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들
뉴잉글랜드의 여름은 짧다. 6월에도 아침저녁은 제법 선선하다. 대신 겨울은 길고 춥다. 미국의 초기 정착민들은 하필 이곳에 새로운 보금자리로 선택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뉴잉글랜드의 해안 지역을 따라 크고 작은 도시들이 즐비하다. 그 도시들엔 많은 대학교들이 위치한다. 유럽대학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름 2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들도 있다. 이들을 대표하는 것들이 아이비리그 대학이다. 원래는 스포츠 리그로 탄생했으나 지금은 오랜 전통의 동부 지역 명문대학을 지칭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이들은 전 세계의 많은 고등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아이비리그 학교에 도전하는 학생들은 흔히 방학 기간에 캠퍼스투어를 한다. 단순히 학교 건물만 둘러보는 것은 아니다. 어드미션 오피스에서 개최하는 프리젠테이션에도 참석한다. 거기서 질문도 하고 해서 나름 눈도장도 찍는다. 학교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표시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재학생들을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경험담도 듣는다. 참가한 고등학생들은 부러움의 눈으로 한마디 한마디 경청한다.
아이비리그의 맏형은 하버드 대학교이다. 메인 캠퍼스는 찰스강 서쪽에 위치한 케임브리지에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보스턴의 생활권이다. 보스턴은 밋밋한 미국 대도시들에 비해 상당히 운치가 있다. 현재와 과거가 잘 섞여 있는 도시이다. 필라델피아와 더불어 미국 독립운동의 역사를 대표하는 곳이다. 이를 상징하는 프리덤 트레일(Freedom Trail)은 최고인기의 여행코스다. 독립운동 당시의 유적지를 몇 킬로미터에 걸쳐 둘러본다. 당시의 복장을 입은 가이드는 노련하게 그룹을 인도한다. 십여 명의 투어 참여자들의 흥미를 끌고 당긴다. 부모와 함께 온 어린아이들이 가장 신나 보인다. 경쟁적으로 가이드의 질문에 답한다. 물론 미국인 특유의 과장된 칭찬이 미끼이다.
프리덤 트레일 도중에 폴 리비어의 집이 나온다. 이것은 보스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이다. 지금은 이 집의 옛 주인을 기리는 박물관이다. 그는 상당히 흥미로운 인물이다. 우선 그는 보스턴에서 엄청난 영웅이다. 그가 이곳 출신인 이유도 있다. 그의 동상은 도시의 상징 중 하나이고 심지어 그의 초상화도 굉장히 유명하다. 거기에서 그는 자기가 만든 은주전자를 들고 있다. 즉, 그는 은세공업자였다. 원래부터 특출한 지식인이나 엘리트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유명한 보스턴 티파티(Tea Party)를 주도한 단체 선즈 어브 리버티의 주요 멤버였다. 알다시피 보스턴 티파티는 미국 독립운동의 기폭제였다.
그를 독립운동의 영웅으로 만든 일대 사건은 그 유명한 미드나이트 라이드(Midnight Ride)이다. 밤새 말을 타고 달려 아군에게 영국군의 공격을 알린 것이다. 이 덕에 아군은 전열을 정비해 독립전쟁 사상 첫 번째 전투에서 승리한다. 첫 단추를 잘 끼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이다. 그의 무용은 많은 병사들과 시민들의 사기를 고양시킨 역사적인 에피소드로 남게 된다. 그의 동상은 당연히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다. 독립전쟁 중에는 그의 특기를 살려 무기 제조에 관여한다. 그리고 독립 후에는 미국의 금속산업 발전에 공헌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번째 전투가 있은 후 1년 뒤에 미국은 필라델피아에서 독립선언을 발표한다. 당시 필라델피아의 정치적 리더는 당연히 벤저민 프랭클린이었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는 처음엔 티파티계획에 반대했었다. 영국과 대화를 통해 세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티파티 이후에는 영국의 강경 대응에 실망한 그는 생각을 바꾸게 된다.
보스턴에는 의외의 인기 관광코스가 있다. 바로 보스턴 레드삭스의 야구장인 펜웨이 파크다. 지은 지 110년이 넘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래된 야구장이다. 진한 빨강 내야석과 녹색의 외야석의 대비는 강렬하다. 그린 몬스터라 불리는 좌측 담장은 야구장의 상징이다. 시내에 위치한지라 건립 당시 좁은 구역 내에 야구장을 구겨 넣다시피 했다. 그래서 좌측 담장까지 거리가 충분하지 않았다. 짧은 거리에 잦은 홈런을 막기 위해 엄청나게 높은 담장을 세워야 했다. 레드삭스의 영원한 라이벌은 뉴욕 양키스다. 이는 밤비노란 애칭으로 불리던 베이브 루스 탓도 있다. 레드삭스는 그를 양키스에 트레이드한 후 무려 86년 동안 우승을 못하게 된다. 유명한 '밤비노의 저주'에 빠졌던 것이다. 물론 양키스는 그동안 밥먹듯이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
하버드 대학교는 미국 사회 곳곳에서 수많은 지도자를 배출한 학교이다. 학문적 업적 또한 세계적으로 탁월하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이곳에서의 캠퍼스투어 첫 프로그램은 학교 소개이다. 어드미션 오피스 직원은 다른 곳에 비해 상당히 고압적인 인상을 준다. 완전한 갑의 자세이다. 강당을 메운 방문객들은 그저 경외심을 가지고 경청할 뿐이다. 두 명의 재학생이 자신의 경험담을 나눈다. 그중 한 명은 아프리카에서 온 1학년 학생이다. 과장된 몸짓으로 열심히 설명하지만 전달력은 다소 떨어져 보인다. 영어가 그리 유창하지 않아서이다. 나는 좀 궁금했다. 그녀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됐는지.
