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의 오랜 은행 (3)

우리의 미래: 고금리, 저성장, 신냉전, 탈세계화, 기후변화

by Lee Sang Hoon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은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를 시행했다. 그것도 십수 년을 지속했다. 덕분에 정부, 가계, 기업 등 모든 경제주체의 차입 금리가 급감했다. 이를 틈 타 미국 정부는 국채를 남발했다. 정부부채가 GDP 대비 역사상 최고점이다. 앞으로 한참 동안 더 오를 것으로 모두가 예상한다. 또 금융위기와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풀었다. 이들 위기가 끝난 후에도 재정적자는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연간으로 GDP 대비 6~7% 를 지속하고 있다. 적정수준인 2~3% 를 한참 넘는다. 정부의 큰 씀씀이는 단기적으론 경제에 도움이 된다. 최근 미국 경제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양호한 이유이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과도한 정부 지출에도 중장기적인 경제성장률은 이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는 지금의 막대한 재정지출이 중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없음을 뜻한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정부의 부채는 GDP 대비 60%에서 130%까지 올랐다. 15년 동안 이 비율이 70% 포인트 오르는 동안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2.5%에 머물렀다. 과거와 대비하여 크게 다르지 않다. 이 현상은 중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중국은 세계 금융위기 이후 인프라, 주택, 제조업 등에 엄청난 투자를 단행해 왔다. 이 연유로 부채가 급격히 증가했다. 국가, 기업, 가계를 합친 총부채가 GDP 대비 두 배로 증가해 지금은 300% 가 넘는다. 하지만 최근 10년 내 평균 경제성장은 6% 아래이다. 이는 그 이전 10년 기간보다 4% 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최근 3년만 보면 경제성장률은 더 떨어져 4~5% 수준이다. 즉 중국에서도 급격히 늘어난 부채가 중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도움을 주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앞으로의 문제는 늘어난 부채에 대한 이자 비용이다. 세계 금리는 2022년을 기점으로 바닥을 찍고 지금은 정상적인 수준으로 회귀했다. 미 국채 10년물 기준으로 2000년대 초반 수준으로 돌아갔다. 따라서 미국 국채의 평균 금리는 점점 올라갈 것이다. 저금리 시절 발행한 채권들이 차례차례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들은 훨씬 높은 금리에 재발행되어야 한다. 현재 발행된 미 국채의 평균 금리는 3%대 초반이다. 이것이 향후 5%로 올라가면 산술적으로 이자 비용이 60% 이상 증가한다. 이것은 이미 심각한 재정적자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역사적으로 시장금리는 30~40년 주기로 장기 상승과 장기 하강을 반복했다. 사이클을 이끄는 요인들은 보통 구조적인 것들이다. 과거 40년의 하락 사이클은 중국과 소비에트연방이 세계 경제질서에 편입된 영향이 크다. 이들은 저비용 생산자로서 인플레이션 하락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연이은 경제위기 이후 중앙은행들의 공격적인 금리인하와 양적완화의 영향도 컸다. 이러한 요인들은 이젠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세계 제조업 공급망은 쪼개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공급망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러시아는 세계무역 질서에서 이미 이탈했다. 그리고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로 2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부채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에 대한 리스크 프리미엄이 올라갈 것이다. 게다가 기후 위기 대응에 따른 비용이 있다. 이것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변수이다. 이 모든 구조적인 변화들은 금리 상승 요인이다. 과거 200년간의 금리 사이클을 따르자면 지금의 상승 사이클은 향후 20년 혹은 30년간 지속할 수도 있다.


과다한 부채를 통한 경제성장은 미래로부터 빌려온 성장이다. 왜냐하면 부채는 언젠가는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즉 빚을 갚느라 미래에는 투자재원이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과다한 부채는 그 주체가 정부이든 기업이든 금융 안정성을 해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왜 미국과 중국 그리고 다른 많은 국가들이 무리해서 부채를 늘렸을까? 그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성장의 추세적인 하향세이다. 이 추세는 2010년대 들어와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구조적인 원인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인구구조이다.


인구는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는 예외가 거의 없다. 경제 내에 일꾼이 늘면 GDP가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 60~70년은 전 세계 인구 구조학적으로 가장 좋은 시기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구학적 배당 (demographic dividend)이 최상의 상태에 있었던 시기이다. 세계 인구는 1960년대 들어 급격히 증가했다. 196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매 10년마다 이전 10년 대비 18~22%씩 증가했다. 2000에서 2020년까지는 10~15% 정도로 완화됐지만 여전히 양호했다. 이에 반해 1860년대에서 1920년대까지는 인구성장 정체기였다. 매 10년 동안 전기 대비 겨우 4~8% 정도만 증가했다. 이들 기간별 경제성장률 추이도 인구증가율 추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인구 증가가 높았던 1960년대에 1990년대에는 세계 경제는 연평균 3~5% 성장했다. 인구성장이 정체되었던 1860년대에서 1920년대는 겨우 1~2% 정도였다. 그리고 인구성장률이 완만해지고 있는 최근 20년간은 세계 경제가 연평균 3~3.5% 정도 성장하고 있다.


