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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May 15. 2024

"돈 받고 가르치니  스승이 아니잖아요!"

“그동안 연습한 거 담임선생님 앞에서 우리 멋지게 노래 부르며 연주해 봐요.”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우쿨렐레 강사님께 악기 연주를 배운 지 한 달 만에 실로 대단한 발전이었다. 고사리손으로 C 코드 G7 코드를 짚어가며 노래까지 부르는 모습은 어설펐지만 흐뭇한 광경이었다. ‘고맙다, 감동했다’라고 막 인사를 하려는데 이루가 대뜸 그랬다.

“그런데 선생님은 스승이 아니잖아요. 선생님은 돈 받고 가르치잖아요.”


순간 분위기가 쏴~해졌다. 그리고 아이들은 내 눈치를 보면서 한 마디씩 했다.

“야~~ 이루 인성 뭐냐!!”

“사람들은 모두 돈을 받고 일하는 거야.”

“선생님께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흥분한 아이들은 이루가 큰 잘못이라도 한 듯 마구 뭐라 했다. 적잖이 당황했지만, 혹시 한 아이를 공격하는 분위기가 될까 봐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아니야,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자기 의견을 얘기한 거니까 뭐라 하지 마. 우리 우쿨렐레 수업 끝나고 나중에 따로 얘기하자.”     


사실 우쿨렐레 강사 선생님께서 ‘스승의 날’ 이벤트를 준비한다며 연습할 때부터 부담스러웠다. 은혜, 우러러, 어버이, 보답…. 내가 봐도 이건 좀 오버다. 요즘 학교에서는 이런 노래를 부르지도 않을뿐더러 ‘스승’이란 말 자체도 거북했다. 이루도 분명 그런 느낌을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스승의 날 노래 부르고 연주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이루가 말한 건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본의 아니게 또 일방적인 설교를 해버렸다. 주변엔 우리가 감사함을 느끼는 분들이 참 많다. 길거리 청소 해주시 분, 불을 꺼주시는 소방관,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까지…. 그런데 사실은 그분들도 모두 돈을 받고 일한다. 그분들의 직업이니까 자기 할 일을 하는 거니까 감사는 할 필요가 없을까? 막 이러면서…. 부모님이 우리를 낳았으니 최선을 다해 키워야 하는 건 당연하니까 고마운 마음은 안 가져도 되는 거냐며…. 수많은 사람들의  성실한 노동과 노력으로 일상이 잘 굴러가고 너희들이 건강하게 자라니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표현하는 것도 공부라며…. 하지만  작년 선생님께 쓰는 스승의 날 편지 쓰기 행사는 교과시간에 따로 하지 않겠다고 했다. 예쁜 편지지와 봉투를 줄 테니 진심으로 원하는 사람만 가져가서 쓰라고 했다. 그리고 나한테는 절대 편지 같은 거 쓰지 말고 써도 받지 않겠다며 속 좁은 선생님의 뒤끝을 제대로 보여줬다.    

 

편지지와 편지봉투는 동이 났지만 그래도 뭔가 찜찜했다. 그냥 이렇게 넘어갈 수는 없겠다 싶었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두고 시험 예고를 했다.

“수능이라고 들어봤지? 오늘 그걸 볼 거야.”

“네? 뭐라고요?”

아연실색하는 아이들. 예고도 없이 시험 보는 게 어딨냐며 반발이 만만찮았다. 그리고 수능은 고등학생이나 보는 거 아니냐며 아는 척을 했다.

“응. 수능보다 더 어려울 거야. 놀라지 마.”

여기저기서 꿍얼꿍얼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시험지를 받아 든 아이들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선생님 이해능력시험- 선생님 영역’

“선생님 뭐예요~~ 진짜~~”

아이들은 객관식과 주관식 문제를 쭉 훑어보더니 씩씩 웃었다.

“진지하게 푸세요. 커닝 절대로 안 되고 주관식은 보너스 점수 있으니 최선을 다해 풉니다. 점수에 따라 ‘스승의 날’ 보너스 ‘파워(우리 반 화폐)’로 줍니다.”

보너스라는 말에 눈빛까지 반짝이며 갑자기 의욕을 불태우는 아이들. 사각사각 연필 소리가 진지했다. 그러다 자꾸만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자꾸 싱글벙글 웃었다.  

‘우리 선생님은 산을 좋아하는 초록색을 좋아할 거야.’

‘선생님 키? 160은 넘는 것 같은데….’

‘선생님 학교 오는 이유는 당근 공부 가르치려고 오시겠지?’

‘발크기는 나랑 비슷할 것 같은데….’

“어허~~ 시험 보는데 누가 떠드나…. 옆 사람 틀린 답 베끼지 마세요.”

한 놈이 뛰어나와서 자기 키랑 내 키를 대본다. 또 한 녀석은 내 발에 자기 발을 갖다 대본다.

“인제 와서 이러는 거 반칙입니다. 들어가세요.”

선생님 칭찬할 점 다섯 가지 쓰라는 주관식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라는 서술형 문제에 집중하라 했다. 아이들은 기막혀하면서도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칭찬을 다섯 개 쓰라고 했는데 **는 열 개를 썼네? 아우, 보너스 두 배 받겠다.”

그랬더니 제출한 답지 다시 가져가도 되냐고 묻는 아이도 있다.

“자자~~ 이제 그만 풉니다. 제출하세요.”

객관식 문제는 아이들이 채점하게 했다. 선생님의 취향을 맞출 때마다 환호성이 터졌다.

“앗싸 맞췄다. 피자보다 치킨이지!”

“우리 선생님 배달보다 식당가는 거 더 좋아할 줄 알았다니까!”

대박! 소름! 10개 중에 8개를 맞춘 친구를 괴물 쳐다보듯 봤다. 내 발 크기가 225라는 말에 믿을 수 없다며 앞으로 뛰쳐나오는 아이들. 신발 벗어 내 발에 갖다 대 보고는 입을 쩍 벌렸다. 객관식 문제에 비가 죽죽 내리는데도 좋아라 한다.      


아이들이 교과실로 이동수업 간 사이 주관식 답지를 봤다. 저마다 쥐어 짜낸 담임선생님 칭찬을 자꾸만 읽었다. 분명 보너스 받고 싶어 억지로 꽉꽉 채웠을 것을 알지만 그게 진심처럼 느껴졌다. ‘선생님은 스승이 아니잖아요. 돈 받고 가르치잖아요.’라던 이루의 답지도 보고 또 봤다. 귀여운 녀석. 암만해도 넌 내 손바닥 위야.      

"선생님은 스승이 아니잖아요 "라고 했던 이루의  답지.

30대 중반 같고, 나이치고 뱃살이 없고, 스트레스 많이 받을 텐데 탈모 없이 머리숱 많은 선생님은 자기 12년 인생에 진짜 선생님이라고 하는 허풍쟁이들. 비록 나의 각본 나의 연출이지만 스승의 날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한다, 아이들도 나를 사랑한다.’라고 마법 걸며 살고 있다.

재작년 제자가 요런 차림으로 교실을 찾았다. 동생들의 등장에 신기하다는 듯 모여든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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