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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곰 Aug 10. 2023

내일이면 800km를 시작합니다

0 day 홀로 떠나는 여행


파리에서 생장으로 이동하려면 바욘에서 무조건 열차를 환승해야 했었는데 그 당시에 TGV열차에서 TER열차로 갈아타면서 내 앞에 앉아 있던 노인이 내 순례길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운명적인 만남인지 몰랐었다. 그의 이름은 닉 윙프리드 그의 첫인상은 여행의 설렘보다는 긴장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약간의 울상이었다. 처음에는 그가 정신이 없고 많이 긴장해서 그런 줄 알았었는데 같이 순례길을 걷다 보니까 그가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타지에서 내가 처음 말을 걸어본 외국인이기도 하고 기념으로 그와의 첫 만남의 순간을 남기고 싶어서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고 그에게 이야기했지만 그는 거절했었다. 




바욘은 강을 끼고 있어 물기를 머금고 있는 바람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이 남아 마을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려고 노력했었다.




바욘에서 TER열차를 타고 3시간을 달려 드디어 수백만의 순례길의 첫 시작지점인 생장 드 포르에 도착했었다. 약간의 긴장과 함께 열차에서 내리며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따라서 이동했었다.




생장 드 포르에 있는 순례자 사무실은 365일 중 쉬는 날 없이 운영되고 있으며 가끔은 한국인 봉사자를 모집하기도 하는 곳인데 크레덴셜이라는 순례자 여권을 발급함으로써 순례자가 될 준비를 하는 곳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태어났을 때 가는 동사무소와 비슷한 장소다.


크레덴셜이 없으면 공립알베르게에서 묵을 수 없으며 시작 지점을 알 수 없어서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순례증명서도 받을 수 없기에 열차에서 내리면 바로 이동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사무실에 들어가면 직원들이 한 명씩 전담하여 간단한 정보들을 알려주는데 800km를 걸으면서 있는 마을들의 종류, 숙소의 예약방법, 비상시 연락하는 번호 그리고 잘할 수 있다는 격려도 주었다.




23년에 코로나가 끝나고 순례길을 걸어가는 인원이 늘어난다는 이야기와 그로 인해 숙소난이 일어난다는 소리를 듣고 지레 겁먹어 숙소를 미리 예약을 했었는데 내가 도착한 23년 5월 15일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긴 했지만 매우 한적했었다. 그 유명한 55번 알베르게도 만석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게 문제가 있었는데 아프리카 비행 이후 2일 동안 파리에서 마신 라떼 한잔 빼고는 전혀 먹은 게 없었고 생장에 도착하고 사무실을 나오니 20시였다. 그때는 스페인의 상점들이 19시면 문을 닫는지 몰랐었다.


예약했던 숙소를 들어가니 호스트가 내일 몇 시에 나갈 거냐고 물어봤었다. 나는 식료품점이 8시에 열길래 8시에 출발한다고 이야기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7시에 떠날 거라고 그때 가게 되면 다음 숙소에 늦게 도착할 수도 있다고 말해주는 거다. 그래서 나도 7시에 나가겠다고 이야기해 버렸었다. 씻고 지정받은 침대에 누우니 21시 시간이 흘러 22시가 되니 아무도 떠들지 않고 불도 끄고 잘 준비를 하는 거다 이런 경험이 낯설었던 나는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 했었다.


하지만 22시에도 스페인의 밤은 유난히 밝았는데 23시는 되어야 해가 떨어지는 것을 알았다. 배는 너무 고팠지만 어쩔 수 없이 처음 써보는 침낭 속에 들어가서 다음날 사무실 앞에 있는 가게에서 등산스틱을 사야겠다 생각하며 잠을 청했었다.


이때만 해도 이것들이 복선으로 작용할 줄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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