그럼 앞으로는 어떨까? 여러 전망들에 의하면 2020년대의 10년간 세계 인구성장률은 10% 정도이다. 그리고 2030년대, 2040년대, 그리고 2050년대는 5~7% 사이로 예상된다. 인구증가율 전망은 보통 상당히 정확하다. 각국의 출산율 추이가 대체로 예측할 수 있는 장기추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출산율은 세계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이다. 심지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가증가율을 보이는 아프리카 대륙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인구증가율을 기준으로 한 세계 경제성장률은 향후 20~30년 동안 연간으로 2~2.5% 내외로 보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는 1930년대 이후 가장 낮은 수치가 될 것이다. 즉 앞으로 우리는 100년 내 가장 저성장의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 예측에는 다른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생길 수도 있다.


요약하면 앞으로 20~30년은 고금리와 저성장의 경제 환경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어떤 사람들은 테크놀러지의 발전이 경제성장을 촉진할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추세를 바꿀 정도는 아니다. 2000년 이후 인터넷이 전 세계에 보급됐지만 경제성장 트렌드 자체를 바꾸진 못했다. AI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의 AI가 정말로 도움이 되려면 단순 언어모델을 벗어나 물리 세계를 이해하는 정도로 발전해야 한다. 그리고 또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AI가 고도로 발전해 노동생산성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소비의 주체는 여전히 인간이다. 사람의 수가 늘지 않으면 소비는 성장하지 못한다. 소비가 동반되지 않은 생산의 증가는 오히려 디플레이션만 초래한다.


역사적으로 세계 경제의 정체는 자주 지정학적 위험을 증가시켰다. 또한 심각한 기후변화도 인구의 대이동과 동시에 지정학적 갈등을 초래했다. 당연한 이치이다. 줄어드는 재화와 자원을 놓고 국가 간 경쟁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경쟁이 분쟁이나 전쟁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현상의 초입에 있음을 직감적으로 안다. 게다가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경찰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비용 대비 효과가 더 이상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질서의 다극화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이다. 일부 강대국은 일찌감치 이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2014년에 1차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중국은 2010년 들어 신흥국들에게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막대한 인프라 투자를 단행했다. 모두 약해진 미국의 지정학적 틈새를 공략한 것이다.


이들 강대국들은 자신의 지역에서 새로운 리더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주변의 약소국들은 당연히 불안해진다. 그래서 그들은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방예산을 늘리려고 하고 있다. 지금 유럽 국가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발트해 3국이나 폴란드 등이 다음의 타겟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은 NATO 회원국이다. 따라서 EU와 러시아 사이의 군사적 갈등 가능성이 있다. 동북아시아도 대만과 북한을 둘러싼 지정학적 게임이 벌어질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 또한 주변국들의 군비경쟁을 촉발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세계의 지정학은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고 있다. 하나는 민주국가 진영이고 다른 하나는 공산국가를 포함한 권위주의 국가들의 진영이다. 즉 신냉전인 것이다.


신냉전은 현재 진행 중인 세계 공급망 재편성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이는 2018년 미국의 대중국 관세로 부터 시작되였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정치·경제적 견제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때이다. 트럼프 1기 정부에 이은 바이든 정부는 전세계 공급망 재편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 와중에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했다. 이들을 계기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제조업 공급망의 리쇼어링과 지역적 분산의 필요성을 깨우쳤다. 전쟁과 팬데믹 같은 비상시에 제조업을 갖추지 못한 나라는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그리고 증가하는 지정학적 갈등은 제조업 공급망의 무기화를 부추기고 있다.


미국은 몇 년 동안 중국에 첨단 반도체 공급을 제한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로 전 세계 자동차업체를 강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은 안정적인 공급망 확충에 힘쓰고 있다. 자국에 생산기지를 가져오는 리쇼어링을 하거나 동맹국에 공급망을 심는 프렌드쇼어링을 강화하고 있다. 반도체나 전기차 같은 전략적 산업은 지역마다 자체적인 공급망을 갖추려는 시도들이 목격된다. 사실 나는 현업에서 제조업 공급망의 변화를 2020년대 초반부터 체감할 수 있었다. 수많은 기업과의 미팅을 통해 그들이 더 이상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을 목격했다. 대신에 그들은 베트남, 멕시코, 인디아 등지로 투자를 분산하고 있었다. 이러한 추세는 최근 1~2년 동안 더 가속화하고 있다.


