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거북이 찾기

아홉 살 첫 경제교육

by 포롱


가게 간판을 만들고 물건을 진열하고 진지하게 나눔시장을 열고 있는 아이들.

연말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다.

지인의 할머니께서 구순의 나이에 병세가 깊어져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셨다고 했다.
혼자 살림을 꾸리며 지내시던 할머니는 어느 날
딸과 아들 둘을 불러놓고
집 곳곳에 숨겨둔 패물과 금품,
중요한 문서들을 모두 찾아오라고 하셨단다.

세 남매는 엄마의 말대로
귀중품을 하나하나 모아 왔는데
그제야 알았다고 했다.
엄마가 그렇게 돈이 많은 사람인 줄.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지만
할머니는 그 보물들을 끌어안은 채
병원에서 지내셨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엄마가
혹시라도 그것을 잃어버리거나
누군가의 손을 탈까 봐
삼 남매는 매일 교대로 엄마 곁을 지켰다.

이북에서 내려와 평생 악착같이 일하며
일가를 이룬 분이었다.
셈도 빠르고 영특했던 할머니는
“이상하게 금거북이 하나가 없다”며
집을 뒤집어서라도 찾아오라고 하셨다.

이 많은 돈을 어디에 쓰실 거냐고 물으면
늘 같은 대답만 돌아왔다.

“다 쓸 데가 있다.”

자식들은 금거북이를 찾고
엄마의 보물상자 곁을 지키느라
두어 달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할머니는 의식을 잃었고
며칠 뒤 세상을 떠나셨다.

아직도 지인의 엄마와 삼촌들은
할머니의 금거북이를 찾느라

유품 정리를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이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은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잠시 말없게 만들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지인의 할머니였지만
‘그 계획이 뭐였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2학년 아이들과
석 달 동안 진행한 경제교실 프로젝트가 끝났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직업처럼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그 대가로 돈을 벌고
또 써보는 활동이다.
물론 이 돈은 우리 반만의 가상화폐이고
단위는 ‘냥’으로 정했다.

학급 1인 1역도 일이었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공부하는
학생의 본분에도 ‘보너스’가 붙었다.

가계부에는 숫자뿐이었지만
그 숫자를 키우기 위해
아이들은 독서록을 쓰고
글똥누기에 정성을 들였다.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며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열심히 살며 돈을 벌거라.

우유를 배달하고
교실 온도를 조절하고
선생님 심부름을 하고
빗자루질을 하며
아이들은 실물이 아닌 숫자가
커지는 것만으로도 뿌듯해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반 ‘부자 순위’를 만들어 놀았다.

하지만 돈을 벌기만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공짜로 주어지던 것들에
가격이 붙었다.
학습지를 잃어버리면 돈을 주고 사야 했고
공책이 없어도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규칙을 어길 때마다
‘페널티’라는 이름의 지출도 생겼다.

소리를 지르거나
교실을 뛰어다니면
잔소리는 필요 없었다.
규칙이 벌금과 연결되자
교실은 스스로 조용해졌다.

선생님의 보물창고

추억에는 시간과 돈을 아끼지 말거라.

쉬는 시간마다 간식을 팔기 시작했다.
젤리, 사탕, 제티.
참는 아이도 있었고
버는 족족 사 먹는 아이도 있었다.

먹고 나서 금세 후회하는 아이들.
“아, 참았어야 했는데.”
“선생님 미워요. 왜 자꾸 저를 꼬시는 거예요.”

10월쯤부터는 추억 쿠폰을 팔았다.
영화 관람, 안양천 소풍,
피자 보드게임, 문래동 먹방 투어, 쇼핑 쿠폰.
경매 방식으로 진행하자
아이들의 성향과 취향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이들은 그동안 모은 큰돈을
아낌없이 썼다.


선생님의 음식창고

남겨질 돈의 의미를 생각하라

어제는 프로젝트의 마지막,
나눔 장터가 열렸다.

집에서 필요 없는 물건을 가져와
친구들과 사고팔았다.

통장에 남은 돈으로는

선생님의 보물을 경매하며
마지막 선택을 해야 했다.

아이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전 재산을 썼다.

큰 강아지 인형을 사고
아빠를 위해 골프공을 고르고
엄마를 위해 머리핀을 사며
아이들은 환하게 웃었다.


“돈이 아직도 남았어요.

라고 하는 아이들에게

기부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은 가계부에 남은 돈을
기꺼이 내놓았다.

“우리 돈은 진짜가 아닌데요.
그 진짜 돈은 어떻게 생겨요?”

“선생님 돈으로 하는 거야.”

와—
하는 소리가 났다.

“선생님은 집에 있는 좋은 물건도 가져오고
돈도 내놓고… 진짜 부자죠?”

“ 선생님은 돈 부자는 아니고
사랑 부자야.”

돈은 남길수록 무겁다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부자의 기준은
각자의 삶만큼이나 다를 것이다.

평생 모은 돈을 끌어안고
“다 쓸 데가 있다”라고 말하던
지인의 할머니는
끝내 그 계획을 말하지 않고 떠났다.
금거북이 하나가 발견되지 않은 채로.

햇살반 아이들이
가계부를 덮었다.
숫자는 인형이 되고
치킨이 되고

장난감이 되며
하루의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조금은 남아
누군가에게 조용히 건네졌다.

어쩌면 돈은
남길수록 무거워지고
써질 때에야
비로소 가벼워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가끔 생각한다.

그 할머니의 금거북이는

어디에 있었을까.

친구들에게 물건을 팔려고 열심히 설명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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