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라는 조직이 좋은 점도 많지만 아쉬운 점도 꽤 있다. 별로인 걸 꼽으라면 학년이 바뀔 때마다 정들었던 동료들과 헤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5년마다 근무지를 옮기며 인간관계에 지각 대 이동이 일어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끈끈했던 인연을 이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세 개의 학교에 근무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아이들과 유독 힘들었던 해 동학년 선생님들과의 끈끈한 유대로 그 시기를 잘 버티기도 했다. 독특한 교장 교감 선생님 스트레스를 함께 흉을 보며 유쾌하게 푸는 날도 있었다. 지금도 만남을 이어가는 모임을 손에 꼽아본다. 손가락 몇 개를 겨우 꼽는다. 비슷한 또래 모임도 있고 열 살 차이를 훌쩍 넘는 선배들과의 만남도 있다. 띠동갑 아래의 젊은이들이 노땅이 되어가는 나를 끼워주는 인연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짬뽕된 그룹도 있는데 어제 모임이 딱 그랬다.
10여 년 전 퇴근 후 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치면서 친해진 동료들. 살을 빼보려고, 친구를 따라서, 체력을 키워보려 일주일에 두 번을 만나 운동을 했다. 개인지도를 개인별로 받고 삼삼오오 게임을 하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흘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원도 늘어 일곱 살 조카가 등장하기도 했고 사춘기 아들딸이 참여하기도 했다. 수준 차도 들쭉날쭉해서 준 선수급 실력의 동료가 완전 초보를 상대로 게임을 뛰어주는 모습은 일반 동네 배드민턴 클럽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춤추는 셔틀콕 하나에 배꼽을 잡고 자지러지게 웃기도 하고 멋진 드라이브엔 “나이스~”를 연신 외쳤다. 실력도 늘어 헤어핀을 멋지게 넣어 포인트를 올리는가 하면 날카로운 드라이브를 주 무기로 상대 허를 찌르는 이도 있었다. 파워가 좋은 선생님은 하이클리어를 빵 빵 시원하게 날렸고 수시로 멋진 드롭샷도 찔러 넣었다. 운동엔 영 젬병인 나는 “얍!” 하는 기합 소리로 파이팅만은 국가대표급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자연스럽게 뒤풀이 시간으로 이어졌는데 이게 또 꿀맛이었다. 캬~~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켜는 순간 살을 빼겠다는 의지는 온 데 간 데 사라졌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안주 퍼레이드는 급식만 먹던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운동 모임이 점점 뒤풀이에 방점을 찍는 모임으로 변질해 갔다. 분명 배드민턴 모임인데 수시로 치맥 번팅을 하는 기묘한 교사 동아리였다.
이 운동 소모임이 수년간 지속된 건 순전히 두 분의 핵심 멤버 때문이다. 한 분은 대빵 언니시고 또 다른 한 분은 레슨 담당 스포츠강사 선생님이셨다. 대빵 언니는 운동 실력도 뛰어났지만 술 실력으로 우리를 휘어잡았다. 보통 교사들의 회식은 밤 9시를 넘기지 않는다는데 우리 모임은 늘 밤 11시까지 이어지곤 했다. 우리의 대빵 언니는 누가 소주를 먹는지 맥주를 짬뽕하는지 콜라만 들이키는지 칼같이 체크하며 구박하는 재주가 뛰어났다. 술자리는 늘 경쾌 유쾌 통쾌해서 대부분이 주량을 넘겼다. 그렇다고 멤버들이 모두 주당이었나, 그것도 아니다. 콜라 한 병 마시고도 만담을 펼치는 이도 있었다.
어느 해에는 우리가 주축이 돼 교내 교직원 배 배드민턴 리그전을 열었다. 후배 쌤과 복식경기에 출전했는데 대진운이 안 좋아 패배를 거듭했다. 결국 4경기 모두 충격의 전패. 뒤풀이 장소서 빈속에 소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혈관을 타고 알코올이 몸 구석구석으로 짜릿하게 퍼져갔다. 소주 한 병이나 먹었을까. 1차 식사 자리가 끝나면서 교장·교감 선생님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한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후에는 인사불성이 됐다. 결국 초임 발령받은 후배가 택시를 잡아 집 안방까지 데려다주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눈이 풀리고 혀가 꼬부라진 엄마 모습을 처음 본 딸들. 한 명은 학원으로 도망가고 한 명은 학원도 못 가고 변기통을 붙잡고 왝 왝하는 엄마 등을 두드려 줬다. 고백건대 내 인생 젤 창피했던 장면 중의 하나다.
또 한 분의 핵심 멤버는 핸섬 가이 ***선생님. 아이들 체육수업도 멋들어지게 했고 성격도 좋아 말 많은 누님들과 여동생들을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상대해 줬다. 매주 만나고 운동하고 웃고 떠들고 먹었던 건 어쩌면 훈남 선생님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의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슬픈 목소리의 여가수가 읊조렸듯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 우리 운동클럽도 멤버들이 한 두명씩 학교를 옮기기 시작하고 나까지 다른 학교로 발령 나면서 자연스레 해체됐다. 하지만 대빵언니가 어떤 언니인가. 방학 때는 손수 술과 음식을 준비해 놓고 집으로 불렀다. 그리고 제주도 강원도 단체 여행도 감행했다. 교육청을 옮기고 서울의 서쪽에서 동쪽 끝으로 이사를 하였어도 그 시절 언니 동생 친구가 보고 싶어 달려가는 우리들.
지난 주말은 코로나 이후 실로 오랜만에 만남이었다. 함께 산길을 걸으며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떨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술잔도 기울였다. 못 본 사이 대빵 언니는 완경 파티를 두 번이나 했고 중딩 아들딸들은 대학생이 되었다. 핸섬 가이 운동 선생님은 교단을 떠나 잘 나가는 양복맨이 되었다. 우리는 그의 멋진 변신을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여전히 수다는 끝이 없고 웃음소리는 하이톤이다. 이렇게 왁자지껄 웃어본 지가 얼마 만인가. 마스크 너머로 생기가 넘쳐났고 비로소 사람 사는 기분을 제대로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