴장했다.



하루가 끝나고, 아이가 침대에 누워 조용히 숨을 고르면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루가 끝났다고 해서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불안과 분노는 여전히 남아 있었고, 자신을 완전히 놓아주지 않았다.

그동안 삼킨 마음들은 질경이처럼 무성하고 질겼다.


그럼에도,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고, 작은 성취를 쌓아가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텨낼 수 있었다. 이 사실은 그녀에게 작은 기쁨이었다.

완전히 단단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살아 있음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하루를 버틸 이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