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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Jun 16. 2024

작정하고 남편 뒷담

“우리 예쁜 혜경이가 바쁘다네. 에잇 얼굴 못 보겠다.”
그럼 그렇지, 혜경언니 보려고 그랬구먼. 남편이 구미 금오산 산행을 따라나서겠다고 할 때부터 이상했다. 작년에 다녀왔던 코스라며 관심도 없던 그가 마음을 바꾼 이유는 동창 때문이었다.


우리 예쁜 혜경 언니는 남편의 고등학교 동창이다. 구미에 사는 언니는 수더분하고 성격 좋아 동창회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동창회 회장직을 맡은 남편은 늘 '우리 이쁜' 혜경이는 남자 수십 명 몫을 한다며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하곤 했다.
 
대혜폭포에서 오른쪽 도선굴 구경하러 가는 길, 남편은 예전에 다 봤다며 아래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속에서 또 부아가 치민다. 수시로 오르는 관악산 북한산도 계절에 따라 다르고 함께 하는 사람에 따라 매번 새롭다고 주장하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젠 목소리 높여 싸우지 않는다. 부부로 산 세월만큼 내공이 쌓였다. 그냥 한마디 한다.
“그래 그럼.”
도선굴을 배경으로 사진을 요리 찍고 조리 찍고 한참을 놀다가 내려오니 남편이 벤치에서 앉아 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자기가 할머니들 눈치 봐가며 벤치 자리 맡아뒀다며 앉으란다. 꼴찌가 쉴 틈이 어딨나, 부지런히 올라가야지.
 
“난 여기서 그냥 내려갈까?”
얄미운 남편 또 시작이다. 고속도로를 4시간 동안 달려와서 두 시간 가까이 오른 산인데 산 정상 다 와서 내려갔겠단다. 하기야 구름 끼고 후텁지근한 공기 탓에 기온은 벌써 30도를 넘겼다. 땀이 자꾸 흘러내려 눈이 따끔거렸고 윗옷은 다 젖었다. 그런데 몰려오는 구름이 심상찮더니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졌다. 계획된 코스와 자꾸 다르게 행동하려는 남편을 한 번 쏘아봤다. 그가 씩 웃더니 군말 않고 따라왔다.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남편은 밖으로 나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운동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그는 장거리 산행을 마뜩잖아한다. 마누라 잔소리에 가끔 따라나서긴 하지만 산타기 완벽한 조건에서 하나라도 어그러지는 날이면 투덜거리기 일쑤다. 오늘은 그 조건 중에 장거리와 더위, 거기에 빗방울까지 악조건이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
 
말 그대로 할딱고개를 할딱이며 올랐다. 와~ 금오산 간단치 않다더니 이래서 힘들다고 소문났구나. 그런데 분명 같은 페이스로 걷는데 자꾸 일행에 뒤처졌다. 쉬지 않고 묵묵히 걸어도 고개 들면 친구들은 앞서 걷고 있다. 쟤네는 축지법을 쓰나 도술을 부리나. 너무 뒤처졌나 싶어 불안한 마음에 뒤돌아보면 투덜이 남편이 뒤따라 왔다. 그래도 의리는 있다.
“난 죽으면 사리 몇 바가지 나올걸. 느림보 마누라 뒤따라 걷는 건 부처님 수행 못지않아.”
고마웠던 마음 홀라당 사라졌다. 거북이 마누라 디스 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끝없는 계단을 오르니 암벽에 위태롭게 지은 절이 나타났다. 그 유명한 약사암이다. 벼랑 끝에 지지대를 세워 만든 절을 보며 인간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생각하며 감탄했다. 남편은 여기서 또 망설였다.
“난 왔던 길로 하산할까 봐. 2년 전에 다 봤는데 뭘.”
짜증이 확 밀려왔다. 스무 명 넘는 산악회 식구와 함께 왔으면 싫어도 같이 할 것이지 왜 저러나 모르겠다. 동생이었으면 머리통 한 대 쥐어박았을 것이다. 딱 한 마디 했다.
“알아서 해.”
함께 걷던 지킴이 대장님이 웃으셨다. 마누라가 무섭긴 무섭나 보다 하셨다. 남편이 여전히 뒤따라 오고 있었다.
 
정상 바로 아래 ‘오형돌탑’에 도착했다. 오각형 모양의 돌탑을 상상했는데 슬픈 사연이 담긴 탑이었다. 남편의 이야기에 따르면 탑을 쌓은 할아버지는 열 살에 죽은 손자를 기리기 위해 10년간 돌을 쌓았다고 했다. 금오산의 ‘오’ 자와 손자의 이름 형석에서 ‘형’ 자를 따서 ‘오형’ 돌탑이라고 지었단다. 태어날 때부터 뇌병변 장애로 걷지도 말하지 못한 손자를 부모 대신 키웠던 할아버지는 손자가 죽은 후에라도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랐다고 한다. 오형돌탑 뒤로 낙동강이 슬프게 흘렀다. 10년 전 그날 손주의 재를 뿌렸을 할아버지의 눈물이 보이는 듯했다. 손주를 그리워하는 할아버지의 사랑이 하늘로 아른하게 닿아 있었다.

