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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Apr 30. 2023

소곤소곤 귓속말의 위력

요양병원 시어머니 면회날... 목청 큰 며느리의 반성

10여 년 전 겨울, 수백 포기 김장을 하시다 쓰러진 시어머니는

골든 타임을 넘겨서 발견되셨다.

어머니는 고향 대학병원에서 뇌출혈 수술을 긴급하게 받으셨지만

반신 마비라는 병마와 싸우시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치매까지 얻으셔서 우리를 슬프게 했다.

부축받으며 어색하게 걷던 어머니는

언제부턴가 휠체어를 타셨고 지금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만 계신다.

기억의 조각도 눈 녹듯 조금씩 사라져 버렸다.  

주인을 잃고 빛바래가는 어머니의 손때 묻은 물건들.

지난 2월 어머니는 고향 땅을 떠나셨다.

건강이 악화해 서울 큰 형님 댁 근처 요양병원으로 이송되셨다.

긴 세월 시골 어머님을 뵈러 가는 길은 전쟁이었다.

긴 운전 후 짧은 만남,

노쇠해지고 희미해지는 어머니의 기억.

상경길 내내 부부는 말이 없어졌고

집에 오면 파김치가 됐다.

고향 가는 길이 힘들었지만, 기쁨이었다는 남편은

어머니의 서울행을 슬퍼했다.

평생 살아온 곳을 떠나 물도 설고 낯도 선 곳에서

어쩌면 여생을 마칠 수도 있다는 게 안타까웠을 것이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할머니가

의사소통이나 제대로 하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어머니의 물건들을 쳐다보고 있으면 자꾸만 눈물이 난다.


4월의 끝자락, 바람 불고 쌀쌀한 주말.

아침을 여유롭게 먹고 전철을 탔다.

5호선 서쪽 끝에서 출발,

동쪽 끝까지 가면 어머니를 뵐 수 있다.

며느리들 아까운 늦잠을 깨울까

꼭두새벽부터 살금살금 명절 준비를 하시던 나의 어머니.

오늘은 많이 웃어주시고 목소리도 들려주실까?


면회 예정 시간 오전 11시.

함께 하기로 한 작은 형님네를 병원 앞에서 만났다.

남편보다 세 살 많은 작은 아주버님은

얼굴이 더 좋아지셨다.

남편은 오늘따라 왜 저 다지도 영감 같은지.

염색이라도 할 것이지.

저 허연 머리가 자꾸만 신경 쓰인다.

“형님, 얼굴 살이 더 빠지셨어요.”

“동서, 말도 마. 피부 알레르기가 다시 생겨서 고생 중이야.”

오랜만에 만난 작은 형님 얼굴이 더 작아지셨다.

늘 살과 전쟁 중인 내게는 부러운 모습이다.


형님네가 간이 코로나 테스트를 하는 동안

남편은 병원 직원과 실랑이 중이다.

이렇게 면회 예약이 힘드냐며 자주 만날 수 있게

방도를 만들어 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 같다.

병원 직원은 보건소 지침을 따르는 것뿐이라며

정중히 양해를 부탁한다.

안타까운 자식의 마음을 이해해서일까.

직원은 생떼 부리는 어린아이를 다루듯

조만간 면회가 자유로워질 거 같다는 말로

남편의 뾰족한 마음을 달래주는 것 같다.     


드르륵 병실 문을 열고 두 아들 부부가 나란히 들어갔다.

“어머이 이* 왔어요!”

“어머이 필*도 왔는데!”

남편의 말이 이어진다.

“어머이가 제일 예뻐하는 둘째 며느리도 왔고 막내며느리도 왔어요.”

어머니가 잠시 눈길을 돌리는 것 같더니 이내 눈빛이 초점을 잃는다.

콧줄로 음식이 들어가고 있다.

“어머이, 어디 아픈 데 없어요?”

“어머이, 얼굴 저번보다 좋아졌네요.”

할 말은 더 없어 보이는 아들 둘.

이번엔 며느리 차례다.

작은 형님이 먼저 어머니 옆으로 갔다.

그런데 한 손을 어머니 귀로 가져간다.

그리고는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는 게 아닌가.

거짓말처럼 어머니가 씩 웃으신다.

헐, 대박!


눈을 의심했다.

뭐지?

형님이 지금 뭘 한 거지?

남편이 옆에서 웃음을 터트린다.

“와~ 형수, 대박입니다.”

남편의 웃음의 의미.

나는 안다.

어머님을 대하는 두 며느리의 차이.    

 

나는 하이톤의 목청을 타고났다.

소프라노 ‘솔’ 음으로 인사한다.

“어머니!! 저 왔어요. 셋째 며느리 왔어요. 서*이 엄마요.”

“어머니, 어머니, 저 몰라요?”

반응 없는 어머니.

속 타는 며느리의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어머니는 천정 구석 어딘가를 보고 계시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목소리 커진다.

“어머니!! 여기 어딘 줄 아세요?”

묵묵부답.

“네 시간 구급차 타고 서울 오셨잖아요. 기억나셔요?”

미동도 하지 않으시는 어머니.

“어머니, 이름 뭐예요? 성은 박 씨죠?””

목소리 커진다.

“박윤*씨!! 박윤*씨!!”

병실 가득 이름 석 자 쩌렁쩌렁 울린다.

그제야 쳐다보신다.

“어머니, 여기 셋째 아들도 왔어요.”

피곤하신지 눈을 감아버리시는 어머니.


고요한 병실이 소란스러워져서일까.

옆 침상 할머니들이 기척을 하신다.

순식간에 커튼들이 제쳐졌다.

병실엔 네 분의 할머니가 더 계셨다.

연신 “아야야~~ 아프다!”를 외치는 할머니.

물끄러미 쳐다보시는 창가 할머니.

맞은편 할머니는 침상을 일으켜 세우시고는 말까지 거신다.

“아이구 손녀가 젊네. 예쁘다! 어디서 왔노?”

“**에서 왔어요. 할머니는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나는 90이 넘었지. 니는 몇 살이고?”

목소리는 떨리지만, 발음은 분명하시다.

몇 마디 하시고는 힘에 부치시는지 입을 다무신다.

“할머니, 얼른 건강해지셔서 집으로 돌아가셔야지요.”

“곧 간다. 곧 나갈 거다.”

이내 등을 돌리시는 할머니.

이번엔 간병인 아주머니와 한참을 수다 떨었다.      


작은 형님은 어머니를 고요히 살핀다.

얼굴을 쓰다듬고 손을 만져준다.

작은 상처도 그냥 보는 법이 없다.

왼손에 낀 장갑을 풀어 손을 한번 펴주고 마사지를 해준다.

그리고 또 귀에다 입을 갖다 대고는 속삭이신다.

그 광경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하이톤 소프라노 막내며느리에게는 미동도 않더니

귓속말 소곤소곤 형님에겐 자꾸만 웃어주신다.     


어머니를 뵙고 돌아온 저녁

밥 먹다 말고 남편이 자꾸 웃는다.

형수가 어머니한테 귓속말하던 광경이 자꾸 생각난단다.

두 딸과 함께 또 한바탕 웃었다.

기차 화통 삶아 먹은 우리 엄마에게는

절대 기대할 수 없는 광경이라나 뭐라나.     


나도 다음번엔 귓속말로 어머니께 말을 걸 거다.

그리고 요렇게 속삭일거다.

“어머니, 형님이 귀에다 대고 뭐라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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