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를 낮춘다는 것

스물여섯 딸의 첫 출근을 보며

by 포롱

눈높이를 낮추는 것도 ‘용기’


큰딸이 두 달 전부터 출근을 하고 있다.

일하기로 마음을 먹던 날, 딸은 펑펑 울었다.
그동안 참 열심히 달려왔는데, 기대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않아 속상하다고 했다.

훌륭하고 강한 엄마였으면 좋았으련만,
부족한 엄마는 옆에서 따라 울었다.

“잡히지도 않는 미래를 계속 준비하는 것보다
일단 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는 게 맞지…?”

그렇게 묻는 딸에게 선뜻 어떤 말도 해주지 못했다.
고작 조심스럽게 꺼낸 한마디는
“미련이 남으면, 계속 도전해 봐.”였다.

딸은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되는 건
앞으로도 안 될 수 있다며, 마음을 다잡겠다고 했다.

큰딸은 올해 2월, 대학을 졸업했다.
교환학생, 복수전공, 세 번의 인턴….
이런저런 배움과 경험을 쌓느라
6년 만에 캠퍼스를 벗어났다.

학회에, 창업에, 동아리에
스펙을 쌓느라 고생했고
현장 실무 경험도 쌓았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다.

8개월의 백수 생활 동안
딸은 아마 백 군데도 넘게 이력서를 넣었을 것이다.

자신을 떨어뜨린 회사들은
불매하겠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지만,
어느 날은 물건을 사러 가도, 마트를 가도
온통 자기를 거절한 회사들만 보인다며
이러다 한국을 떠나야 할 판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상반기 공채에서는
서류 합격률이 가뭄에 콩 나듯 했지만,
하반기엔 통과율이 조금씩 높아졌고
면접도 제법 보러 다녔다.

“이제 하나쯤은 되겠지?”
작은 희망도 생겼다.

그러나 그렇게 가고 싶던 기업의 최종에서 떨어진 날,
딸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말했다.

“벌써 면접만 열 번째야.
이제 대기업 준비는 그만해야 할 것 같아.”

사회에 첫발도 못내딛는

젊은이들의 좌절


최근 뉴스에서는
20·30대 고학력 장기 백수 수가
13개월 만에 가장 많아졌다고 한다.

‘일자리 밖’ 2030 세대가
160만 명에 육박한다는 보도를 보며,
가장 마음이 아픈 지점은
사회에 첫발조차 내디디지 못한
20대 청년들의 좌절과 불안이다.

고급 인력은 넘치고,
갈 만한 좋은 일자리는 부족한 현실.

딸 말로는
직군당 한두 명을 뽑는 최종 면접에서도
경쟁자가 열 명은 기본이라고 했다.

PPT 발표, 그룹 토의,
하루 종일 이어지는 실무 테스트.
그 자리에서
현직 경험까지 갖춘 ‘중고 신입’을 만나면

“내가 채용자여도
그 사람을 뽑았을 것 같아.”

딸은 담담히 말했다.

해줄 수 있는 조언이 마땅치 않다.
그저 등을 토닥여 주고,
몰래 용돈을 조금 더 넣어주는 일 정도가
어른이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다.

야근이 일상이 된 첫 직장


딸은 지난주 내내 야근을 했다.
어떤 날은 11시에 돌아와서도
업무용 노트북을 켜고 앉아 있었고,
어떤 날은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들었다고 한다.

같은 집에 살고 있지만
이제 저녁을 함께 먹는 건 어려워졌고,
주말이 되어서야 대화가 가능할 지경이다.

속상한 마음에
“시간 외 수당 받아?”라고 물었다가
순진한 엄마 취급을 받기도 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을 제외한 많은 직장들이
여전히 포괄임금제로 근로계약을 맺고 있음을 알고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도전해 보라고 할 걸 그랬나.’
‘그래도 뭐든 해보려는 게 기특하잖아.’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그런데 딸은 의외로 담담했다.

“힘들 줄 알고 갔어.
워라밸 없는 걸로 유명한 회사야.”

좋은 동기들과 선임들 덕분에
생각보다 견딜 만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인턴 시절, 첫 야근 날
집에 가고 싶어 화장실에서 몰래 울었다던 아이가
이제는 말한다.

“야근할 땐
저녁을 꼭 챙겨 먹어야 한다는 걸 알았어.”

그 말이 대견했다.

며칠 전, 유난히 마음이 고되던 날엔
혼잣말처럼

“엄마 보고 싶다… 엄마 보고 싶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고 했다.

나 역시 힘들 때면
‘엄마~’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그런데 이제

우리 딸에게도
내가 그런 존재가 된 것 같아
고맙고, 감격스러워
순간 목이 메었다.

스물여섯, 엄마표 도시락


딸은 매주 월요일이면 도시락을 싸 간다.

월 20만 원의 중식비로는
강남 인근에서 점심을 먹기엔
부족하기도, 배부르지도 않다며
동기들과 주 1회 ‘집밥 데이’를 만들었다고 했다.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며
신경 쓰지 말라지만,
잠이라도 더 자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결국 엄마표 도시락이
출근길 앞에 놓인다.

스물여섯이나 돼서
엄마 도시락을 먹는 게 미안하다면서도
도시락 가방을 들고
헤헤 웃으며 나가는 모습은
여전히 초등학생 같다.

그 모습이
왜 이렇게 귀엽고 흐뭇한지 모르겠다.

딸아,
일도 삶도 천천히.
그리고 단단해지기를.


첫 직장은 누구에게나 낯설고 힘겹다.
혼나고 깨지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같은 길을 지나온 인생 선배로서 바란다.

좋은 사람들과 건강하게 지내기를.
작은 성취에도 기쁨을 느끼기를.
도움과 배려를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너 자신을 잃지 않기를.


아이고,
욕심 많은 엄마의 바람이 또 줄줄 나온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우리 딸은 결국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갈 아이라는 걸.

그저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덧붙이는 말

직장의 젊은 동료들….
그들이 내 딸인 것처럼 대하리라 마음먹지만,
사실은 내가 그들에게서
더 많이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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