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살림 아이템!
"언니, 동ㅇ동에서 해인이가 제일 좋은 음식 먹고 컸을 거에요." 윗집 동생이 건넨 말이다. 나는 주변에서도 다 알 만큼 딸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기 위해 몸부림쳤다. 나이가 많아 시작한 임신이었기에 준비부터 요란했다. 코팅 팬과 냄비는 모두 스테인리스로 바꾸고 플라스틱 용기는 유리로 바꾸었다. 세제, 샴푸, 물비누, 비누도 천연 제품으로 바꿨고, 먹거리 역시 유기농과 무농약으로 하나씩 교체해 나갔다. 노산의 엄마가 새로 맞이할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을 믿는 나는 태아 때부터 세 살까지만큼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주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임신시도 두 달 만에 간절히 바라던 딸을 품게 되었고, 임신 중에도 사 먹는 음식보다는 직접 만든 건강한 식단을 지켰다. 출산 후에는 모유 수유를 하며 좋은 먹거리와 영양제를 챙겨 건강한 모유를 먹이고자 했다. 물론 이유식도 정성껏 준비했다. 두○ 생협에서 주2회씩 주문한 무농약·유기농 백미, 영양이 풍부한 다채로운 채소, 두부, 달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신선한 재료들이 집 앞에 배달되었다. 때로는 지인의 텃밭에서 직접 따온 유기농 채소도 더해졌다.
매일 새벽 6시. 아직 어둠이 가시기 전 스테인리스 냄비 앞에 섰다. 재료 하나하나를 다듬고 이유식을 정성껏 끓였다. 이유식을 담을 유리 용기도 열탕 소독했고 정성 가득한 이유식을 먹일 때는 중탕으로 따뜻하게 데웠다. 모유 수유를 하는 동안에 내가 먹는 음식은 곧 아이에게 닿는 것과 같았다. 소량만 사용해 남은 이유식 재료들을 남김없이 활용했다. 나물과 찌개, 국으로 재탄생한 음식들은 우리 가족의 소중한 한끼가 되었고 그렇게 하루를 채워갔다.
그 과정에서 들려오는 주변의 잔소리들은 끝이 없었다.
"이유식 조금 먹인다고 유기농을 사냐?"
"일하면서 새벽마다 유난 떠는 거 아니니?"
"그냥 시판 이유식 사 먹여."
"전기밥솥에 재료 전부 넣고 끓이면 되지. 왜 그렇게 힘들게 하니."
그 와중에도 내 신념을 지켰다. 반신반의하던 남편도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라며 인정해 주었다.
시판 이유식을 먹이고 분유를 택했던 윗집 동생의 눈에는 내가 유난스러워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정성을 다한 내 노력을 인정해 주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그의 말은 더욱 따뜻하게 다가왔다.
유난이던 내가 전자레인지를 거부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영양소가 다 파괴된다더라."
"환경호르몬이 나온다더라."
"전자파가 몸에 해롭다더라."
주변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이야기에 겁을 먹었고 스스로 선언했다.
'우리 집은 전자레인지 없는 집으로 살자.'
그때의 나는 완벽주의자였다. 독박 육아와 살림, 거기에 내 일까지. 모든 걸 내 손으로 직접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이유식 하나도 반찬 하나도 내 손으로 직접 끓이고, 데우고, 치우는 과정을 고집했다.
'나는 이 정도쯤은 해낼 수 있어야 해.'
하지만 현실은 조금씩 내 신념을 무너뜨렸다. 아이 다섯 살, 식사량은 늘고 입맛은 다양해졌다. 세 끼 밥상에 간식, 아이가 먹고 싶다는 메뉴, 나와 남편의 식사까지. 일상이 온통 먹이고 치우는 일로 채워졌다. 부엌에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체력은 바닥나고 마음은 고갈되어 갔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처음으로 내 안에서 균열이 생겼다.
몸과 정신이 피폐해졌을 무렵, 전자레인지에 눈길이 갔다. 나는 정확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행정안전부의 안전한 TV에서는 '전자레인지의 작동 원리와 안정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전자레인지의 작동 원리는 전자기파의 일종인 마이크로파로 음식물에 존재하는 수백만의 물 분자 등을 진동시켜 이때 발생하는 열로 식품 내부를 가열해 음식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전자레인지에 사용되는 전자파는 음식물을 조리하는 2.45GHz의 주파수와 전자레인지를 작동시키기 위한 60Hz의 주파수에서 발생 되는데, 60Hz의 전자파는 일부 외부로 방출되기도 하나, 음식물을 조리하는 2.45GHz의 전자파는 전자레인지 외부로 방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즉, 전자레인지의 차폐 망은 외부로 전자파가 누출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어 안전하다는 것이다.
코메디닷컴의 정은지 기자의 기사에서 일부 가져온 내용은 이렇다.
"삶은 채소는 칼륨, 마그네슘, 아연, 구리 및 망간과 같은 미네랄도 상당량 손실되었지만, 전자레인지는 채소의 영양가를 유지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연구진은 채소를 전자레인지에 돌렸을 때 비타민C에 가장 적은 영향을 미쳤으며 실제로 식품의 초기 함량의 90%를 보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믿어온 두려움은 과학적으로 근거 없는 소문일 뿐이었다. 그제야 전자레인지는 지쳐 쓰러지기 전의 나를 구해줄 도구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망설임 없이 전자레인지를 주문했고 상자를 뜯는 순간 느낀 건 안도감이었다.
첫날 저녁, 냉장고 속 반찬을 데우고 "띵!"소리에 맞춰 꺼냈다. 몇 분 만에 따뜻해진 반찬을 식탁에 올려 놓으며 진심으로 후회했다. '왜 이제야 샀을까.' 그 뒤로 아이 간식도, 나를 위한 다이어트식도, 남편의 식사도 훨씬 빠르고 따뜻하게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빨리 만들었다고 맛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영양도 지켜졌다. 그릇된 정보에서 벗어나 완벽주의를 내려놓자, 일상에 작은 숨구멍이 생겼다. 전자레인지는 몸에 해롭지 않았고 안전하게 사용하면 시간을 단축해주는 든든한 무기 같은 존재였다. 나 같은 엄마에게는 살림과 육아의 생존 아이템이기도 하다. 이제는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전자레인지는 내 인생 살림 아이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