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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Jun 09. 2024

삶이 잔인하게 느껴지는 순간

지방에서 근무하는 **형(그때는 학형을 줄여 남자선배를 형이라고 불렀다)을 보러 대학 동기와 오랜만에 뭉쳤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절 수년을 함께한 이들과 만남은 늘 유쾌하다. 학보사 기자로 캠퍼스와 시위현장을 종횡무진이던 스무 살의 이야기는 기억만으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얼마나 건강했는지, 주체 못 할  젊음으로 얼마나 분기탱천했는지 그때를 추억하는 시간은 깔깔깔 웃음으로 시작해 눈물과 한숨으로 마무리된다.


“현미야, ~~이가 보고 싶다. 그리워 미치겠다.”

1년여 전 떠난 친구의 죽음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형은 술만 먹으면 울먹거린다. 그 시절 젊은이들의 화두였던 조국이니 통일이니 민주주의니 이런 거창한 담론을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 평생을 부둥켜안고 놓지 않았던 푸른 꿈을 제대로 그려보지도 못하고 스러져버린 한 인간에 대한 안타까움은 우리를 매번 훌쩍거리게 한다.      


**형은 다음날 친구의 남겨진 가족을 초대했다고 했다. 어린 남매에게 아버지가 얼마나 삶을 치열하게 살았는지 말해주겠다고 한다. 활짝 꽃 피우지는 못했지만, 그의 향기가 여전히 지금도 주위에 남아 있다는 것을 얘기해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죽음이 두렵다는 형은 삶에 대한 집착도 커져 힘들다며 자꾸만 소주잔을 기울였다. “생각 좀 그만하고 그냥 살아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 옛날 생각 좀 하고 살라는 형의 구박을 이번엔 내가 되돌려줬다. 그리고 남산만 한 술배나 집어넣으라고, 운동 좀 하라고 잔소리 폭탄도 던졌다.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그들이 가 계신 그곳이 뭐가 두려우냐고, 선배의 절친이 미리 경험했고 또 누구나 갈 길이라면 그냥 덤덤히 받아들이자고 조금도 위로가 안 되는 말을 했다. 그리고 속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슬프지만 그래도 순서대로 가는 건 정말 괜찮다고.     


‘가슴 아픈 소식을 전하게 되어 너무 애통합니다. **님의 따님 ###이 가족 곁을 영원히 떠났습니다.’ 학교 전체 카톡방에 뜬 부고 소식. 믿기지 않아 선배 교사의 이름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아니, 이게 말이 돼? 유학 중이던 딸이 왜? 가슴이 쿵쾅거리며 진정이 되지 않아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보와 함께 들려준 근황에 가슴이 미어졌다. 타국에서 외롭게 공부하다 건강이 안 좋아져 열흘 전쯤 급히 귀국했고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고 했다. 따님이 얼마나 예쁘고 똑똑한지, 유학을 얼마나 간절히 준비했는지 그간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터라 할 말을 잃었다. 만나면 따님의 안부로 대화를 시작했던 우리였기에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젊디젊은 청춘을 영원히 떠난 보내는 현장엔 침묵만  고요했다. 빈소에 들어설 때부터 터져 나오는 울음이 주체가 안 됐다. 상복을 입은 선배님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무슨 이런 일이 있냐며 오열하는 나를 오히려 선배님이 위로해 주셨다. 슬픔도 총량이 존재하는 건지 더 눈물도 남지 않은 듯 허우적거리는 그녀를 꽉 안아주는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똑똑한 딸이 공부를 그렇게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니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지. 타국에서 많이 힘들었나 봐. ”

선배님은 무심했던 당신을 자책하시다가 뒤늦은 후회가 무슨 소용 있겠냐고 하셨다. 키우던 햄스터 한 마리가 죽어도 너무 애통해하고 이별의 절차를 밟던 딸 생각이 나서 생전 딸의 인연들에 모두 알렸다고 했다. 가족장으로 후딱 보내려다가 마음을 고쳐먹은 얘기를 할 땐 영정 사진의 환한 미소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30년 엄마로 살며 딸과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웠는지 얘기할 땐 그녀의 얼굴엔 잠시 행복이 스쳐 갔다.      


돌잔치와 결혼식보다는 장례식장 가는 일이 익숙해지는 이 나이가 되니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자꾸 희미해져 가고 있다. 연로하신 부모님들은 기력을 잃고 곧 우리와 헤어질 채비하고 있다. 당신들이 걸었던 그 길을 고대로 걸으며 시들어가는 우리의 모습도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이며 나날이 겸손해지고 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젊은 죽음은 감당이 어렵다. 화가 치밀어 하늘에 소리라도 치며 그분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다. 한바탕 욕설이라도 퍼붓고 싶은 분노에 어쩔 줄 모르겠다.     


“생각 많이 하지 마세요.” 마땅한 위로가 없었다.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선배님과 헤어져 나오는 길, 그녀가 뒤에서 큰 소리로 불렀다. “유현미! 유현미!” 뒤돌아봤다. 벌게진 두 눈이 마주쳤다. “차 가지고 왔어? 주차권 챙겨!” 주르륵 눈물이 또 흘렀다.     


아, 삶은 죽음보다 더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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