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에서 목격되는 순진함

선제적인 정책과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

by Lee Sang Hoon

원화가 달러화대비 계속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이란전쟁으로 인해 안전자산인 달러화로의 도피가 국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원화의 평가절하 속도는 달러화 강세속도를 훨씬 추월하고 있다.


통상 미달러화의 가치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의 금리정책에 좌우된다. 금리인상 시기에는 달러는 강세를 보이고 인하기에는 약세를 보인다. 2024년 하반기에 시작된 현재의 금리인하 사이클도 예외가 아니다.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인덱스는 DXY가 대표적이다. 이번 금리인하 사이클 동안 DXY는 피크에서 현재 레벨까지 약 6% 정도 하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화는 같은 기간 달러대비 12% 정도 하락했다. 오늘자 환율인 1530은 DXY가 변동이 없었다고 가정하면 1620 정도까지 하락했을 것이다. 이는 미국의 금리인하기에 발생하기 어려운 예외적인 현상이다. 특히 대한민국은 최근 몇 년간 엄청난 금액의 경상흑자를 구가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더욱 기이한 현상이다.


금번 미국의 금리인하 기간 동안 통화약세를 보인 국가는 브라질, 튀르키예, 아르헨티나, 멕시코, 일본 등이 있다. 아르헨티나와 튀르키예는 초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거의 붕괴된 상황이다. 브라질 또한 막대한 적자재정으로 최악의 경제상황을 겪고 있다. 멕시코의 페소화는 이번 금리인하 이전에 수년 동안 달러대비 엄청난 평가절상을 누려왔다. 지금의 가치하락은 그에 대한 반작용이라 보면 된다. 일본의 엔화는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의 의도적인 경제정책에 기인한다. 새 정부는 과거 아베노믹스를 재탕하고 있다. 즉 무리한 재정확대를 핵심정책으로 채택하고 있다. 자연히 엔화는 약세를 띨 수밖에 없다.


이들 나라의 상황은 대한민국의 경우와 매우 다르다. 그럼 원화는 왜 약세인가? 앞서 게시한 글 "신임 한국은행 총재 이번엔 다를까?"에서 이에 대해 언급하였다. 다시 핵심만 반복하면, 첫째는 국내 개인과 기관의 해외투자 급증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한국은행의 금리정책의 실기와 국내 통화량의 과다한 증가이다.


이에 더해 정부나 중앙은행의 정책 대응과 커뮤니케이션 상의 문제가 도드라진다. 우리가 그들로부터 흔히 듣는 코멘트는 "외환보유고는 충분하다", "외환시장의 유동성은 괜찮다", 또는 "경제의 펀더멘털은 괜찮고 지금의 원화약세는 이런저런 이유의 단기적 현상이다". 이들은 다분히 방어적이고 순진한 코멘트로 보인다. 따라서 시장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없다.


먼저 적정외환보유고는 아무도 모른다. 이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계산해서 제시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필요할 때 가용될 수 있는 외환의 양이다. 또한 외환시장의 유동성도 정확히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이들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는 것은 바로 시장이다. 원화가 달러화 대비 지속적인 약세를 띠고 주식시장처럼 하루에도 0.5%나 1%씩 높은 변동성을 보이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여기서 시장의 움직임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한다. 즉 "단기간에 가용할 수 있는 외환보유고는 충분하지 않고 시장 유동성도 괜찮지 않다"이다. 이것이 시장이 전하는 현실이다.


물론 정부가 제시하는 대로 이란에서의 전쟁이 마무리되면 원화는 다시 강세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이 예상보다 오래갈 경우 원화는 더욱 약세를 띨 수도 있다. 결국 이는 반반의 확률인 것이다. 이런 확률에 기대는 것은 정책이 아니고 도박이다. 그리고 미국의 금리사이클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 중앙은행의 금리인하 사이클은 이번 전쟁의 결과로 예상보다 빨리 끝날수도 있다. 오히려 시장은 0.25% 포인트 금리인상으로 기대를 바꾸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 사이클은 원화에 대한 추가 절하압력을 뜻한다. 금리나 환율 관련 정책은 항상 하방위험에 대한 버퍼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난번 금리인상 사이클에서 한국은행이 금리를 충분히 인상하지 못한 결과로 지금의 외환문제가 발생했을 수 있다. 앞으로의 금리인상 사이클에 대비한 버퍼가 필요하나 지금은 오히려 반대 상황이다.


지금 효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은 기습적인 정책 금리인상이다. 시장에 긍정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리고 비용도 높지 않다. 왜냐하면 경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중금리는 이미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대신에 시장에 매파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사실 현재의 유가 수준이면 머지않아 정책금리 인상은 불가피할 수 있다. 즉 어차피 미래에 금리를 올려야 된다. 하지만 그때 금리를 올리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게 금리를 올릴 것이고 시장은 이를 충분히 예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금리인상은 선제적으로 그리고 기습적으로 해야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은 작년부터 굵직한 정치·경제적 이벤트를 겪고 있다. 첫 번째로 작년 4월의 세계를 상대로 한 막대한 관세부과정책이 있었다. 그리고 사모대출(private credit) 부문에서 펀드런이 일어나 지금도 진행 중이다. 마지막으로 이란과의 전쟁이 있다. 이런 대형 사건들에 비해 미국 주식시장은 상당히 견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것이 계속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 이면에는 미국 정부의 상당히 교묘한 시장대응이 있다. 특히 재무장관인 스콧 베선트의 시장을 다루는 모습은 정말로 노련하고 효과적이다. 수십 년 동안 성공적인 매크로 헤지펀드매니저로서 누구보다도 시장을 잘 이해하고 대응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참고로 할 점이다.


한국처럼 영토가 작고 자원이 부족하며 수출의존도가 높은 개방경제국가에는 대만, 싱가포르, 스위스가 있다. 이들 나라는 자국의 환율이 안정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의 외환보유고는 GDP규모에 필적할 정도로 많아 20-30% 정도인 대한민국보다 몇 배나 높다. 그들은 통화의 안정성을 유지한 채 수출경쟁력, 자국통화의 구매력, 물가를 잘 관리하고 있다. 이것이 진정한 경제실력이다. 반면 대한민국은 지난 5년 동안 수출은 호황이었지만 원화의 가치는 25%가량 하락했다. 그만큼 국내소비자의 구매력은 떨어졌고 물가도 많이 올랐다. 대한민국은 중장기적으로 이들 국가의 외환 관련 정책을 벤치마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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