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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Sep 15. 2024

먼 훗날, 그거 내가 할게

   

** 언니.  

오늘은 유난히 새벽빛이 예뻐. 빌딩 너머 여명과 일렁이는 구름이 평온한 아침을 활기차게 해. 도시의 새벽이 이런 멋진 풍광을 선사하는 걸 사람들은 알까. 이 시간의 장엄함을 나 혼자만 누리는 게 미안해지네. 비 온 후 청량함이 더해져 발걸음이 유쾌해졌어. 혼자 걷고 있노라면 언니랑 발맞추며 내디뎠던 시간이 떠올라. 서울 구석구석 언니랑 참 많이도 헤집고 다녔어. 광화문, 서대문, 목동, 화곡동, 남산 등. 그러고 보니 나의 근무지 따라 훑고 다녔네. 우리가 뿌리고 다닌 이야기들이 참 많다. 그치?      


늘 걷고 달리던 익숙한 아침 산책길을 조금 벗어나 봤어.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발견한 작은 돌탑들. 귀엽고 앙증맞아. 저런 반듯한 돌은 도대체 어디서 구했을까.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허튼 돌멩이 하나 찾기 힘든 정돈된 공원인데 말이야. 쌓아 올린 누군가의 정성이 보이는 듯해. 조심스럽게 하늘에 맞닿기를 바라는 그 간절함이 새삼 궁금해지네. 아니 절박함일지도 몰라. 간절함과 절박함이라. 문득 언니의 평화로운 일상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간절히 기도해.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가시는 부모님과 함께 하는 언니의 절박한 마음이 하늘에 닿기를! 언니 대신 내가 돌 하나 조심스럽게 얹어봤어.     


“현미야, 나 부탁할 거 있어. 이거 얘기하면 너한테 큰 부담일까?”

방학 때 언니가 꺼낸 그 , 자꾸 생각나.


“요즘 엄마·아빠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어. 나의 마지막은 누가 정리해 줄까 그런 생각, 그래서 말인데 네가 해주라.”

이제 갓 50을 넘겼을 뿐인 언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어물쩍 넘겼잖아. 그런데 불쑥불쑥 생각나. 언니는 무슨 마음으로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을까. 난 왜 그러마 하고 선뜻 대답 못 했을까.      


언니와 함께한 세월이 벌써 30년이 다 됐네. 대학을 졸업하고 영문학을 하겠다고 다시 우리 과로 편입한 언니가 참 신기했어. 작품 한 구절에 감동하고 영시를 줄줄 읊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지. 영어소설책을 늘 끼고 다녔던 언니를 보며 문학은 저런 사람이 하는구나!라고 알았어. 언니의 부드럽고 따뜻한 성정을 우리 과 동기들이 다 좋아했던 거 알지? 그때 난 언니의 사랑스러움이 특히 좋았어.     


언니가 꽃무늬의 살랑이는 원피스를 입고 오랜 짝사랑을 고백하러 가던 5월의 캠퍼스. 덩달아 나도 설렜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네. 옆에서 용기 내보라며 부추겼는데 우리의 아픈 상처로 남았잖아. 그 선배가 얄미워 내가 한동안 눈 흘기며 다녔던 거 모르지? 사람 보는 눈 없는 머저리라며 속으로 욕을 해댔지. 호주 연수 마치고 돌아오는 언니를 공항으로 마중 나가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언니와 평생을 볼 것 같다는 예감. 떨어져 있으면 걱정되고 궁금하고, 사람들은 이런 걸 우정이라고 하지 아마.      


언니랑 단둘이 떠난 겨울 제주여행 기억나? 비행기도 제주도도 내 인생 첫 경험이었어. 버스 타고 관광지를 돌아다니고 돌담길을 걸어 숙소로 들어가던 동네 어귀가 참 운치 있었잖아. 졸업한 난 막 취직을 했고 언니는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었던 때였을 거야. 지금 보니 사진 속 나도 언니도 참 예뻤네.      


인생은 참 우스워. 결혼에 대해 아무 생각 없던 나는 너무 일찍 사람을 만났고, 늘 단란한 가정을 꿈꿨던 언니는 이상하게 인연이 엇나가기만 했잖아. 언니는 아마 그때부터 평생을 문학을 사랑하며 살기로 마음먹었던 건 아닐까.     


