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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과학자 Mar 24. 2022

'자아'라는 환상, '우리'라는 연결

[서평]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그 누구도 그 자체의 온전한 섬이 아니다.
인간은 대륙의 일부분, 전체의 부분이다.
- John Donne -


유명한 영국 TV 프로그램인 '오직 바보와 말'의 한 에피소드에서 등장인물 트리거가 빗자루를 들고는 친구들에게 20년 된 빗자루라고 자랑하며, 이번에 머리 부분을 17번째로 교체했고 손잡이는 14번째로 교체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그의 친구들은 어리둥절한다. '그럼 어떻게 그걸 같은 빗자루라고 할 수 있지?' 그중 한 명이 트리거에게 질문했고, 트리거는 그 빗자루를 든 자신의 오래전 사진을 보여주면서 사진 속 빗자루와 지금 손에 든 빗자루가 절대적으로 비슷하므로 그건 문제가 안 된다고 대답했다.


우리 몸은 약 37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포는 평균적으로 7년에서 10년밖에 살지 못한다. 내막 세포는 5일, 피부 표피세포는 2주, 적혈구는 4개월을 산다. 물론 오래 사는 세포들도 있다. 골격 세포와 창자 세포는 약 15년을 산다. 이렇게 죽은 세포는 청소부 세포에 의해 효과적으로 교체되어, 배설물을 통해 배출되거나 피부를 통해 공기 중으로 떨어져 나간다. 우리 몸거의 모든 물질이 주기적으로 교체된다.


'우리 몸은 트리거의 빗자루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우리 몸의 세포가 대체 고 겉모습이 조금 변했어도 독자적인 나의 원천인 '자아'가 있으니 '나는 나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의 저자 '톰 올리버'는 우리가 믿고 있는 이러한 통념 정면으로 반박한다.


'나를 규정짓는 유일무이한 자아는 그저 잔인한 환상일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믿을 만한 이야기'라고 착각한다.
- p. 146


일찍이 1930년대 연구자들은 기억이 과거의 사건을 정확하게 복사한 것이 아니라 재구성된 이야기와 같다는 걸 알아냈다. 우리가 과거의 기억을 회상할 때마다, 기억은 변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사고 영상을 보여주고 이를 떠올려보라고 할 때, 사실 흰색 차가 없는데도 "흰색 차가 빨간불에 주행했나요?"와 같은 유도성 질문을 던지면, 많은 경우 자신의 기억과 질문 내용을 통합한다. 흰색 차에 대한 가짜 기억이 생성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억하는 어릴 쩍 기억들, 이를 영상 또는 사진으로 기억하든, 많은 세부 사항은 우리 뇌가 누락된 부분을 채워 넣어 재구성한 픽션들이다.


우리는 틀리게 기억할 뿐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세부 사항을 종종 미화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운전을 잘하는지, 얼마나 유머감각이 좋은지에 물어보면, 50% 이상이 자신은 평균 이상이라 대답한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인지 편향을 지닌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기 모습도 대부분 그냥 진실이 아니다.


이와 같이 기억이 조작 또는 변질될 수 있다면, 또한 우리 자아가 우리 기억에 묶여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 자아에 대한 믿음이 틀릴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의 자아는 외부세계와의 연결에 달려 있으며, 사회적 맥락이 바뀌면 우리의 자아도 변화한다.
- p. 148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을 가진 부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가장 큰 착각은 자아가 평생 계속된다는 생각이다. 영원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연결된 일련의 사건들을 편하게 부르기 위해 붙인 명칭일 뿐이다." 수백 년 동안의 철학도 우리에게 불변의 독립된 자아란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고, 최근 수십 년 동안 심리과학, 뇌과학, 인지과학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니체는 우리의 자아는 우리에 대한 타인의 인식을 반영한다고 설명했으며, 제임스는 우리가 다양한 사회적 환경에서 상호작용하는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자아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경과학자 수잔 그린필드는 우리의 자아를 상태가 아닌 동작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고 제안한다.


지금의 우리를 만든 것은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과 사물이다.
- p. 154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바라보는 자아에 대한 관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독립된 나는 있을 수 없다. 전체로 보면 우리는 개인의 정체성이라는 독특한 패턴을 만들며, 거기에서 내 역할이 일부 변하면 다른 사람의 역할도 변해, 결국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이러한 개인의 정체성을 이해하려면 그 경계선을 너무 작게 그려서는 안 된다. 우리 자신이 단순히 피부라는 경계선에 머문다고 믿지 말자. 인류의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문화의 도움을 받아 전 세계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진 사람 간의 거대한 연결성과 협력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독립된 자아라는 개념은 주류 교육과 서양화된 문화의 확산으로 인해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개인주의적 관점과 연결된 이 개념은 보다 빠른 개발과 번영이라는 장점을 지녔지만, 그에 른 부작용은 확연하다.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로움을 느끼며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 세상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제한적인 관점이 우리 주변의 다른 인간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독립된 자아라는 주관적인 환상을 깨고 세상과의 관계를 바꾸는 포괄적인 자아 정체성을 견지해야 한다.


물론, 자아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중요하다. 우리에게 일관된 기준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이렇게 유용한 관점을 완전히 버릴 필요는 없으며, 버리고 싶다고 쉽게 버릴 수도 없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주의다. 우리가 세상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는 데 방해가 되는 개인주의적 마음을 완전히 포기하는 게 아니라 강조하는 것을 약간만 바꾸면 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진행되면, 자아정체성의 범위가 넓어지고, 자신이 하나의 실이라던 인식에 머물지 않고 전체 천의 웅장함을 불 수 있게 관점이 바뀌면서, 우리는 모든 인류의 더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를 위한 전 세계적 노력의 중요한 부분이 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세상은 점점 더 '개인'을 강조한다. '펄스널 브랜딩'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 내며 '나'라는 경계를 점점 더 두텁게 강화한다. 내 몸, 내 자아를 내세우며 '난 누구와도 다름'을 피력한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통념을, 착각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다. 현재 나의 생각과 행동이 주변의 사물과 사람에 영향을 준다는 것, 누구도  독립적이지 아니며,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비로소 이해하게 해준다. 


이러한 인식 전환은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 관계가 중요한지, 왜 서로 도와야 하는지, 왜 베풀어야 하는지, 왜 함께여야 하는지 행동과 선택의 '기준점' 약간 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책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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