2024년에 흥미로운 보고서 하나가 EU 행정부 수반에게 제출되었다. EU 국가의 제조업 부활을 목표로 한 제안서였다. 이 계획은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이자 전 이탈리아 총리인 마리오 드라기가 이끌었다. 이 제안서에 의하면 유럽은 앞으로 연간 1,000조 원 규모의 투자를 제조업에다 해야 한다. 유럽이 제조업 부문에서 미국과 중국을 따라잡기 위해서이다. 물론 실행 여부는 앞으로의 논의와 검토를 거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제안서의 의도는 분명하다. 유럽은 자체의 제조업 공급망을 구축하기를 원하고 있다. 더 이상 미국, 중국, 기타 아시아 국가에 많이 의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도 반도체 등 주요 산업의 생산 시설은 이미 리쇼어링하고 있다. 세계는 바야흐로 각자도생 또는 끼리끼리 어울리는 경제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공급망의 분산과 지역화는 세계화의 후퇴를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은 세계화를 되돌릴 수 없는 시대적 대세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맞는 얘기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세계화에는 사이클이 있었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1870년에서 1913년까지 제1차 세계화의 물결이 있었다. 현시대에 못지않은 세계화의 흐름이었다. 이 기간에 국가들 간에 엄청난 규모의 인력, 자본, 무역의 교류가 있었다. 이 모멘텀은 1914년 세계 1차대전과 함께 종식되었다. 그리고 연이은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냉전의 도래로 세계화는 상당히 후퇴한다. 세계화가 다시 부활한 것은 중국의 개방과 구소련 체제의 붕괴 이후다. 그리고 최근 30년은 인류역사상 최대의 세계화를 누려왔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또다른 흐름들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자본의 흐름이 규제되고 있다. 미국은 많은 수의 중국기업과 러시아기업에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중국은 미 국채를 대량 매도하고 있다. 인력의 이동도 제한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은 중남미 이민자에게 문을 닫았다. 전 세계인을 상대로 한 투자영주권 제도도 폐지했다. 중국 유학생들에겐 비자 발급을 줄이고 있다. 관대했던 EU 국가들조차 중동과 아프리카 이민자들에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무역은 최악의 관세전쟁에 진입하고 있다. 제조업 공급망은 지역화, 로컬화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자본, 인력, 무역에 걸친 전방위적인 세계화의 퇴보를 지금 경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류에게 장기적인 도전인 기후변화를 보자. 2010년대 들어 기후변화에 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일어났다. 경제, 산업, 투자 등 많은 분야에서 기후 문제가 중요 고려 사항이 되었다. 관련하여 많은 국제적, 국가적 차원의 법률과 규제가 도입되었다. 내가 종사하는 투자 부문만 봐도 환경·사회·거버넌스를 총괄하는 ESG 관련한 투자 규제가 많이 생겼다. 이에 부합하지 않는 기업들은 아예 투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ESG에 특화된 금융상품들도 많이 출시되었고 이들의 투자자산은 급속도로 증가했다.


하지만 최근 2~3년 동안 이에 반하는 물결이 일고 있다. 바로 '안티 ESG' 물결이다. 미국의 보수당이 지배하는 주들을 중심으로 ESG를 배척하고 있다. 많은 기업과 금융기관이 ESG를 다른 용어로 대체하고 있을 정도이다. 트럼프 정부는 전기차 보조금을 삭감하고 있다. ESG 관련된 투자상품의 투자수익도 많이 악화되었다. 일부에서는 ESG 원칙을 왜곡하고 악용하고 있다. 많은 기업이 '그린와싱' 즉 환경 관련 데이터를 왜곡했다. 중국의 전기차 육성은 다른 경제적 의도도 다분히 있다. 즉 석유 수입을 국내 석탄으로 대체하는 전략이다. 배터리 충전에 쓰이는 전기의 대부분이 석탄발전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석유화학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다. 이들 정책은 ESG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유럽은 여전히 ESG 원칙과 규제를 준수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후 러시아 가스 공급 문제는 일부 국가에게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독일과 영국은 전기차 의무화 개시 연도를 계속 미루고 있다. 자국 자동차산업 보호와 전기차 보조금 부담 때문이다. 그리고 유럽은 제조업 부활과 국방력 강화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과제를 제대로 실행하려면 ESG 정책의 후퇴는 불가피하다. 유럽이 어떻게 상충하는 목표들을 조정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기후 문제는 인류에게 매우 중요하고 힘든 과제이다. 국제적인 공조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각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이를 점점 어렵게 만들고 있다. 무역분쟁과 공급망 분산도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기후문제는 잠재적으로 지정학적 갈등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중국과 인디아의 영토분쟁, 중국과 인도차이나반도의 수자원 분쟁, 유럽으로 몰려드는 아프리카 난민, 중남미에서 북미로의 인력 대이동 등도 기후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고금리, 저성장, 신냉전, 탈세계화, 기후변화” 우리에게 펼쳐진 미래는 이들과의 끊임없는 씨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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