졸업 후에도 대학 캠퍼스가 늘 친근했던 건 언니 덕분이야. 함께 올랐던 인문대 138 계단, 나무 빽빽했던 사범대 뒷길도 언니가 학생들과 걷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포근하게  느껴졌어. 강의 평가 최우수 교수로 여러 해 뽑혀 감사패까지 받던 언니가 무척 자랑스러웠어. 언니라면 그러고도 남지. 한 시간의 수업도 허투루 하지 않는 언니의 성실함과 학생들에 대한 진정성을 알기에 선생, 아니 스승으로서 존경했어.      


문학이 밥 먹여주냐며 뒷방 늙은이 취급받는 시대가 됐다며 씁쓸해하던 언니의 고민을 알아. 취업에 도움이 안 되는 영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자괴감과 안타까움 가득했던 나날들. 코로나로 학생들과 직접 대면하지 못하면서 가르친다는 것이 새삼 더 힘들어졌다고 했지? 언니가 ‘이명’으로 힘들어하기 시작하던 때가 그 무렵부터였던 같네. 병원에 다녀도 보약을 먹어도 좀처럼 낫지 않았잖아. 언니를 만날 때면 늘 실내가 아닌 바깥을 걸었고 사람 많은 곳은 피했지. 사실 그땐 시간이 흐르면 아무렇지도 않게 회복될 줄 알았어. 언니의 삶에서 학생들을, 강의를 떼어놓는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잖아.      


2주 전에 우리 학교에서도 언니처럼 느닷없이 교직을 떠난 선생님이 계셨어. 퇴임식도 고사하셔서 조촐한 인사 시간만 가졌는데 담담히 소회를 밝히던 그분이 갑자기 눈물을 쏟으시더라고. 가르치는 걸 평생 업으로 생각하며 사셨는데 갑작스러운 ‘이명’으로 어쩔 수 없이 떠난다고 하셨어. 언니 생각이 났어. 그분에게서도  세상 더없는 맑은 기운이 느껴졌어. ‘이명’이라는 병은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은 사람을 시끄러운 세상으로부터 자가격리하려는 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잠시 했어. 그 선생님의 슬픈 꽃다발을 한참 쳐다봤어. 선생질은 여기까지라고 했던 언니에게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도 제대로 못 전했네. 미안해.  

    


마음 한구석엔 그래도 언니 곁엔 든든한 부모님이 계시니 걱정 없다고 생각했나 봐. 정말 어이없지? 영원한 언니의 응원군이셨던 당신들은 이미 여든을 훌쩍 넘긴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사실도 모르고 말이야. 언니가 그랬지? 어느 날은 어머니가, 어느 날은 아버지가 번갈아 가며 고비를 넘기는매일 인생의 끝자락을 미리 예행 연습하는 것 같다고. 그러면서 언니가 떠나고 나면 마지막 정리는 누가 해주나 고민된다고 했어. 그러면서 말했지. “네가 해줄래?.”      


그때 하지 못했던 말, 지금 할게. 아주 먼 훗날이겠지만 말이야. 만약에 누군가 해야 한다면 말이야. 언니가 말한 그 마지막은 내가 할게. 그 순간을 생각만 해도 너무 힘들지만 용기 내볼게.

아직도 날씨가 좋은 날이면 광화문 우체국에서 엽서를 써 보내는 소녀 같은 우리 언니, 받는 만큼의 반의반도 못 하지만 마음만은 늘 언니를 생각해. 바쁘다는 핑계로 잘 못 챙기는 무심한 동생도 품어주는 언니 고마워. 이 아침, 언니가 나랑 닮았다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맑은 기운을 전해. 언니가 준 카드 속 하이디가 지금 웃고있.      


참, 하루에 한 번 산책하기, 그 약속 꼭 지키길! 수도 없이 받은 언니의 손편지에 오늘은 작정하고 긴 답장 보내. 언니,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평안하고 행복한 추석 맞이하길!!!!     


2024년 9월 15일 일요일 동생 현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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