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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May 07. 2024

나에게, 낭독

  

하루를 함께 보내는데도 목소리를 듣기 어려운 아이가 있다. 어쩌다 말을 걸어도 겨우 한 두개의 낱말만 내뱉는다. 학기초에는 대부분 낯설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적응의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입을 다문 채 고작 단답형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친구가 있다.  이런 아이 대부분은 책을 읽을 때도 목소리가 작다. 발음도 불분명해 귀를 쫑긋하지 않으면 내용을 알아듣기도 쉽지 않다. 앞으로 나와서 발표를 할 때면 불안한 숨소리, 방망이질에 요동치는 심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럴 때면 나는 가만히 아이의 어깨를 세게 안아주기도 하고 손을 꽉 잡아준다. 바들바들 떠는 아이를 감싸고 땀이 흥건해진 손을 쥐어주는 것, 사실 아이보다 지켜보는 내가 더 불안해서 하는 행동이다.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다른 친구들의 시선에 예민한 이런 아이는 마음이 착하고 여릴 가능성이 아주 높다. 친구들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도 곱씹어 보며 반추하는 아이, 끝임없이 주변을 살피며 자신을 들여다보며 사색에 잠기는 속 깊은 아이. 작년 제자 성찬이가 그랬다.


성찬이는 우리반에서 제일 말이 없는 남자였다. 목소리도에 힘이 없고 가늘면서 떨렸다. 하지만 성찬이에게 반전이 있었다. 학급회의 시간, 쉬는 시간을 지켜달라며 ‘쉬는 시간 인권법’ 제정 하려는 아이들 틈에서 유일하게 반대 목소리를 낸 아이가 성찬이었다. 조용한 성찬이의 의외의 모습에 아이들은 깜짝 놀랐다. 그 후로도 성찬이는 종종 의외의 모습을 보여줬다. 우리반 싸움닭 **이에게도 벌건 얼굴로 듣기에도 안쓰러운 불안한 음정으로 맞섰다. 책가방을 집어던지는 이런 행동도 폭력이라고, 친구들을 위협하는 거라고.  속으로 얼마나 망설이다 꺼낸 말이었을까.  성찬이의 한마디는 다른 아이들의 백마디에 해당하는 힘을 가졌다. 성찬이가 말을 하면 모두 귀를 기울였다. 말수가 적은 건 단점이 아니다.


누군가와 논쟁을 펼칠 때면 목소리가 떨리는가. 입이 바짝 마르는가. 침이 꼴깍 넘어가고 머리가 띵해져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리가 되지 않는가. 하고 싶은 말은 차고 넘치는데 제대로 전달한 게  없어 뒤돌아 눈물 흘린 경험은 없는가. 자신이 한없이 바보같이 느껴진 적은 없는가. 자존감은 한없이 바닥을 쳐 머리를 쥐뜯지는 않았나. 내가 그랬다

      

어렸을 적부터  심약했던 나는 부모님께서 다투시기라도 하면 불안감에 떨었다. 어른들이 이성을 잃고 핏대를 올리는 모습이 감당이 힘들어 숨기 일쑤였다.  그래서인지 학창시절은 물론 어른이 돼서도 누군가와 논쟁을 벌인 기억은 거의 없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상황이 되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거나 외면하며 회피했다. 그렇다고 내 생각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너의 의견에 반대야.' '나는 너와 다른 사람이야.' 속으로 수도 없이 말했다.


우리반 성찬이를 보며 어른인 나를 돌아봤다. 열세살 아이도 용기를 내며 할 말을 하는데 나는 언제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할 말을 할 수 있을까.  


낭독 동아리에 참여하면서 매일 낭독 연습을 하고 있다. 유명 아나운서들의 유튜브를 기웃거리고 북나레이터를 따라해보기도 했다. 그들이 해내는 낭송은  편안하고 쉬운데 직접 해보니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기 그지없다. 쉬울 것 같은 발음과 억양이 좀처럼 안됐다. 녹음을 해서 들어보니 소리가 낯설다. 불안하고 짧은 호흡, 온 몸이 굳어있다. 얕은 소리가 가슴에서만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있다.  


덩어리째 읽어라, 아랫배에 힘을 줘라, 장음과 단음 처리를 잘해라 등 수많은 조언들 중 단연 내 귀에 꽂힌 건 바로 이것이다.

‘몸의 힘을 빼라.’

그런데 이 말이 내게는 ‘마음의 힘을 빼라’로 들린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말하기란 기교를 배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뭘 두려워하는 걸까.  잘 보이고 싶은,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을 버리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자. 그럼 긴장할 일도 없잖은가. 잔뜩 긴장한 어깨를 내리고 뻗뻗해진 가슴에 힘을 빼자. 숨 한번 크게 쉬고 아랫배에 힘을 주며 하나 둘 셋 넷, 숫자 열을 세어보았다. 그리고 마음속 내 소리를 질러본다.  


따뜻한 시선을 스스로에게 고정시켜본다.  낭독의 시작도 나 자신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하는구나.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 나는 그걸 낭독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여정이 꽤나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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