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MAGA 개혁과 대한민국의 옵션
브레튼우즈 시스템 종식 이후 미국은 자국의 소비시장을 떠받치기 위해 아무 제한 없이 달러를 공급한다. 경제가 침체하거나 금융위기가 생겨도 무제한으로 달러를 찍어낸다. 미국이 지금처럼 돈을 많이 찍어내고 정부부채를 확대한다면 달러화에 대한 신뢰는 점점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화폐가치도 하락할 것이다. 실제로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는 미국 국채의 보유량을 줄이고 있다.
또한 해외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는 경제시스템은 국제 공급망의 갑작스러운 변동에 취약하다. 우리는 최근에 실제로 경험했다.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공급망의 혼란을 겪었고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의 급상승을 경험했다. 진행 중인 관세전쟁과 보호무역주의 또한 공급망에 충격을 줄 것이다. 무역 전쟁이 심해지면 일부 제품과 부품의 공급이 끊길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은 첨단산업과 군수산업에 필요한 희토류의 공급을 수시로 제한하고 있다.
달러화에 대한 신뢰 하락과 국제 공급망의 혼란은 상호작용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 국채는 관세전쟁의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 관세에 대한 보복으로 외국 정부가 미국 국채를 투매한다고 가정해 보라. 그러면 달러화 가치는 급락하고 미국 국채 금리는 급등할 것이다. 이에 연동된 다른 채권의 금리도 따라 오를 것이다. 작년 4월 초 미국이 전 세계에 관세폭탄을 선언한 직후 달러는 급락하고 미국 국채금리는 급등했었다. 이에 깜짝 놀란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유예조치를 발표해 급한 불을 껐었다. 이처럼 중장기 금리의 강한 상승은 부채에 허덕이고 있는 미국경제에는 치명적인 것이다.
오랫동안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이러한 경제시스템적 취약성을 간과해 왔다. 항상 단기적인 문제해결과 경기부양에만 집중했다. 정치인에겐 권력 유지가 지상목표이고 경제 침체는 권력 상실을 뜻하기 때문이다. 거의 30년 동안 방만한 통화 및 재정 정책을 이어왔다.
여기에 급제동을 건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정책이다. 그들의 핵심 목표는 국내제조업 부활이다. 이 과정에서 제조업 일자리를 창출하여 중산층에게 돌려주길 원한다. 높은 관세를 통해 해외로부터의 수입을 줄이고 이를 국내 생산으로 대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동시에 그들은 세계의 경찰 노릇을 그만두기를 원한다.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력을 감축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나토에 대한 군사 지원도 줄이길 원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동맹국에게 국방비 증액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 정책은 제조업 부활 계획과 연관되어 있다. 미국이 자국 생산을 늘리게 되면 그동안 주요 재화의 공급처 역할을 해오던 우방국을 더 이상 보호해 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들은 미국 경제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 부활이란 야망은 얼핏 보면 무리수로 보인다. 과격한 관세정책은 단기적으로 물가와 금리의 상승 그리고 경기하강을 유발할 수 있다. 금융시장에도 단기적으로는 부정적이다. 또한 미국의 제조업 회복에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다. 일단 미국엔 값싼 노동력이 매우 부족하다. 그리고 주요 산업의 부품공급망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도로, 철도, 항만 등의 인프라는 많이 노후화되어 있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대단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많은 산업에서 절대적인 기술우위를 갖고 있다. 전 세계에서 최고의 인재들이 몰려들어 기술개발에 기여하고 있다. 그리고 천연자원과 에너지가 풍부하다. 단지 개발을 충분히 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러한 여건들을 감안하면 중장기적으로 제조업 부활은 불가능하지 않다. 단지 정부의 의지와 실행력의 문제이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고객은 월스트리트나 다국적기업이 아니다. 메인스트리트의 중산층이다. 그들의 지지가 있는 한 MAGA 개혁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경험했지만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도 리쇼어링이란 명목하에 제조업 회복 정책을 지속할 것이다. 이는 초당적인 국가 과제인 것이다.
미국의 경제구조적 변화는 대한민국에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리는 오랫동안 기존의 미국경제시스템의 조연이자 수혜자였다. 미국이 그동안 겪은 것과 반대의 상황을 누려왔다. 미국의 주요 수출국으로 큰 무역흑자를 누렸다. 미국의 주요 우방으로 지정학적, 안보적 혜택도 누렸다. 한편으로 대한민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원화약세와 저금리로 대변되는 중상주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하였다. 하지만 이 정책들은 수출에는 유리하지만 내수경제엔 많은 부작용도 남겼다.
대규모 무역흑자에 기인한 국내 유동성의 확대와 저금리 선호 정책은 자산시장 버블로 이어졌다. 현재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가계소득대비 굉장히 높다. 관련하여 가계부채가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 덤으로 출산율의 붕괴도 경험하고 있다. 자산가격의 거품은 임계점에 이르면 반드시 붕괴한다. 우리는 이를 일본과 중국에서 목격했다.
또한 과도한 가계부채, 원화약세와 고물가는 국내 소비자의 실질 구매력을 약화시켜 내수시장의 성장을 저해한다. 대한민국의 민간소비는 GDP의 50% 미만이다. OECD 평균보다 10% 포인트 이상 낮다. 최근 몇 년 내수의 경제성장기여도는 아주 미미하다. 팬데믹 이후 5년 동안의 수출호황은 내수시장을 위한 낙수효과를 전혀 창출하지 못했다. 내수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은 선진국 대비 절반정도에 그친다. 즉 대한민국은 수출은 강하나 내수는 매우 허약한 불균형적인 경제체제를 가지게 되었다.
이 불균형적인 경제체제는 새로운 미국의 경제시스템 하에서는 큰 불확실성에 노출된다. 이제는 미국이라는 크고 수익성이 좋은 시장은 기대하기 힘들다. 미국은 우리 제품의 후한 소비자가 아니라 무역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 동시에 우리는 점점 해외시장에서 영역을 넓혀가는 중국과도 경쟁해야 한다. 자연히 이전보다 수출산업의 수익성은 나빠지고 무역흑자 규모도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이제는 불가피하게 내수경제 활성화에 좀 더 집중할 시점이다. 수출과 내수 양쪽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가계의 구매력 회복에 도움이 되는 거시경제정책을 펼쳐야 한다. 환율과 금리정상화를 통해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 부동산시장의 연착륙에도 힘써야 한다. 서비스산업의 규제완화와 생산성 제고에 힘써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금융, 관광, 유통, 의료, 실버산업 등 개선 또는 성장의 여지가 있는 내수산업이 꽤 있어 보인다.
새로운 미국과 급변하는 국제 무역 환경에 대한민국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