할아버지 글도 참 심금을 울린다.


 정상을 100m도 채 남기지 않고 점심을 먹었다. 먹고 나면 등산길은 더 힘들다. 마지막 오르막에 악소리가 났다. 헉헉, 나만 힘든가? 옆에 같이 오르는 친구도 힘들단다. 남편은 저 멀리 앞서서 걷고 있다.
 
정상 ‘현월봉’에 다다르자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비를 쫄딱 맞기로 작정했다. 땀에 온몸이 젖었는데 비 맞는 게 대수랴. 아, 시원하다. 비 맞는 걸 질색하는 남편에게 비옷을 줬다. 우리 부부에겐 자연스러운 모습이 사람들 눈엔 이상하게 보였나 보다. 대학 동기 재성이는 자꾸 자기 옷을 입으라 하고 지킴이 대장님은 여분의 비옷을 꺼내주셨다.
 
“여보, 거기 어디야? 작년 혜경언니가 찍어준 그 장소 빨리 찾아봐.” 남편이 맨날 자랑하던 사진, 그런데 모른단다. 저 엉큼한 속마음 다 안다. 덥고 비 오니까 빨리 내려가고 싶은 것이다. 어휴 속 터져. 조금만 연구하면 찾을 수 있을 텐데 내키지 않음이 빤히 보였다. 그런데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 될까.
 
하산길로 내려섰던 우리는 돌돌대장님의 무전을 받았다. 다시 정상으로 올라오라고 하셨다. 한참을 내려왔는데 다시 올라간다고? 그냥 하산하자, 아니다 올라가자, 설왕설래하던 일행은 결국 다시 정상을 향했다. 어라? 그런데 남편이 따라 올라왔다. 원래의 남편이라면 혼자서라도 내려갈 사람이다. 이상하네! 이상해.
 
현월봉을 두 번째로 올랐다. 돌돌 대장님은 숨겨진 최고의 사진 명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어찌 이런 길을 찾아냈을까 싶었다. 저 아래 기암에 붙어있는 약사암과 출렁다리, 전각, 그리고 구미 시내와 저 멀리 낙동강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그래, 여기야 여기! 2년 전에 왔었는데 여전히 좋네! 좋아. 이쁜 혜경이가 가이드했음 쉽게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아, 저 얄미운 남편, 진즉에 이 길을 기억했더라면 이 고생을 안 했을 것이다.

사진 명당에서 바라본 약사암과 구미 시내


이제 산허리를 돌아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돌돌대장님은 후딱 앞장서 가시고 뒤따르던 일행 중 한 명이 한마디 했다.
“요 길로 가면 금방 갈 것 같은데….”
그래? 그럼 그리로 가자. 아, 이 짧은 선택이 또 금오산 정상으로 오르게 할 줄 몰랐다. 사람들이 안 가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자꾸 모험을 하고 고생하는지 모르겠다. 바위를 타고 철망을 잡고 낭떠러지를 건넜다. 천신만고 끝 오르고 보니 또 현월봉 정상이었다. 세 번째다. 웃음만 나왔다. 오늘 왜 이러냐 진짜. 평소 이런 거 싫어하는 남편도 허허 웃었다.

세 번째로 오른 현월봉. 비 쫄딱 맞고 땀범벅을 몰골이 말이 아니다.


 
하산길에 남편이 그랬다. 인생에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여러 번 있는데 오늘도 그랬단다. 순간의 판단으로 죽도록 고생했다는 말이다. 마누라 때문이야? 물었더니 한 번은 그랬지만 나중엔 성격 좋은 후배들 때문이었단다. 또 한 번은 지킴이 대장님을 봤다고 했다. 짜증 날 법도 한데 묵묵히 행동하는 선배 앞에서 마음을 다스렸다고 했다. 아, 이래서 내가 남편을 자꾸 산악회로 꼬신다. 뾰족했던 사람이 점점 둥글둥글해지고 있다.
 
구미 시내를 지나는데 남편이 자꾸 창밖을 쳐다봤다.
“왜? 아는 곳이야?”
“아니, 우리 예쁜 혜경이 혹시 있나 해서.”
“작작 좀 해!”
소리를 꽥 질렀다. 정상석 3번 찍은 훈훈한 금오산으로 기억될 하루가 ‘짜증 이빠이?’ 부부싸움으로 끝났다.
 
*덧붙이는 글: 남편은 이 글을 읽고 절대로 이쁜 혜경이 때문에 금오산 간 거 아니라며 여러 이유를 첫째, 둘째... 이러면서 논리적으로 항변했다. 난 또 고대로 중계방송할까 고민하다 그냥 요 정도로 그친다. 26년 전 그는 순간의 판단 착오로 입 싼 마누라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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