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제, 세 번의 전시회를 다녀왔다
어제 나의 하루는 꼭 전시회 같았다.
아니 전시회였다.
나는 하루 동안 세 번의 전시를 다녀왔다.
샤갈과 꿈을 보고, 상실을 껴안고, 사랑을 떠올렸다.
서초동 한전 아트센터, 목우전.
나는 안승희 화가의 전시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전시장 한편에 걸린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어머니가 휠체어에 앉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마주 보는 장면.
그 그림은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끌림이 있었다.
그림 속 어르신들은 실제 안승희 화가의 부모님이다.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아버지는 화가 곁에 계신다.
화가는 코로나 시기의 간호와 이별의 기억을 붓끝에 담아냈다.
화려하지도 설명적이지도 않은 그림.
그저 조용히 '살아낸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용함이, 더 큰 말을 건넸다.
삶의 가장 깊은 자리란 말보다 기억으로 남는다는 것을.
전시장을 나와 나는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흰 드레스와 정장, 환한 꽃과 음악.
그리고 함께 멋진 삶을 살겠다고 선언하는 멋진 신랑 신부가 있었다.
그 장면은 축하였고 선언이었으며 하나의 작은 전시였다.
나는 문득 샤갈의 연인들이 떠올랐다.
그의 그림 속 연인들은 현실의 중력을 벗어나
하늘을 떠다니거나 꽃 속에 앉거나 거꾸로 매달려 있다.
하지만 그 모두가 말하고 있는 건 하나다.
‘사랑은 우리를 가볍게 한다’는 것.
그날, 신랑 신부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꽃이었지만,
그들이 마주한 건 ‘미래’라는 캔버스였다.
안승희 화가가 내게 티켓을 건네주었다.
축하의 웃음과 따뜻한 인사 그리고 고마움이 담긴 식사 후에
나는 하루의 마지막 전시처럼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샤갈
그의 그림은 한눈에 이해되지 않았다.
하늘을 나는 사람들, 뿔이 난 모세,
스테인드글라스의 천사와 말…
하지만 전시장을 천천히 걸으며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그 낯섦은 하나하나 의미로 다가왔다.
그는 러시아 비테프스크의 작은 유대인 마을에서 태어나
사랑하는 아내 벨라를 평생 그렸고
전쟁과 망명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그의 그림 속 연인들은 하늘을 떠다니고
꽃은 날개처럼 피어났다.
특히 뿔이 난 모세를 그린 그림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히브리어 ‘광채’를 ‘뿔’로 잘못 번역한 전통 속에서
샤갈은 그 오류를 경외의 상징으로 바꾸었다.
그건 그의 그림이 가진 힘이었다.
슬픔조차도 색채로, 상처조차도 빛으로 바꾸는 힘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라 퐁텐 우화를 에칭으로 표현한 동판화 시리즈였다.
작은 동물들 사이에 담긴 교훈적 이야기들이
몽환적이고 어딘가 애틋한 분위기로 새겨져 있었다.
그는 성경과 우화, 사랑과 상실을
하늘을 나는 연인의 색감으로 그려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오래 붙잡았던 그림은 바로 이것이었다.
샤갈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그림엔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파리 풍경, 여인과 아이, 천사와 연인들이 함께 그려져 있었다.
붉은 태양, 하늘을 나는 사람, 그리고 나무 위의 인물들까지.
샤갈의 상징들이 이 한 폭에 응축되어 있었다.
안승희 화가의 그림 앞에선 기억과 이별,
결혼식장에선 시작과 다짐,
샤갈의 그림 앞에선 그 모든 감정의 이유를 마주했다.
그의 천사와 말, 성인과 꽃이 가득한 그림 속을 걷다 보니
내 마음 어딘가에도 조용히 걸려 있던 한 폭의 그림이 떠올랐다.
혹시 당신도 나처럼 샤갈의 그림이 낯설게 느껴졌다면
그건 어쩌면 그림 때문이 아니라
그림을 감정으로 보는 법을 아직 몰랐기 때문일지 모른다.
오늘을 살아낸 당신의 마음에도
누군가 아직 읽지 못한
한 장의 따뜻한 그림이 남아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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