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설레고 저녁에 몸을 누이면 '오늘 난 잘 살았나?' 되돌아보고 '내일 또 어떤 일이 펼쳐질까?' 기대하곤 한다.
p. 6
책 '햇빛은 찬찬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는 70세 유튜버 '밀라논나'의 첫 에세이이다. '밀라논나'는 '밀라노 할머니'의 줄임말로, 저자의 본명은 '장명숙'이다. 그녀는 한국인 최초의 밀라노 패션 유학생으로 밀라노 마랑고니 패션스쿨을 졸업했다. 한양대, 덕성여대, 한국예술종합대학 등에서 강의하며, 삼풍백화점, 삼성문화재단 등에서 디자인 고문 및 구매 디렉터로 일했다. 페라가모, 막스마라 등의 유명 브랜드를 들여왔고, 우리나라와 이탈리아의 다양한 문화 및 산업 교류 프로그램의 코디네이터로 활동했다.
그녀는 어느 날 유튜브 세상에 요정처럼 '뿅'하고 나타났다. 유투버 '밀라논나'는 수 많은 젊은이들에게 '좋은 어른'의 표상으로, 닮고 싶은 롤모델로 존경받고 있다. 그녀가 전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는 참으로 따뜻하고 담백하다. 딱딱한 훈계가 아니라, 아낌에서 비롯된 말들이니 흡수하는데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매일 아침이 설렌다는 그녀의 말을 듣노라면, 무거웠던 어깨가 가볍게 펴지는 느낌이 든다.
남이 보더라도 괜찮은 삶보다
내가 보더라도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게 낫지 않을까?
- p. 30
물론, '남의 시선'은 중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나의 시선'이 훨씬 더 중요하다. '남이 보더라도'라는 말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남의 시선'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알맹이 없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녀는 '남이 보더라도...'라는 말에 매우 민감하다. 46년을 함께한 남편과 웬만해서는 언쟁하지 않지만, 남편이 '남이 보더라도'라는 말을 꺼내면 눈을 부릅뜨고 핏대를 세운다. 이럴 때 꺼내는 비장의 무기는 "그럼, 루이지네처럼 살자고?"이다. 루이지네 집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지만 사는 스타일이 독특하다고 한다. 루이지네 가족은 이층 집에 살았는데, 1층은 허름한 가구와 집기가 가득 놓인 생활공간이고, 2층은 좋은 물건을 모셔둔 쇼룸 같았다고 한다. 좋은 물건은 남에게 보여주기만 하고, 허름한 물건을 쓰는 생활 방식을 고수한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역시 '남의 시선'에 자유롭지는 못하다. 남들이 보기에 좋은 직업, 남들이 보기에 좋은 차, 남들도 다가는 해외여행... 그녀가 남편에게 꺼내는 비장의 무기... '루이지네처럼 살자고?'라는 말이 내게도 좀.. 따끔하게 느껴진다.
반면, 그녀가 추구하는 말이 있다. '지 맥' ... '자신의 타고난 맥박'을 뜻하는 줄임말이라고 한다. 참 멋진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의 타고난 맥박을 먼저 따라가면서, 주변 사람들과 따로 또 같이 자유롭게 공존하는 것... 이것이 만족하는 내 삶을 사는 지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
'조촐하다'
아담하고, 깨끗하고, 행동이 난잡하지 않고, 깔끔하고, 얌전하다는 뜻이겠다.
조촐한 삶이 바로 내가 지향하는 삶이다.
- p. 175
그녀는 '조촐하다'라는 단어가 참 잘 어울린다. 그녀는 매일 아침 몸무게를 잰다. 평소보다 몸무게가 늘었으면 그날의 조금 식사량을 줄인다. 40년 넘게 이어온 습관이라는데, 그 이유가 사뭇 신선하다. 옷을 새로 사지 않기 위해서란다. 국내 유행을 선도해온 패션 디렉터가 하는 말이니 좀 의아하다. 실제로 나이 50이 넘어서는 거의 옷을 사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자기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신중하게 고르고 관리하는데 신경 쓴다. 그렇게 20대에 산 옷을 지금도 입는다.
매년 가을, 그녀의 시골집 마당에서는 벼룩시장이 열린다. 이순을 넘기면서 시작한 연례행사이다. 지인들을 초대해 동네 맛집에서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살림에서 솎아낸 물건을 한 아름 안겨준다. 그녀가 쓰던 물건들을 '유품'이 아니라 '정표'로 남기고 싶어서라고 한다. 낡은 물건들을 깨끗하게 다듬고, 깔끔하게 포장 한다. 그녀를 감싸주던 무기물을 향해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고, 고마움을 담아 지인들에게 전달한다. 이렇게 가장 기본적인 물건들만 남기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나는 얼마 전에 집을 이사하면서 필요 없는 물건들을 꽤 많이 처분했다. 그래도 잡동사니, 안 쓰는 물건들이 아직 너무 많다. 솔직히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그녀의 이런말을 들으니 자꾸... 반성을 하게 된다. 이제 '조촐하다'는 단어와 나도 좀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담하고, 깨끗하다'라는 말이 참으로 기분좋게 와 닿는다.
"매일이 설레요. 매일이 새로운 날이잖아요"
한 방송의 인터뷰에서 그녀가 한 말이다. '설렌다' 이 말이 참 가식 없고 진솔하게 느껴진다. 그녀의 말, 그녀의 글, 그녀의 모습에서 이말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언행일치라는 것이 바로 이런 건가 싶다. 꾸미지 않고, 빙빙 돌리지 않고, 오로지 '진심'만이 담긴 말... 이런 '좋은 어른'이 하는 말에는 귀가 기울어진다.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책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맥 데로', '조촐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가 참 따듯하다. 오늘처럼 선선하고 맑은 날씨, 향기로운 커피한잔, 그리고 그녀의 이런 이야기라면, '오늘도 행복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