하버드의 신입생 선발 기준은 한마디로 블랙박스이다. 학업성적뿐만 아니라 교내외 활동, 리더십, 예체능 경력 등 전방위적인 탁월함을 요구한다. 여기까지는 다른 명문대와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하버드는 특이하게 지원자의 배경이나 저명인의 추천서를 많이 고려한다고 알려져 있다. 유력한 집안 출신이거나 학교에 기부를 많이 하는 동문을 부모로 둔 지원자를 선호한다. 아마도 그 아프리카 출신의 학생도 우리가 모르는 어떤 결정적인 한방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에 비해 옆 동네의 MIT는 다른 성격의 학교이다. 거기는 팔방미인형 인재보다는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학업성취를 이룬 학생들을 좋아한다. 따라서 신입생 선발 과정은 더 투명해 보인다. 하지만 거기도 합격률이 3~4%밖에 되지 않는다. 입학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는 매한가지이다. 보스턴에는 이들 외에도 좋은 사립 명문대가 여럿이 있다. 과히 미국 고등교육의 성지라 할 만하다.
암트랙의 노스이스트(Northeast) 노선을 타면 보스턴에서 뉴헤이븐으로 갈 수 있다. 뉴헤이븐의 예일 대학교는 하버드 대학교의 오래된 라이벌이다. 이들에 대한 이미지도 상반된다. 예일은 모나지 않은 리더가 연상된다. 반면 하버드는 독불장군 리더의 느낌이 강하다. 학문적으로도 자웅을 가리기 힘들다. 예일도 무려 70명에 육박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하지만 예일이 확실히 밀리는 것이 있다. 주변 환경이다.
예일의 주변 환경은 명문대 중에서 악명이 높다. 캠퍼스 내에서는 수시로 위협적인 자동차와 모토사이클이 지나다닌다. 그들이 발산하는 굉음은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교내 근처엔 큰 공원이 있다. 그냥 평범해 보이지만 학교에선 방문을 권장하지 않는다. 체류기간 중에 구급차가 그곳에서 긴급환자를 이송하는 장면도 봤다. 마약중독자처럼 보였다.
학교 관계자는 예일 대학교가 뉴헤이븐 경제의 반은 차지할 거라고 말했다. 우스갯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학교가 도시 경제의 큰 부분을 담당하는 것은 맞을 것이다. 자연히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시 정부는 왜 오랫동안 학교 치안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것인가?
예일 대학교는 수많은 정치, 경제, 법조계의 유력 인사들을 배출했다. 그들 중 일부는 스컬즈 앤 보운즈라 불리는 유명한 교내클럽 출신이다. 우리말로는 해골단이다. 이 비밀스러운 단체는 소수의 선택된 학생들만 모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학교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교내를 걷다 보면 실제로 그 단체만을 위한 건물을 발견할 수 있다. 아담하지만 비밀스러운 모양을 하고 외부인에 굳게 닫혀 있다!
예일대 캠퍼스 투어를 안내하는 학생은 매우 인상적이다. 열정과 스마트함이 우러나온다. 그는 자신이 저소득가정 출신이라고 했다. 그래서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받는다. 미국 내 학생들은 가정의 연 수입이 8만 5천 달러 이하면 이 혜택을 받는다. 한국 돈으로 거의 1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놀랍게도 일부 학교가 최근에 이 기준을 20만 달러로 상향했다. 이 기준이면 한국 가정의 95%가 해당 사항이 된다. 전 세계 기준으로는 99퍼센트까지 될 듯하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기준으로는 전 세계 인구의 99%는 저소득층인 셈이다!
반면에 외국에서 온 학생들은 대부분 10만 달러를 넘는 학비와 생활비를 매년 지출한다. 그럼에도 대학교가 학생 한 명에게 지출하는 비용에는 모자란다. 그 차액은 학교 기금으로 충당한다. 명문대학의 학교 기금은 규모가 엄청나다. 하버드의 경우 60~70조에 이른다. 대학 기금의 상당수는 동문들의 기부금이다.
명문대학들이 왜 그렇게 까다롭게 다재다능한 학생들을 선발하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장차 학교에 많은 기부를 할 '사회생활 능력'이 탁월한 학생들을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원자들은 공부만 잘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