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각 집회 시작 시간을 겨우 맞출 것 같다. 보통의 집회는 주체가 있어 조직적으로 계획되고 행동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집회는 그렇지 않다. 교사 커뮤니티에 올라온 "일단 모이죠.답답해서 못살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로 시작된 모임이였다. 어떤 집단도 조직의 개입도 없이 교사 개개인의 자발적인 의사로 만들어진 행사였다. 부담스러울까동학년 선생님들과도 얘기하지 않고 오로지 혼자 가는 길, 마음이 착잡하다.
학창 시절 줄곧 선생님을 동경했지만 정작 대학은 일반대를 선택했다. 사범대 가라는 엄마의 성화를 못 들은 척 교육과는 무관한 과를 다녔고 졸업 후 일반 직장을 다니며 결혼 했다. 두 딸을 낳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교육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교사가 되고 싶다. 그것도 초등학교 선생님. 어린 딸들을 종일반 어린이집에 보내고 선생님이 되기 위해 밤늦도록 독서실을 다녔다. 운이 좋아 다시 대학을 다니게 되었고 30이 갓 넘은 나이에 나는 초등교사가 되었다. 발령 후 또랑또랑한 눈망울의 3학년 아이들을 마주하던 그날의 설렘과 감동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사각사각 연필 소리 가득한 교실을 둘러보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남달랐던 그날의 감회는 돌아가신 친정엄마 때문이었을 것이다. 늦깎이 대학생 딸 뒷바라지를 위해 손녀딸을 돌봐주던 친정엄마는 교대 4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날 나의 첫 제자들 앞에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엄마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이 될 거라고.
경력 17년 차 중견교사인 나는
젊은 후배의 허망한 죽음에 오늘 한없이 부끄럽다.
종각역에 도착하니 검은 옷차림의 수많은 선생님들이 가지런히 앉아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인원에 놀라고 흐트러짐 없는 선생님들의 태도에 더 놀랐다. 거리를 점거하고 집단 행동을 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선생님들은 종각 사거리 4개의 인도에 나누어 앉아 시종일관 차분하고 질서 정연한 모습이었다. 내가 앉은 2구역은 중앙무대와 뚝 떨어진 거리 탓에 마이크 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불평불만이 없었다. 이따금씩 구호를 따라 외쳤고 선생님들의 자유발언에 조용히 귀 기울이며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살갗은 따갑고 옷은 땀으로 흥건해졌다. 협소한 공간에 다리 오그린 채 오밀조밀 앉은 선생님들은 침울했다. 누구라도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무거운 분위기. 가방 속 젤리를 꺼내 주위에 앉은 선생님들과 나눠 먹어본다. 달콤하고 쫄깃한 걸 씹으니 그제야 기분이 좀 나아졌다. 옆자리 선생님과 눈맞춤 해본다.
“초등 선생님이세요?”
“네.”
그런데 억양이 친근하다.
“어디서 오셨나요?”
“대구서 왔어요.”
“혼자 오셨어요?”
“네. 아침에 KTX 타고 왔어요.”
“먼 길 오셨네요. 몇 학년 가르쳐요?”
“6학년요.”
“어, 저도 6학년인데. 힘드시죠?”
‘오늘도 무사히!’ ‘아이들과 감정적 거리두기!’ ‘내 잘못이 아니야.’를 수도 없이 되뇌며 하루를 보내는 6학년 담임. 사춘기 아이들과 씨름하는 고단한 일상을 누가 알아줄까. 동학년을 한다는 묘한 동지감에 친밀감이 확 느껴졌다.
선생님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정당한 교육활동이 아동학대로 변질돼 고소고발을 당했던 경험담에 자꾸만 울컥울컥 했다. ‘무너진 공교육과 교권을 되찾자’, ‘젊은 동료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라’라는 구호는 ‘교사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외침으로까지 커졌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맑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흐려지더니 비가 쏟아졌다.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데도 대열에 흐트러짐이 없다. 우산이 없던 나도 비를 고스란히 맞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옷이 젖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선생님이 한 분이 우산을 씌워주고 있었다. 뭐라 말도 못하고 꾸벅 감사의 인사만 했다.
비는 쏟아졌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그 사이 앳된 목소리의 교대생, 저연차 교사들의 소신발언이 이어지면서 집회도 종반으로 치달았다. 몇 곡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낭랑한 목소리로 나지막히 노래를 따라부르는 선생님들.
♫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하네
아름다운 꿈 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은 길 가는 우리들
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 가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것 희망을 노래하는 것...♫
소리없는 슬픔이 번지며 눈물이 흐른다. 24살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진 후배의 절망, 사랑하는 제자가 무서워 학교를 갈 수 없다는 동료의 두려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훌쩍임도 커져 갔다. 집회 종료 안내와 함께 우산을 씌워준 뒷자리 선생님과 옆자리 대구 선생님께 조심히 귀가하시라 인사를 하다가 또 왈칵했다. 눈물범벅인 선생님들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오후 4시 약속된 시간에 선생님들은 정확히 해산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고 일어섰다. 각 구역마다 배치된 경찰들의 안내가 이어졌다.
“종각역 혼잡하니 인근 다른 지하철역으로 흩어져 주세요.”
“네!”
똑 부러지고 우렁찬 대답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누가 선생 아니랄까 봐.
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교사다. 그래서 꿈도 소박하다. 나의 교실에서 아이들이 친구들과 즐겁게 공부하는 것. 거창하지도 않은 평범한 소망이 지금은 참 어렵다. 권한은 없고 책임만 엄중한 비정상적인 현실에서 교실 붕괴를 고스란히 보고만 있어야 하는 자괴감에 매일이 괴롭다. 하지만 교사이기에 이 모든 걸 묵묵히 받아들이고 감내온 선생님들. 일거리를 싸들고 퇴근해 밤늦은 시간까지 수업 준비를 하고 사비를 털어 아이들을 챙긴다. 힘든 아이들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동료들의 노하우를 배우러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좋아요’ ‘학교 오는 게 행복해요.’라는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에 모든 시름과 고단함을 잊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은 교사의 사명감만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까지 우리를 몰아넣고 있다. 아동학대라는 프레임이 두려워 그 어떤 정당한 훈육과 지도도 할 수 없는 우리의 처지가 참담하기만 하다.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너무도 창피하고 부끄럽다. 특히 부푼 꿈을 안고 학교에 첫 발을 내딛고 있는 어린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선배들이 외면한 문제가 이렇게 부메랑이 되어 우리를, 아니 젊은 그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할 줄은 몰랐다.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 거리에 뛰쳐나온 선생님들의 처절한 외침은 무너진 교단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경고임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