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어디로 가는가? (3)

문제는 물가야, 멍청아!

by Lee Sang Hoon

컬럼비아대학교 캠퍼스 투어를 위해 뉴욕시에 왔다. 뉴욕시는 미국의 심장이다. 뉴저지 쪽에서 바라보는 맨해튼의 마천루는 언제나 경외심을 일으킨다. 그 엄청난 건물들을 지탱하는 지질학적 구조도 놀라울 따름이다.


근대 서구사회의 중심이 파리라면, 지금은 단연 뉴욕시이다. 나지막한 건물들로 가득 찬 파리와는 확연히 다르다. 수많은 고층 건물은 이 도시의 경제적 번영을 대변한다. 그리고 다른 도시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그들은 뉴욕시를 따라 마천루를 꿈꾸어 왔다. 상하이, 두바이, 홍콩, 서울, 도쿄 등.


20세기 초 뉴욕의 마천루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대표했다. 영화 킹콩의 클라이맥스 장면은 이 건물을 전 세계인의 마음에 각인시켰다. 20세기말에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그 역할을 넘겨받았다. 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가 엄청났다. 나는 1990년대 말 그곳을 몇차례 방문했었다. 보안 검색은 이미 다른 건물에 비해 월등히 타이트했다. 언제나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비행기를 이용한 기상천외한 공격은 전혀 예상하진 못했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지금 그곳은 완전히 다른 장소로 바뀌어 있다. 더 이상 이 도시의 대표라는 부담을 벗어버린 채.


맨해튼을 거닐다 보면 곳곳에서 퀴퀴한 냄새가 진동한다. 마리화나이다. 뉴욕시는 이것을 합법화했다. 이 냄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상당히 거북하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는 미국의 정신이자 발전의 원동력이다. 문제의 시작과 해결은 개인의 책임인 것이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마리화나 흡연자들을 지나친다.


컬럼비아대학교는 뉴욕시 나아가 미국 전체의 학문적 자유를 대변하는 곳이다. 특이하게 전학생을 대상으로 기초 인문 교양과목들을 필수로 하고 있다. 그래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센 곳으로 유명하다. 이 대학은 또한 오랫동안 좌파 계열 사상가들의 안식처였다. 1970년대 반전운동을 주도했다. 최근에는 워키즘과 반이스라엘 운동이 가장 활발한 곳이다. 물론 치러야 할 대가가 있었다. 일부 월스트리트의 금융기관과 대형 로펌들이 이 대학 졸업생들의 고용을 취소했다. 월스트리트와 대형 로펌은 유대인의 영향력이 엄청난 곳이기 때문이다.


컬럼비아대학교는 할렘가에 인접해 있다. 이 동네는 과거엔 공포의 대상이었다. 높은 범죄율 때문이었다. 나도 이전에 이곳을 자동차로 지나갈 때 많이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트렌디한 문화와 예술의 동네로 거듭났다. 컬럼비아대학의 학문의 자유와 할렘의 예술의 자유가 서로 이웃하고 있는 곳이 되었다.


브롱스에서 뉴욕 양키스의 홈경기가 있는 날이다. 양키스 볼파크는 레드삭스의 펜웨이 파크에 비하면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 경기는 지루한 투수전이었다. 그래도 이닝 중간마다 펼쳐지는 재밌는 엔터테인먼트로 관중들은 즐거워 보인다. 양키스는 8회 말의 득점으로 역전승을 거뒀고 홈팬들은 열광했다. 주말 낮 경기라 스타디움은 만석이다. 관중의 인종도 많이 다양해졌다. 특히 남미 계통의 이민자 가족들이 많이 눈에 띈다. 예전엔 거의 백인들이 주류였는데 말이다. 요즈음은 야구 관람 비용이 만만찮다. 티켓은 수십 달러에서 수백 달러까지 상당히 비싸다. 구단 매장에서 파는 야구모자도 하나에 쉽게 30달러가 넘는다. 먹거리도 싸지 않다. 아이들 데리고 오면 가족당 쉽게 수백 달러는 들듯하다.


뉴욕의 물가가 비싼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뮤지컬 공연이든 저녁 식사든 모든 것이 비싸다. 아주 작은 호텔 방도 보통 300~400달러를 웃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격이 더 오른 것 같다. 그것도 상당히 많이. 뉴욕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억만장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월스트리트의 고위직 뱅커, 헤지펀드 매니저,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은 몇백만 달러에서 몇천만 달러의 연소득을 구가한다. 이들에게는 높은 물가가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뉴욕시에는 그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평범한 시민들이 공존한다. 학교 선생님에서부터 경찰관, 소방관, 시 공무원, 청소원, 택시기사, 웨이터 등등. 이들은 이 도시가 원활하게 돌아가게끔 하는 필수적인 인력이다. 하지만 높은 물가는 그들의 소득으로 감당하기엔 매우 벅차다.


