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어디로 가는가? (4)

어른거리는 로마제국의 망령

by Lee Sang Hoon

역사라는 주제는 정말로 흥미롭다. AI시대에 웬 역사 이야기냐고? 고금을 막론하고 저명한 역사학자들은 말했다.


“History repeats itself. 역사는 반복된다.”


고루한 역사학자뿐만이 아니다. 스웨덴의 전설적인 팝그룹 아바(ABBA)도 비슷하게 말했다. 그들을 출세하게 만든 노래 워털루에서.


"History on the bookshelf always repeats itself~~ Waterloo~~ 책장 속의 역사는 언제나 되풀이되는 거야~~워털루~~”


물론 따분한 역사학자들과는 달리 세상에서 가장 경쾌한 비트와 멜로디로! 그들의 역사에 관한 인사이트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나는 동의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바뀌어도 많은 이벤트가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왜냐하면 역사는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역사의 패턴은 바뀌지 않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국가의 흥망과 성쇠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일관된 원인과 결과가 있다.


초인플레이션은 많은 제국과 국가의 붕괴를 초래했다. 로마제국, 중국의 당나라, 프랑스 부르봉왕조 등. 최근의 아랍의 봄 혁명도 그 바탕에는 폭발적인 물가상승이 있었다. 그들은 경제침체, 전쟁, 질병, 흉년 등의 큰 위기를 돈을 풀어 해결하려 했다. 결과는 초인플레이션과 국가의 붕괴였다.


로마제국의 예를 보자.


제국의 초기에는 국가 재정이 건전했다. 은화는 높은 은 함유량을 통해 통화가치를 잘 유지했다. 점점 늘어나는 인구와 소비는 제국의 영토 확장으로 커버가 되었다. 식민지역에서 끊임없이 재화가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리적 팽창은 한계를 맞이한다. 더 이상 확장할 곳이 없어진 것이다. 때문에 계속 증가하는 시민들의 소비와 방만해진 군대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리고 해외 식민지에서 유입되는 공급도 전쟁과 반란으로 자주 차질을 빚었다.


로마제국은 대책이 필요했지만 소비를 억제하거나 군대를 줄이는 정책은 인기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돈 풀기에 의존했다. 이에 따라 은 함유량이 떨어지는 은화를 남발했다. 함유량이 90%대 후반에서 한때 2%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자연히 사람들은 제국의 통화에 대한 신뢰를 버렸다. 그리고 화폐 남발의 결과는 초인플레이션이었다. 경제는 피폐해지고 군사력은 약해졌다. 급기야 그들이 야만족으로 치부하던 게르만족에게 멸망당하고 만다.


물론 로마제국의 쇠퇴와 몰락에는 다른 요인도 있다. 지도자들의 무능이다.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오현제 즉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 이후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무능하거나 타락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문제의 씨앗은 이미 오현제 시대에 뿌려졌었다. 특히 마지막 오현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위기의 시작점이었다. 그는 '명상록'의 저자로 더 유명하다. 절제를 강조하는 스토아 철학자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는 많은 전쟁을 치렀다. 이에 더해 재임 기간에 큰 전염병이 제국을 강타했다. 때문에 국력이 많이 소모된 것이다. 그의 후임은 희대의 폭군 코모두스다. 다만 그에게는 억울한 것이 많았을 것이다. 매우 어려운 상황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코모두스를 필두로 후임 황제들은 대부분 무능하고 단명했다. 엄청난 정치적 혼란이 제국을 갉아먹고 있었다. 물론 도중에 몇 명의 괜찮은 황제들도 있었지만 쇠락의 추세를 막진 못했다.


제국의 몰락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경제적인 실책이다. 너무 많이 영토를 확장하고 과도하게 군비를 지출했으며 생산을 넘어선 소비를 지속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 문제에 대한 정책적인 대응은 구조적인 개혁이 아니라 무분별한 화폐남발을 통한 재정확장이었다.


현재의 미국을 말기의 로마제국과 비교해 보자. 과다한 소비, 방대한 군사력, 생산의 해외의존, 그리고 화폐 남발. 두 나라의 상황이 너무나 흡사하다. 단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지금의 미국은 완전히 소비 중심 국가이다. GDP의 70%가 민간 소비에서 나온다. 반면에 소비재의 공급은 주로 다른 국가의 생산에 의존한다. 미국은 이 시스템을 막강한 국방력으로 보호하고 있다. 그리고 매년 엄청난 금액의 국방비를 지출한다. 또한 해외에서 재화를 수입하기 위해 전 세계에 끊임없이 많은 양의 달러를 공급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결과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이다. 그리고 이를 메꾸기 위해 지속적으로 많은 양의 달러를 찍어내고 있다.


미 정부의 부채는 GDP 대비 130%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두 배 이상 늘었다. 이는 어떤 기준을 적용하여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국내외 투자자들이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수입의존 경제체제는 미국 내 제조업의 공동화를 가져왔다. 이는 중산층에게서 양질의 일자리와 가계소득을 앗아갔다. 반면에 해외생산을 통해 원가를 절감한 기업가들과 이들과 엮여 있는 월스트리트, IT 투자자, 법조인, 컨설턴트 등 이른바 경제 엘리트들의 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자연히 미국내 부의 불균형도 역사상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지금의 달러화는 로마제국에 빗대면 은 함유량이 0%인 그냥 종이쪼가리다. 오직 미국경제와 정부에 대한 신뢰에 기댄 화폐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1971년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식의 결과이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금의 가치에 연동시켰다. 따라서 미국은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 없었다. 덕분에 화폐 공급과 인플레이션이 일정 수준으로 유지됐다. 하지만 미국의 소비는 점점 증가하고 해외로부터의 제품 수입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베트남 전쟁을 감당하기 위해 많은 양의 달러를 발행하게 된다. 이는 미국이 보유한 금의 양을 훌쩍 넘어서는 것이었다. 결국 닉슨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달러와 금의 연동 체제를 끝내버렸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언에 즈음하여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 한 유명한 발언이 있다. 이것은 다가오는 새로운 국제금융시장 질서의 가혹한 현실을 예고한 것이다.


"The dollar is our currency, but it's your problem. 달러는 우리의 화폐이지만 당신들의 문제야."


이 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미국의 화폐·금융정책은 미국의 경제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이것이 당신 나라에 초래할 부작용은 스스로 감당하라. 실제로 이후에 일어난 대부분의 국제적인 금융시장 위기는 미국의 급격한 금리정책의 변경에 의해 초래되었다. 중남미 경제위기, 러시아 경제위기, 아시아 외환위기 등. 대한민국도 1997년에 일격을 당했다.


그리고 이 위험은 일정한 주기를 가진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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