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9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돈의 가치를 배우며 1년

5학년 경제교실 마무리

by 포롱 Feb 16. 2025

올해 5학년 아이들과 1년 동안 경제교실을 운영했다. 1인 1역에 따라 직업이 정해졌고 월급을 매달 받았다. 물론 돈은 우리반에서만 통용되는 화폐다. 아이들은 그 돈으로 살림도 살고 세금도 내고 투자도 했다. 살림을 산다고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니고 가끔씩 과자 부스러기 같은 간식을 사 먹고,  배움노트나 1일 독서면제권을 구매했고, 점심시간 노래신청 쿠폰도 샀다. 월급을 받자마자 비싼 '짝꿍 선택권'을 사며 돈 쓰는 재미를 만끽하는 친구도 있었고 통장에 쌓이는 액수를 쳐다보며 돈 모으는 즐거움으로 행복해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학년말이 되자 돈을 물 쓰듯 하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시중에 돈이 늘어나면 물가는 오르는 법, 음악 신청권, 급식 추가권 등 가격이 2배로 폭등했다. 그래도 모든 것이 불티나게 팔렸다.

매달 생일파티에 세금 수천파워를 썼다. 2025년  1-2월  합동 생일파티매달 생일파티에 세금 수천파워를 썼다. 2025년  1-2월  합동 생일파티
“야, 5학년 끝나면 우리반 돈 아무 소용없어. 빨리 써!”

돈을 쓰지 않는 친구들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의 아이들. 소비가 활발할수록 우리반 세금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마지막 국무회의는 우리반 세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의제로 토의했다. 만 파워가 훌쩍 넘는 거액이었다.

“시간을 샀으면 좋겠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친구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며 추억을 만들고 싶어요.”

한 친구의 의견에 반 아이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찬성했고 결국 1시간당 5000 파워, 두세 시간은 살 수 있었다. 그때였다. 지금껏 돈을 잘 쓰지도 않고 착실히 모으기만 하던 우리반 최고 부자 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 전 재산 9000 파워를 세금으로 기부하겠습니다!”

순간, 모든 아이가 함성을 질렀다. 그러자 많은 아이의 기부 릴레이가 이어졌다. 세금은 순식간에 3만파워로 늘어났다. 학년말 6시간을 확보한 아이들은 결국 2시간 체육, 2시간 보드게임 공기놀이, 2시간 영화를 보며 간식을 가져와 먹기로 했다.

세금 5000파워로 1시간 자유시간을 사서 재미있는 교실 체육을 한 우리반 아이들.세금 5000파워로 1시간 자유시간을 사서 재미있는 교실 체육을 한 우리반 아이들.

그때였다. 윤*이가 가만히 손을 들었다.

“선생님, 저는 제 통장의 돈을 세금 말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하고 싶어요.”

학기 초 남는 돈을 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파워를 원으로 환산해서 단체에 기부할 수 있다고 하니 그때부터 또 너도나도 돈을 합쳤다. 기부액이 결국 1만파워 가까이 됐고 *이버 해피빈에 ‘국가 유공자들의 헌신을 함께 기억해 주세요’라는 모금함에 기부했다.

“사회시간에 6-25 전쟁 배웠잖아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었어요.”

역사를 배웠던 5학년 사회시간이 가장 인상 깊었다는 아이들의 선택이었다. 적은 돈이지만 누군가를 위해 쓰였다는 사실이 뿌듯한지 아이들의 표정이 더욱 환해했다.      

잔액이 ‘0’이 돼버린 가계부를 한참 바라보던 *진이가 가만히 다가와서 내게 물었다.  

“선생님, 이거 안 버리고 집에 가져가도 돼요?”

“그럼 당연히 되지, 그런데 이걸로 뭘 하려고?”

“그냥 버리기 싫어요. 영화 쿠폰 경매 성공하려고 차곡차곡 모아서 성공했던 기록도 여기에 있고, 이것저것 사 먹고 벌금 내던 기억도 있어서요.”

그러고 보니 너덜너덜해진 가계부가 꼭 우리반 역사 같았다.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보낸 시간을 보물처럼 기억하고 싶어 하는 아이를 보며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경제활동이 마무리되고 학급 화폐가 사라지면 우리반은 어떤 모습일까. 1주일 동안이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청소하고, 식물을 키우고, 칠판을 닦았다. 돈도 안 주는데 왜 일해야 하냐고 가끔 투덜대는 아이도 있었지만, 친구들과 선생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자고 하면 군말 없이 했다.      

"친구들아 내년에도 우리 같은 반 되자."  문집에 친구들과 롤링페이퍼를 쓰고 있다."친구들아 내년에도 우리 같은 반 되자."  문집에 친구들과 롤링페이퍼를 쓰고 있다.


-경제교실 덕분에 돈 버는 게 참 어렵다는 걸 알았다.

-부모님이 매일 출근해서 일하시는 게 고마웠다.

-내 학원비가 얼마인지 궁금해졌고 아빠 월급이 얼마인지 물어보기도 했다.

-돈을 쓰는 게 재밌고 좋았다.

-사회생활을 미리 해보는 것 같아 꼭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월급을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게 이해가 됐다. 그래서 급식 배식과 교실 청소는 정말 힘들었지만, 인기가 많았다.

-주식 투자했다가 망했다. 선생님이 스트레스받아서 폭식하는 바람에 몸무게가 엄청나게 늘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내년엔 살을 빼서 후배들 주식 대박 나게 해 주세요.

-선생님이 2월 우리 월급을 통째로 문집 인쇄비용으로 충당해서 조금 억울했다.

-신용불량자가 돼서 기분이 안 좋았다. 내년에 다시 한다면 신용등급을 1등급으로 올리고 싶다.

-돈을 안 쓰고 모으기만 하다가 막판에 기부했는데 그게 정말 기분이 좋았다.

-전쟁터에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내 돈이 조금 쓰였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반 아이들의 1년 경제교실 소감을 보며 교사의 기대치보다 아이들이 훨씬 많은 걸 배운 것 같았다. 50년 가까이 돈이 뭐 그리 중요하냐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살아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돈이 목적은 아니지만 많은 수단이 되는 것 같다. 돈도 일찌감치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일찍부터 배우고 관리해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특히 우리반 아이들이 막판에 시간을 돈으로 사는 걸 보면서 뜨끔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자유를 꿈꾸는 내가 지금껏 너무 돈의 가치를 폄훼하지는 않았나 반성했다.


나의 제자들이 먼 훗날 어린 날의 경제 체험이 좀 더 풍요롭고 행복한 나날의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12월 어느날의 일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