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게놈 오디세이
유전자 검사비용은 35만달러짜리 페라리 한 대 값이
추락해서 고작 40 센트짜리가 된 셈이다.
- 유안 에슐리(스탠퍼드 의대 교수) -
2013년 할리우드 스타 '안젤리나 졸리'는 양쪽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다. 그녀는 뉴욕 타임즈를 통해 "10여년 암투병에 56세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같은 상황을 겪고 싶지 않았다며, 유방암에 걸릴 위험을 줄이고자 이 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유방암 관련 유전자인 'BRCA1'을 물려받았는데, 이로 인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방 절제 수술 후에는 그 확률이 5%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최근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지원하는 건강검진 항목에 '암유잔자-암취약성 검사'가 추가 되었다. 이는 암을 예견하거나 이를 예방하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 지를 검사하고, 질병 이전에 자신에게 필요한 식사요법, 운동요법 등을 체질에 맞게 처방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 한다. 사실, '안젤리나 졸리'가 유전자 검사를 받을 당시만 해도, 인간 유전체 검사 한 번에 수십억 달러가 소요되었다. 그러던 게 오늘날에는 일상적인 건강검진에 추가될 만큼 간단한 검사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최근 의학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일부 진보적인 의료계는 유전자 검사를 예방의학의 일환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병이 나기 전에 미리 위험요소를 색출하여, 미리미리 '선제적 대응'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에게만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는 것이 아니다. 매우 짧은 기간에 COVID-19 백신이 개발된 것은 바이러스의 유전체 분석을 빠르게 실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 '게놈 오디세이'는 우리 미래를 변화시킬 유전체 의학의 도전과 개인 맞춤의학을 위한 기술적 혁신을 소설과 같은 스토리텔링으로 긴장감 넘치게 전달한다. 다소 생소하지만, 우리에게 성큼 다가 오고 있는 '미래의 의학'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어떤 슈퍼휴먼들이 평범한 인간 무리에 섞여 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P. 387
의사들은 보통 나쁜 콜레스테롤(LDL)이 100mg/dl보다 낮은 걸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미 심장마비가 한번 왔던 사람이라면 이 숫자를 적어도 70mg/dl로, 가능하다면 더 낮게 떨어뜨리라고 권한다. 그런데, 텍사스 주 댈러스 시에 사는 살레인 트리이시의 LDL 수치는 고작 14mg/dl 밖에 되지 않았다.
LDL 수용체는 재활용할 쓰레기들을 하나하나 선별하는 현장 노동자라 할 수 있다. 이들이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LDL 수치는 낮아지게 된다. 그리고 PCSK9이라고 부르는 유전자가 있다. 이는 LDL 수용체의 감독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감독관은 매우 고지식해서, LDL 수용체가 절대 초과 근무를 하지 못하게 막는다. 그런데 이 감독관이 꾸벅꾸벅 졸게 된다면? 그래서 노동자들이 퇴근을 못하고 낮에도 밤에도 일만 한다면? 그럴 땐 폐기물이 쌓일 틈 없이 수거함에 떨어지자마자 노동자가 집어내 가공되고 다시 쓰인다. 이것이 슈퍼 휴면 살레인 트리이시의 LDL 수치가 14mg/dl에 지나지 않은 비밀이다. PCSK9 유전자가 완전히 망가져 LDL 수용체들이 밤 낮 없이 쉬지 않고 콜레스테롤을 치우러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이다.
이러한 역학관계의 발견는 모두 유전체 분석의 비약적 발전에 따른 성과물이다. 풀리지 않았던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낸 후, 제약회사들은 PCSK9을 중화시키는 항체의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결실은 비교적 빨리 나왔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보건당국은 2015년에 제약사 사노피와 리저너론이 공동 개발한 신약 알리로쿠맙과 암젠의 에보로쿠맙을 허가했다. 두 신약 모두 피부층 밑에 투여하는 주사 제형으로, 이 주사액에는 수 시간 내에 PCSH9를 무력화시키는 항체가 고농도로 들어있다.
인간의 몸은 아직까지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하지만 유전체 공학의 발전을 지렛대 삼아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신기술이 우우죽순 개발되고 있다. 슈퍼휴먼들의 다양한 유전적 기질을 탐구하고 그 비밀들이 정제되어, 우리에게 큰 유익함으로 적용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COVID-19과의 전쟁에서 우리의 필살기는 유전체학이었다.
p. 502
2019년 12월 말 중국 우한에서 첫 사례가 보고되고 몇 주 뒤, 중국 연구진이 RNA 염기 문자 3만 자 분량인 바이러스 유전체 전체의 해석을 완료했다. COVID-19 원인균의 유전체 염기서열이 밝혀졌다는 것은 감염 양성 여부를 확인할 유전자 검사법이 조만간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곧 지구촌 곳곳의 연구소들이 신종 바이러스 검사법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범 정부차원의 지원에 힘입어 검사 키트는 바이러스 염기서열 정보가 공개된 지 한 달 만에 현장에 투입됐다.
바이러스 유전체 정보가 끌어온 최대의 성과는 신속한 백신 개발이다. 바이러스를 고온이나 포름알데히드에 노출시키면 바이러스의 증식력은 없어지고 바이러스의 단백질의 인체 면역계 도발 능력만 남는다. 이것이 대다수의 백신에 사용되는 불활성화 기법이다. 그런데 중국 시노백(SinoVac) 제품만 빼고 나머지 백신들은 전무 유전체학에 뿌리를 둔 신기술이 개발에 활용되었다. 아스트라제나카가 생산한 백신은 바이러스 유전체 일부를 세포 깊숙이 삽입해 인체 세포 스스로 바이러스 단백질을 합성하게 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모더나는 코로나바이러스 단백질을 코딩하는 RNA 메시지를 배달시킬 그릇으로 초미세 지질 입자를 사용했다.
사실 유전체학을 보다 널리, 보다 빨리 활용했다면 싹수가 보일 때 COVID-19를 초장에 진압하는 게 가능했을 수 도 있다. 예일대 연구팀의 보고서에서는 도심 하수 중의 COVID-19 바이러스 RNA 수치를 분석한 결과, 확진자가 급증하기 일주일 전부터 7일 내내 가파른 오르막길을 그렸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곧 변기와 배수구를 통해 나오는 오수를 초기 경고의 기반을 활용할 만하다는 뜻이다. 만약, 하수 모니터링을 온갖 감염병의 초기 경고 시스템으로 삼을 수 있었다면, 미국에서만 수만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유전체 공학의 발전 속도와 그 성과는 참으로 경이롭다. 미래에 발생될 수 있는 병을 선제적으로 예방하고, 소위 슈퍼 휴먼들의 비밀을 풀어 개인의 삶의 질을 개선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 외의 장내 미생물군, 바이러스 등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다양한 요인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예전보다 그 의미가 더 강력해진 것 같다. 우리가 몰랐던 의학적 비밀들이 하나씩 풀어지고, 새로운 상식과 기술들이 쏟아져 나올지라도, 우리가 모르고 무시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알고 이해하고, 우리에게 적용해야 한다.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발전하는 문명 혜택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누렸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