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문난 박치에 몸치다. 어쩌다 음주·가무 자리가 생기면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할 때면 행여 흥이라도 깰까 안절부절못했다. 신나는 음악과 완전 따로 노는 뻣뻣한 몸, 어찌 흔들어도 어색한 팔다리, 자꾸만 놓치는 박자, 그래서 유흥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런 내가 앞장서서 무대에 올라 동료 선생님 수십 명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2월 말 교직을 떠나시는 세 분 선생님의 퇴임식에 대한 고민, 학교 친목회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강 건너 불구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행사를 준비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제2의 삶을 준비하는 선배들을 위해 특별한 시간을 선사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감동이 있는 헤어짐’ 그리고 ‘슬프지만 유쾌하고 신나는 이별식’을 만들어보자.
퇴임식의 감동 코드는 당연 ‘언어’다. 그래서 감사패 문구에 공을 들였다. 획일적인 문구는 싫어 며칠을 고민해 선생님 각자마다 맞춤형 글을 썼다. 선배들이 훗날 교사로서의 삶을 추억할 때 후배의 정성 어린 송사가 당신들을 따뜻하게 했으면 싶었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마지막 육성 퇴임사는 그 어떤 것보다 우리의 가슴을 울릴 것이다. 너무 슬프기만 하면 촌스럽다. 분위기 반전용 후배들의 춤판 하나 보태면? 그래 그거다!
처음엔 막춤을 생각했다. “언니들이 무대에서 망가질 테니 합류만 해달라” 일단 친한 후배들을 꾀었다. 그리고 옆 반 선생님, 동학년 부장님 등에게도 연락했다. 체육 연수를 같이 다니며 친해진 선배님에게도 부탁했다. “우리는 어차피 아무도 안 쳐다봐요. 앞에 예쁘고 춤 잘 추는 후배들만 쳐다볼 거니까 구석에만 서줘요.” 그리고 실무사 선생님 몇 분까지 합류해서 일명 12명의 댄스그룹이 탄생했다. 모두 모아놓고 보니 웃음이 나온다. 죄다 조용하고 수줍음 많고 거절 못 하는 순둥이들 조합이다. 나와 친한 사람들을 모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가 무대에 올라가는 자체만으로 흥행거리는 충분하다 싶었다.
리더로 세운 후배가 음악을 먼저 보내왔다. HOT ‘캔디’였다. 나이대를 생각해서 신나는 트로트를 가져올 줄 알았는데 예상외다. 그나저나 율동 수준의 막춤으로 꾀었는데 어쩌지? 주말 동안 안무를 짜오겠다는 후배에게 쉽게 쉽게 해 달라는 부탁을 거듭했다. 사실 연습 가능한 날짜도 하루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댄스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우리 반 아이들도 난리였다. 20여 년도 더 된 옛날 댄스곡인데도 리메이크를 많이 해서인지 아는 척을 엄청나게 했다. 특히 하이라이트 부분의 대표 안무를 시범까지 보여줬다. 내가 어설프게 따라 추니 선생님 큰일 났다며 저희끼리 낄낄거렸다. 허리를 돌리라는 둥, 팔과 손을 튕기라는 둥 훈수를 둬가며 맨날 남아서 자기들한테 배우라고 했다. ‘됐거든! 이번 무대는 잘하는 게 아니라 어버버 하는 게 컨셉이거든!’ 하며 응수했다.
퇴임식을 앞두고 딱 한 번 모이던 날. 안무를 짜온 선생님이 한 동작씩 가르쳐줄 때마다 모두 걱정이 늘어졌다. 팔과 다리가 엇갈린다고? 자꾸 같이 나가는데? 왼쪽 갔다 오른쪽 갔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 아이고 정신없다. 그리고 음악은 왜 이리 바빠. 배우면서도 자꾸 웃음이 터졌다. 맘처럼 안 움직이는 이 몸뚱이를 어쩌란 말이냐. 앞줄의 후배들은 그래도 곧잘 따라 했다. 하지만 뒷줄 우리는 자꾸만 박자를 놓쳤고 동작도 어정쩡했다. “앞줄 센터들만 눈에 들어올걸? 우린 쳐다보지도 않을 거야. 대충 해. ” 너무 잘하면 이건 반칙이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래도 깔깔 웃으며 연습하니 댄스팀 주동자로서는 고맙기만 했다.
