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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Jul 01. 2024

우리 매일 걷자!

임예원 작가의 사색하며 걷는 일상 '내일도 목련하렴'

세 살 네 살 두 딸을 재우고 늦은 밤 아파트 단지를 미친 듯이 걷기 시작한 때가 있었다. 잠이나 실컷 잘 것이지 왜 그리 필사적으로 달밤에 체조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한 걷기 인생이 벌써 20년이 지나고 있다. 당시에는 몰랐다. 오롯이 나로 존재하고 싶어서 택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최근에 만난 책 한 권 덕분이다. 임예원 작가의 ‘내일도 목련하렴.’ 파란 하늘과 핑크빛, 흰색의 꽃나무와 초록이 어우러진 앙증맞은 책을 한 달여간 가방 속에 넣고 다녔다. 봄날 애인 만나듯 학교 가는 길 공원에서, 집으로 오는 나무 밑 벤치에서 아껴가며 읽었다. 어쩜 이렇게 비슷하면서도 다르지? 책의 부제도 맘대로 바꿨다. ‘꽃피는 봄날, 우리답게 걷고 있다’


육아 우울증에 힘든 시기를 보낸 작가는 독서와 걷기로 치유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작가는 사색을 즐기며 걷는다. 산길에서 만난 넓적 돌 하나를 보면서도 오랜 인연 선배와의 재밌는 에피소드를 기억해 낸다. 그리고 돌의 정체를 탐구하며 한때는 ‘구들장’으로 전성기를 누렸을 쓸모를 생각한다. 지금은 길거리의 그저 그런 돌이 돼 버린 처량한 그것의 신세에 연민도 가진다. 그러다 남유하 작가의 동화 ‘온쪽이’를 떠올리며 반쪽세상에서도 굴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온쪽이를 소환해 냈다. 다수의 폭력이 어쩌면 자신의 시선에도 담겨있을지 모른다고 깨달으면서 말이다. 세상의 ‘돌아이’에게 그저 따뜻한 시선만 주기로 다짐하는 작가, 참 재밌다. 작가가 펼쳐내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유가 낯설면서도 신기하다.          


나의 걷기는 쓸데없는 잡념을 털어버리려는 몸부림이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무상무념의 상태를 꿈꾼다. 일이 꼬이고 마음이 어수선할 때, 몸이 힘들 때 무작정 걷는다. 타박타박 발소리에 집중하며 고여있는지 흘러가는지 모를 물을 멍히 쳐다본다. 이따금 바람에 나뭇잎이 살랑 흔들린다. 퍼드득퍼드득 분주히 먹잇감을 찾아 날아가는 새소리까지 아주 작은 몸짓도 놓치지 않게 귀를 쫑긋 세운다. 그래도 스멀스멀 비집고 들어오는 생각의 고리들,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파워워킹해본다. 하낫둘! 하낫둘! 세찬 발걸음에 먼지 털듯 세상만사 시름을 털어낸다.        

     

걷기와 사랑에 빠졌지만 우린 참 다르구나. 끊임없이 이야기를 펼쳐내는 그녀에게 홀리듯 책장을 넘겼다.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은 꿈쯤은 누구나 가진다. 하지만 작가는 과감히 행동했다. 경기도에 땅을 사고 집을 지어 5도 2촌의 삶을 누리고 있다. ‘초보가 왕초보를 가르친다.’라는 구절에 감명받아 네이버 지식인 답변 달기에 도전해 힘든 시기를 극복한다. 읽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녀, 아, ‘용기’다. 용기가 그녀를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임예원 작가는 방대한 독서와 사색의 힘으로 그녀답게 튼튼한 삶을 집을 지었다. 불안함, 두려움, 슬픔, 아련함 등 작가만의 감정을 들여다보며 해석하며 이겨내면서 말이다. 겁 많고 소심한 범인은 부러울 따름이다.   

   

감정의 파편들, 잡생각이라고 하는 것들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용기’ 있는 작가에겐 ‘지혜’도 가득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늘 ‘적성’, ‘자질’을 의심하며 진정 자신의 길인지 끊임없이 의심했단다. 20여 년간 참된 교사의 모습을 고민하던 그녀의 결론은 어쩌면 부족함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선생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면 물을 붓기가 무색하리만큼 물이 빠진다며 그녀는 외친다. 그럼 밑 빠진 독을 차라리 강물이나 바다에 던지자고! 빈틈 많은 자신이 교육이라는 바다에 풍덩 담겨있는 모습을 보고 비로소 구멍 숭숭이 메워지고 행복한 교사로 거듭나고 있다고 했다. 이 작가, 비유도 어쩜 이렇게 찰떡처럼 하는가. 빈틈 많은 내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는 방법도 다르지 않다. 과감히 도전하는 용기에 사물을 꿰뚫어 보는 혜안까지 가졌다. 이런 사색하는 습관 닮고 싶다.          


에세이 책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작가가 자신의 일상을 소곤소곤 들려주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기 고백에 솔직하다. 독자로선 여과되지 않은 날 것의 삶을 고스란히 보며 친밀감을 느낀다. 산길에서 만난 키 큰 나무를 보고 185㎝의 장신이었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막내딸…. 작은 오동나무 관이 비좁게 느껴졌던 아버지와의 마지막 이별의 순간을 읽을 땐 꼭 내가 딸이나 된 듯 안타깝고 서러웠다. 이 세상이 아버지에게는 좁았을 것 같다며 저세상에서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편히 지내시라는 작가의 속삭임이 나의 산책로에서도 들리는 듯하다.     

 

걷기에 빠진 작가가 ‘나, 너, 우리, 그리고 읽고 쓰며 다시 태어난 이야기’를 네 개의 장면으로 엮어낸 방식도 독특하고 흥미롭다. 시를 좋아하는 작가는 자작시로 글을 열고 자연과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을 군더더기 없이 풀어낸다. 뒷산 둘레길에서 만난 그루터기와 우듬지를 보며 자신을 찾고, 내가 바로 서야 가족도 보이고 반 아이들도 보이고 이웃도 보인다며 지친 자신을 돌보라고 속삭인다. 육아의 힘듦을 또래 엄마들과 함께 ‘하브루타 별밤’ 모임을 하며 무리 지어 새로운 빛을 만들어간다. 핑크무리라 불러도 무방할 핑크뮬리처럼 말이다. 마지막장엔 알을 깨고 나온 새처럼, 얼어붙은 마음의 바다를 깨고 나오듯 읽고 쓰는 삶에 들어선 그녀의 여정을 들려준다. 작가가 걷는 그 길에 어깨 나란히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자꾸만 든다.           


‘내일도 목련하렴’이라고 건넨 작가의 따뜻한 위로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우리도 한때는 봄날의 목련처럼 빛나고 아름다웠다. 젊음이 짧고 찬란할수록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중년의 삶은 비루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 책을 안 만났더라면 나날이 늘어가는 주름과 흰머리에 한숨만 짓다 세월 다 갈 뻔 했다. 목련이 초라하게 지는 그 모습마저도 고귀하니 담담히 받아들이라는 임예원 작가. ‘목련하렴’ 동사를 작가의 언어사전에서 나의 노트에 옮겨 적었다. 이제 무념무상 걷기 말고 사색하며 걸어야겠다. 책 한권을 읽고 용기라는 큰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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