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집 온 언니의 잔소리 폭격
“엄마, 어디 아파?”
조퇴해서 집에 일찍 왔더니 두 딸이 묻는다.
“아니, 주방 청소 좀 하려고.”
“갑자기 웬 대청소야?”
“너네 이모 오는데, 잔소리 안 들으려면 치워놔야지.”
친정엄마 기일을 앞두고 일주일 전부터 우리 집은 비상이 걸린다. 조퇴까지 하며 하루는 주방, 하루는 냉장고를 다 뒤집었다. 오래된 음식들은 버리고 냉동실 정체불명의 것들도 모조리 처리한다. 기름때가 덕지덕지 붙어있던 냄비도 반짝반짝 닦는다.
30년 전 상경해 자취하던 시절도 그랬다. 엄마가 올라오신다 하면 온 방을 홀라당 뒤집었다. 속옷 서랍까지 가지런히 정리했다.
“아이고, 우리 막내딸 야무지게 살림 잘하네.”
그 칭찬이 듣고 싶어서였다. 이제는 엄마가 안 계시니, 언니의 입에서라도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건가 싶어 웃음이 난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유똥개, 이게 치운 거가?” (어릴적 부터 언니는 날 유똥개라 불렀다. 맨날 언니만 졸졸 따라 다녀서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안방 꼬락서니가 이게 뭐고?”
“이불장은 폭격 맞았나?”
언니의 첫마디는 언제나 이렇다. 칭찬은커녕 핀잔뿐.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점심상에선 계란 지단 두께를 두고 잔소리가 이어진다. 뭐든 대충 하는 나와는 달리 언니는 정석이다. 밥상이 차원이 달라진다. 딸들은 이모의 손맛에 감탄하고, 남편은 ‘마누라 잡는 처형’을 은근히 좋아한다.
엄마 살아계실 때도 언니의 살림 솜씨는 나와 비교되며 칭찬받았다. 사실 어린 시절 부터 언니에겐 늘 완패였다. 난 뭘 해도 어설펐고 언니는 손끝이 야물고 빨랐다. 음식 솜씨 좋은 엄마의 유전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언니는 부엌살림을 도맡아 했다. 나는 그 옆에서 흉내만 내던 동생이었다.
수십 년이 지나도 자매의 구도는 변하지 않는다. 분명 내가 주인인 우리집에 언니가 등장하면 초라한 조연으로 전락한다. 동생 집에 온 언니는 잠시도 앉아 있을 틈이 없다. 씻고 정리하고 음식을 하는 그녀 옆에서 나는 거들뿐이다. 그런데 언니가 잔소리 퍼레이드를 펼치는 모든 장면이 이상하게 기분 좋다.
“언니! 그만하고 나가자.
맛있는 커피 먹으러 가자!
백화점 구경 가자!”
올해는 최대한 집에 있는 시간을 줄이고 밖으로 나돌아 댕겼다. 1박 2일 동안 오랜만에 만난 남매가 별별 수다들 다 떨며 웃었다.
언니와 오빠가 떠나고 이불장을 쏟아 이불을 정리해 본다. 딸들이 킥킥거렸다.
“엄마한테 맨날 우리만 잔소리 들었는데 엄마도 혼나니까 괜히 고소하다.”
남편도 거든다.
“처가 식구들 자주 와야겠네. 집이 훤해져.”
그 말에 나도 웃었다.
엄마의 기일에 언니의 잔소리를 듣고 오빠와 재밌는 추억도 만들었다. 우리 남매가 세상에 안 계신 엄마를 살아내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