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투리 엄마’라는 그림책을 읽어줬다.
몇몇은 읽었는지 아는 척을 한다.
“이 얘기 슬프다.”
“엄마가 죽어.”
손가락을 입술로 가져간다.
“처음 보는 친구들을 배려해서 쉿~~!”
꽤 긴 이야기라 반만 읽어주기로 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집중해서 잘 들어서 모조리 읽어줬다.
산불이 번지고 엄마 까투리까지 불이 덮친다.
엄마 까투리는 퍼드덕 날갯짓하며 불길을 피해 날아오른다.
그러다 다시 내려온다.
날지 못하는 새끼들이 있기 때문이다.
흩어졌던 새끼들은 엄마 주위로 다시 모여들고...
그렇게 불길을 피하며 날아올랐다 내려왔다를
몇 번 반복한다.
안 되겠는지
엄마 까투리는
새끼들을 모아놓고 자리에 앉는다.
날갯죽지로 아홉 마리 모두 품는다.
불길은 사정없이 엄마 까투리를 덮친다.
순간 목소리가 떨리며 눈물이 났다.
“왜 눈물이 나지? 잠시만.”
호흡을 가다듬으며
아이들을 쳐다보니 몇몇이 눈물이 글썽인다.
나머지 아이들도 숨을 죽이고 있다.
“엄마 까투리가 일부러 내려왔죠?”
“그냥 날아가면 살 수 있는데....”
“슬퍼요.”
“엄마 까투리 진짜 죽어요? 새끼도 죽어요?”
새끼를 품은 엄마 까투리는
뜨겁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다.
사나운 불길이 덮쳐도 엄마 까투리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산불이 그치고 동네 박서방이 산에 올라왔다가
새까맣게 탄 엄마 까투리를 발견한다.
그런데 숯이 된 엄마 까투리 날갯죽지 아래로
새끼 아홉 마리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삐삐 삐삐.
모두 솜털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 있다.
박서방은 그 장면이 한도 신기해도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새끼 까투리를 지켜본다.
새끼 까투리들은 모이를 쪼아 먹다가
밤이 되면 죽은 엄마 까투리 날갯죽지 아래로 모여든다.
그러기를 여러 날 여러 달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아기 까투리들은 깃털이 돋아나고 날개도 커진다.
하지만 엄마 까투리는 뼈만 앙상히 남는다.
“이 이야기를 쓴 작가는 권정생 선생님이야.”
“어? 선생님, 강아지똥 쓴 할아버지 아니에요?”
“맞아. 그런데 강아지똥 이야기하고 비슷한 점 없니?”
“어? 강아지똥도 빗물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민들레 꽃을 피웠잖아요.”
“둘 다 슬퍼요.”
“민들레를 사랑하고 새끼들도 사랑해요.”
“오~~ 너희들 정말 대단해. 그런 것을 다 생각하다니.”
뼈가 부서지고 흔적도 없이 엄마가 사라져도
엄마 냄새가 남아 있는 자리로
새끼 까투리는 오랫동안 모여들어
잠이 든다.
그렇게 엄마 까투리는 오랫동안 새끼들을 지켜줬다.
하늘로 훨훨 새끼들이 날아서 떠날 때까지.
책을 다 읽었는데도 아이들이 고요하다.
“부모님께 할머니께 더 잘해야지?
선생님은 더 잘해 드릴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단다.”
또 갑자기 목이 멘다.
“사랑과 감사는 늘 표현하렴.
말로 해도 되고 편지로 써도 되고 아님 그림으로 그려줘도 돼.
그것도 힘들면 그냥 안아주는 것도 좋아.”
등굣길에 **가 갑자기 초코파이를 하나 쑥 내민다.
“어? 어제 준 거 안 먹었어?”
“아뇨. 그건 먹었고요. 이건 제가 선생님께 주는 거예요.”
쑥스러운 듯 쪽지도 하나 건넨다.
아무렇게나 찢은 종이에 ‘감사해요. 사랑해요’라고 적었다.
우리 반 여자아이들은 늘 표현한다.
편지 써 주고 그림 그려주고 나를 안아준다.
그리고 수시로 머리 위 하트 표시도 하고 엄지 척도 해준다.
좀처럼 꿈쩍 안 하는 남자 녀석들이 표현하기 시작했다.
우리 반 에너지 가득 **.
수학 비교 놀이 코너 학습 시간
빨대로 뭔가를 만들어 놓고 날 잡아 끈다.
“이게 뭐야? ‘길다’에 맞게 모양 만들라고 했는데 이건 뭐지?”
좀처럼 모르겠다.
“하트요.”
가만히 보니 찌그러졌지만 하트 모양 같긴 하다.
“엥? 누구한테 주는 하트야?”
“선생님 사랑한다고요.”
쑥스러운지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아이고, **가 이런 말을 하다니.
갑자기 ** 어머니에게 자랑하고 싶다.
다섯 개의 놀이 코너를 만들고
젠가, 블록, 빨대, 큐브, 컵들로
길다, 넓다, 높다, 많다 등 모양에 맞게
친구들과 협동하며 만들어보라 했더니
아이디어 만발이다.
타이머로 5분씩 맞추고 돌아가며 5개 놀이를 너무나 재밌게 한다.
친구랑 싸우지 않음을
칭찬하고 또 칭찬해준다.
“놀잇감 같이 만졌으니 이제 손 씻고 오자.”
여름 시간에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
카드를 꾸미고 편지를 써본다.
“선생님, 글자를 잘 모르는데요.”
“걱정 마. 선생님이 도와줄 거야.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데?”
칠판에도 한가득 써주고
개별로는 종이에 원하는 대로 써줬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다.
그걸 글자로 써서 전하고 싶은 욕구.
‘녀석들, 글자를 배우고 싶은 동기부여됐겠지?’
“가족에게 꼭 전달해야 해요.”
**가 갑자기 교실 앞으로 튀어나온다.
삐뚤삐뚤 그림과 글씨로
‘유현미 선생님 사랑해요’
라고 썼다.
“너희들 편지도 좋지만 ** 편지는 더 감동인데?”
“왜요??”
“몰라. 그냥.”
**는 요즘 친구들에게 이름도 가끔 부르며 인사하고
눈 맞춤, 그리고 말도 조금씩 하고 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의 작은 변화에도
모두 흥분하고 좋아한다.
그런 아이들이 난 신기하면서도 고맙다.
요렇게 매일 사랑고백받고
애정 듬뿍 담긴 달콤한
속삭임을 듣는 교사는
분명 복받은 직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