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지은 동시 낭독하며 무언극으로 학예회 준비
신나게 춤을 출까,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까,
아니면 악기를 연주할까.
학예회를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1학기 때 배운 동요가 있으니, 그걸 부르며 율동을 더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신나는 응원춤을 춰도 2학년 아이들이면 앙증맞을 게 분명했다.
학예회는 처음인 아이들과 그 의미부터 찾아보고 싶었다.
몇년전 선배들의 영상을 보여주며
'이런 행사를 통해 우린 뭘 배울 수 있을까' 질문을 던졌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똑똑하다.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솜씨를 뽐낼 수 있어요.
-연습하는 동안 친구들과 협동할 수 있어요.
-잘하는 친구들이 어려워 하는 친구들을 도와줄 수 있어요.
-모든 친구들이 서로 배려하며 협동할 수 있어요.
-힘들어도 노력하며 모두 참여하는 무대를 만들어요.
오호라~~!!!
"그럼 우리반만의 특색, 자랑할 수 있는 무대로 어떤 게 좋을까?"
누군가 한마디 툭 던진다.
"우리반요? 글도 잘쓰고 낭독도 잘해요"
"그래? 그럼 우리가 직접 쓴 동시 낭독할까?"
그렇게 동시를 낭독하기로 결정했다.
펄떡펄떡 살아있는 아이들의 이야기,
처음엔 단순한 낭독회를 염두에 뒀다.
하지만 아무리 재밌는 시라도, 목소리만으로 채우면 밋밋할 것 같았다.
그래서 결정했다.
“동시 낭독극을 해보자.”
아이들이 직접 쓴 시를 녹음하고,
그 목소리에 맞춰 무언극을 만드는 것이다.
이보다 ‘우리다운’ 무대는 없을 것 같았다.
제목은 '아홉 살은요!!'
아이들이 그동안 썼던 동시를 모아서
학교생활, 운동장, 동물 세상, 사건 발생, 그리고 가족,
이렇게 다섯 파트로 묶자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첫 시작은 녹음이었다.
1학기부터 낭독을 하던 아이들이라,
며칠 만에 또랑또랑한 목소리의 음성 파일이 완성됐다.
집에 돌아와서는 편집을 시작했다.
자르고 붙이기를 반복했다.
파트가 바뀔 때마다 무대 전환용 음악을 짧게 넣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다.
그래도 어쩌겠나.
일은 이미 벌어졌고, 어쨌든 무대는 올려야하니.
그렇게 해서 10분짜리 음성 파일이 완성됐다.
이제는 동시에 맞게 몸으로 표현할 차례였다.
예시 동작을 몇 개 보여주고,
“너희들이 직접 만들어보자”라고 했더니
처음엔 다들 막막해했다.
“‘하늘이 높다’를 어떻게 해요?”
“모르겠어요.”
어려워도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보라 했다.
그런데 놀라웠다.
한두 명의 아이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교사 혼자서는 절대 떠올리지 못할,
아이들만의 재치가 번뜩였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칭찬을 퍼부었다.
“그거 너무 멋지다! 바로 그거야!”
그 말에 불이 붙은 듯, 다른 팀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섯 팀의 몸짓이 완성됐다.
마지막은 무대에서 쓸 소품 만들기였다.
‘선생님’ 팻말,
엉뚱한 곱셈구구 숫자,
신문으로 만든 야구방망이,
아빠의 콧수염, 치킨과 코다리 그림까지.
아이들의 손끝이 진지했다.
이제 소품을 들고 교실에서 본격적인 연습이 이어졌다.
음성 파일과 동작을 일치시키고, 친구들과 호흡을 맞췄다.
어느새 아이들은 친구들의 동시를 줄줄 외우기 시작했다.
어쩌다 연습을 쉬는 날이면,
오늘은 왜 안 하느냐고 채근했다.
이놈들아… 수업은 언제 하냐.
본공연을 앞두고 지난 금요일, 체육관 리허설이 있었다.
교실에서 연습만 하던 아이들은
진짜 무대에 서자 잔뜩 굳었다.
신나게 노래 부르고, 춤추고, 악기를 연주하는 다른 반 아이들이 꽤나 부러웠던 모양이다.
“선생님, 우리도 그냥 춤출 걸 그랬어요.”
그 말에 잠시 후회했다.
‘그냥 한 판 신나게 놀게 해 줄걸...’
그때 옆에서 한 아이가 말했다.
“그래도 우리 반은 특별한 걸 하잖아.
다른 반 애들이 우리 거 부러워할걸?”
연습무대가 끝나자
동료 선생님들의 칭찬일색.
“와, 너무 신선해요.”
“아이들 목소리와 무대에서 몸짓이 이어지는 게 감동이에요.”
친구들의 환호성과 박수세례를 받은 아이들의 얼굴에도
뿌듯함이 보였다.
내일이면 진짜 학예회다.
단 10분의 무대를 위해
한 달 동안 아이들과 함께 연습한 시간,
친구의 익살스러운 표정에 빵 터지고
예상치 못한 동작에 감탄하며
영상을 찍어 돌려보며 함께 고민하던 순간.
노래도, 춤도, 악기도 없지만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그동안의 노력과 정성을
마음껏 뽐내길 바란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이 작은 무대에서 아이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우리의 동시 낭독극 '아홉 살은요!'
우리의 하루하루가 쌓여 만든
성장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