공연 전날부터 단체 카톡방이 바빠졌다. 연습 동영상이 올라오고 누군가 의상을 맞추고 소품까지 챙기기 시작했다. 어버버 얼렁뚱땅하자고 약속했는데 , 그게 안 되는 선생님들의 직업병이 문제다. 못하면 무대서 혼자 튈 거라는 두려움에 모두 열심인 게 분명하다. 나도 퇴근 후 안방 거울 앞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동작을 연습하다 나중엔 거실 TV 미러링 기능을 이용해 반복했다. 남편도 딸들도 지나가며 한 마디씩 했다.
“울 마누라, 사회생활 하느라 고생이 많다.”
“이제 보니 내가 엄마 닮아서 춤엔 젬병이었네.”
“아니, 로봇이야? 왜 뚝딱거려?”
설거지를 하면서도 청소를 하면서도 곡을 들으며 안무를 머릿속에 그렸다. 동작이 얼추 비슷해지니 이번엔 노래가 문제였다. 출퇴근길에도 이어폰을 끼고 듣고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도 음원을 틀었다. 그런데 도무지 가사가 외워지지 않았다. 겨우 외웠다 싶다가도 뒤돌아서면 잊어먹었다. 귀동냥으로 듣던 반 애들은 좔좔 가사를 잘도 불러댔다.
“도대체 너네는 어찌 그리 잘 기억하는 거야?”
“저절로 되는데요. 선생님은 왜 이게 안 돼요?”
서로를 외계인 쳐다보듯 했다. 그래그래,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모두 다른 걸로.
‘찬란했던 청춘의 날을 지나 어느덧 황혼이 내린 세월.
오롯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교육자의 길을 걸어오신 *** 선생님.’
송공패를 읽던 교무부장님이 울먹이자, 퇴임식이 훌쩍이는 소리로 가득했다. 40여 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는 선배들도 연신 눈물을 훔쳤다. 후배들의 이별 송사에 세 분의 답사까지 이어졌다. 힘들었지만 뿌듯했고 감사했던 지난날을 함께 기억하며 웃고 울었다. 드디어 마지막 하이라이트 댄스공연이 소개됐다.
힙합바지에 빨강 파랑 노랑 후드티를 입고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장갑을 낀 선생님 12명이 사방에서 튀어나와 무대로 뛰어올랐다. 예상치 못한 신나는 음악과 함께 환호성이 터졌다. 12명이 일사불란하게 손발을 흔들고 펄쩍 뛰고 엉덩이를 한바탕 흔들었다. 객석의 선생님들이 연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괴성을 질렀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립싱크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생각했다. 다들 왜 이리 잘하지? 그리고 하이라이트 동작을 무대 밑으로 내려가 한 번 더 하고 세 분 퇴직 선배님들 앞에서 마지막 동작을 짠하며 마무리했다. ‘앵콜! 앵콜!’을 외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터졌다. 분명 얼렁뚱땅, 어버버 댄스였는데 예상외로 칼군무였던 것 같다. 물론 겨우 구색만 갖춘 나 같은 사람도 있었지만 말이다.
퇴임식 댄스팀의 여운은 짙었다. 학년말에 언제 준비했냐, 완전히 뒤집힌 무대였다, 이런 사람들인 줄 몰랐다, 6학년 졸업식에서도 다시 한번 해달라며 우리를 볼 때마다 동료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퇴임하시는 선배들도 우리의 손을 맞잡으며, 얼마나 애썼냐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사실 그 시간을 가장 즐긴 사람들은 우리였다. 이 나이에 언제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아 가며 춤을 춰보겠냐며 인생에서 이런 날은 다시 없을 거라며 입을 모았다.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나고 보니 웃으며 함께 연습한 시간이 값지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고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해댔다. 참, 이 사람들도 연구 대상이다.
언제나 니 옆에 있을게
다신 너 혼자 아냐~
너의 곁엔 내가 있잖아
마지막 노래 가사가 이제야 입에서 줄줄 나온다. 몸치에 음치 아줌마 참 많이 컸다. 이참에 댄스를 좀 더 배워볼까나 하는 가당찮은 욕심도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