물가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유독 뉴욕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아니 전 세계의 문제일 것이다. 사람들은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최근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들로 인해 세계 공급망이 교란되어 제품 원가와 서비스 가격이 올랐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많은 돈을 살포한 것도 한몫했다고 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근본적인 씨앗은 이미 그 이전에 뿌려져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와 심지어 1990년대 말 닷컴버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직관적으로 보면 인플레이션은 재화와 서비스의 양에 비해 돈이 너무 많이 풀리면 일어나는 현상이다. 재래시장의 상인들도 다 알고 있는 원리이다. 빌 클린턴이 죠지 부시 현직 대통령을 선거에서 성공적으로 몰아붙였던 구호가 있다. It's the economy, stupid! 멍청아, 문제는 경제야! 지금의 미국의 경제 문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It's the inflation, stupid! 멍청아, 문제는 물가야!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과 월스트리트의 경제 분석가들이 쉽게 동의하지 않는 주장들이 있다. 먼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통화량이 최근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두 번째로, 2008년 금융위기의 단초는 닷컴버블부터 시작된 중앙은행의 방만한 통화 정책이라는 주장이다.


나는 전직 연방준비은행의 지역 총재들을 수차례 접한 적이 있다. 일대일 미팅이나 그들의 프리젠테이션을 통해서이다. 그들은 미국의 정책금리를 결정하는 FOMC의 멤버들이었다. 내가 받은 인상은 이들은 금융시장이나 경제상황에 대해 상당히 순응적이라는 점이다. 어떤 큰 변화를 이끄는 성향과는 거리가 먼 인사들이다. 그들은 대체로 월스트리트의 우군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금융시장에는 한때 '그리스펀 풋'과 '버냉키 풋'이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여기서 '풋'은 기초자산의 가격 하락 시 보상을 받는 풋옵션의 줄임말로 파생상품의 하나이다. 즉 주가지수나 주식가격이 하락할 때 이에 대한 보호를 제공하는 수단이다. 그린스펀 풋이란 미국의 주식시장이 어려움에 처하면 그린스펀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통해 시장을 회복시켜 준다는 믿음이다.


앨런 그린스펀은 한때 경제 대통령으로 칭송받던 미국 중앙은행 총재였다. 벤 버냉키는 그의 후임자이다. 그린스펀은 장기 집권한 총재로 모호한 화법으로 금융시장을 주름잡았다. 하지만 그가 총재로 있던 기간에 닷컴 버블과 서브프라임 버블이 일어났다. 이제는 아무도 그를 미국 역사상 최고의 중앙은행 총재라고 칭송하지 않는다.


버냉키는 프린스턴 대학교의 경제학자로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을 많이 연구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학자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그린스펀의 후임이 된 것도 의미심장하다. 아마도 미국은 대공황에 견줄만한 금융위기를 예상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걱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2008년에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버냉키의 대응 정책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냥 조건반사적인 돈 풀기만 반복했다. 헬리콥터에서 물 뿌리듯이 돈을 뿌린 것이다. 오죽하면 그의 별명이 '헬리콥터 벤'이었겠는가? 그의 위기에 대한 초기대응은 적절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너무 오랫동안 과도한 금융완화를 유지했다. 이 조치는 이후 전 세계적인 초저금리와 부채 폭증을 초래했다. 그는 무능한 미국 중앙은행 총재의 대명사였던 아서 번즈 못지않게 미국 경제에 많은 부조리를 초래했다.


그러나 버냉키와 번즈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번즈의 정책적인 실패는 폴 볼커라는 탁월한 후임자에 의해 잘 추스려졌다. 그리고 그는 이후 미국경제의 부활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에 반해 버냉키의 후임들은 특별한 성과가 없다. 재닛 옐런과 제롬 파월은 전임자와 비슷한 정책만 반복했다. 그리고 '옐런 풋'과 '파월 풋' 등 애먼 풋 시리즈만 계속 재생산했다.


그들의 정책적 실기의 결과가 현재의 미국, 더 나아가 전 세계적인 부채 과잉과 고인플레이션인 것이다. 그들이 추앙하는 화폐·금융 이론의 대가 '밀턴 프리드먼'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그는 '생산을 초과한 화폐 공급이 인플레이션의 원인'이라고 자나 깨나 강조했던 석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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