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중앙은행의 독립성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국장이 새 한국은행 총재로 지명되었다. 매우 중량급 인물이다. 그의 학문적, 실무적 경험은 이전의 어떤 전임자보다 화려하다. 그의 경제와 금융에 관한 이론과 정책 지향성은 선명하고 현 상황에 적절해 보인다. 언론들도 환영 일색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거시경제와 금융시스템 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이다. 단기적으로는 환율의 안정화와 물가불안 해소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가계부채, 자산시장 그리고 부실대출의 연착륙이다. 이를 바탕으로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거나, 최소한 더 이상 하락하지 않게 방어하는 것이다. 전임자들이 이 중대한 문제들을 잘 다루지 못한 것은 세계금융위기, 팬데믹,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등 외부 요인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행 본연의 금리정책과 거시건전성 혹은 금융감독 측면에서 정책을 잘 펼치지 못한 책임도 크다.
신임 총재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적극적인 개입을 추구하는 매파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정책을 잘 밀고 나갈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물러나는 이창용 총재가 처음 지명됐을 때의 높은 기대를 생각해 보라. 그 역시 학문적으로나 국제기구에서의 실무경험은 그의 전임자들보다 탁월했었다. 자연히 그가 취임했을 때 시장의 기대는 무척 높았다. 한국 경제의 주요 문제들을 잘 처리할 훌륭한 적임자라고 믿었다. 아쉽게도 이제 떠나는 그가 남긴 레거시는 긍정적이지 못하다.
먼저 결과를 살펴보자. 그의 재임기간 성장과 물가 둘 다 만족스럽지 못했다. 원화의 가치는 기축통화 대비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다. 고질적인 가계부채 문제는 더욱 악화되어 국제적 기준으로도 최악의 수준에 근접했다. 이와 연관하여 자산시장, 즉 부동산시장에 큰 버블이 형성되었다. 마지막으로 금융안정성 측면에서 부동산 PF문제나 고질적인 중소기업 부실대출 문제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들 결과물을 좀 더 분석해 보자.
최근에 가장 뜨거운 이슈는 원화의 기축통화 대비 심각한 약세이다. 환율은 경상수지와 실질금리의 차이에 기인한 외환의 유출입에 주로 좌우된다. 물론 투기적인 수요도 다소 영향을 끼친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금리정책에 실기를 한 것 같다. 금리상승기에 기준금리를 더 높였어야 했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의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실질금리(명목정책금리에서 물가를 뺀 금리)는 거의 0%에 가깝다. 지속적인 환율약세 상황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의 실질금리는 1% 정도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신흥국의 실질금리는 지금 역사적 관점에서 굉장히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자국의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한국의 경제여건은 신흥국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실질금리는 최소한 미국보다는 높아야 환율방어 효과가 생긴다. 또한 통화량증가에 대한 논란도 있다. 한국은행은 데이터의 일관성에 이견을 제기한다. 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최근 몇 년의 국내 통화량증가 추세는 다른 주요국과 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를 위한 변명의 여지도 있다. 급증하는 국내 개인과 기관의 해외투자는 국내 잠재성장 하락에 기인한 구조적인 현상이다. 다만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는 무역흑자에서 들어오는 달러를 상쇄시키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이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최근 이창용 총재는 이 사실을 지적했다가 여론의 불화살을 맞았다.
그럼 가계와 기업의 부채문제는 어떤가? 이들은 근본적으로 앞서의 금리정책과 연관이 있다. 좀 더 매파적인 금리정책을 폈으면 가계부채의 급등을 완화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부동산시장의 버블이 커지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금융안정성과 거시건전성 측면에서는 금융권의 가계 대출과 건설 및 중소기업부실대출 처리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물론 팬데믹이라는 경제쇼크와 레고랜드사태 같은 시장발작이 어느 정도 걸림돌이 됐을 것이다.
그에 대한 변명을 좀 더 할 수도 있다. 그는 이전의 한국은행 총재와는 달리,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 즉 가계부채, 수도권집중, 부동산, 교육 등에 관해 소신발언을 여러 번 했다. 여기서 그의 문제인식은 정확했다. 아마도 그는 이런 발언들을 통해 현실의 벽을 간접적으로 토로했을 수도 있다. 즉 한국은행 총재로서 해야 할 일들을 어떤 이유로 소신껏 하지 못했음을 표현했을 수 있다.
한국은행은 자주 정부와 대립하는 위치에 놓여있다. 보통 여당과 정부는 경제성장을 우선시한다. 따라서 한국은행은 금리정책이나 금융안정화 정책 등이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될 경우 정치적 압력을 받게 된다. 보통의 경우 한국은행은 뒤로 물러선다. 결국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의 부재가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을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나라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앞서 얘기한 경제와 금융의 문제들은 워낙 오랫동안 누적이 되었기에 해결이 쉽지 않다. 한국의 잠재성장률 제고는 이들을 먼저 해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정치권은 이 둘의 인과관계를 반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짙다.
만약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자신이 믿는 바를 실행에 옮기면 어떻게 될까? 금리가 오르고 부실채권 처리에 속도가 붙을 것이다. 가계부채를 조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해외투자에 대한 통제를 정부와 협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 정책은 단기적으로 경제성장과 자산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중장기적인 효과는 매우 긍정적일 것이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놓인 표심이 중요한 정치권과 정부는 불편해할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행 총재는 힘든 자리이다. 어떤 정책도 한쪽의 지지와 다른 쪽의 비난을 받는다. 개인의 학문적인 업적이나 국제기구에서의 경험만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이다.
결론적으로 신임 한국은행 총재는 대한민국이 직면한 구조적인 거시경제와 금융 문제를 다룰 수 있는 훌륭한 적임자임엔 틀림없다. 문제는 정치권과 정부가 그를 충분히 지지해 줄 수 있는지, 아니면 적어도 그가 하는 일을 방해는 하지 않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