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시에나의 오랜 은행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옆으로 비켜난 것 같다. 시에나에는 시외버스 정류장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시의 외곽에 있다. 다른 하나는 도심 내의 안토니오 그람시 공원에 있다. 내가 로마에서부터 버스로 도착한 곳이다. 그람시는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일 것이다. 사회주의의 정치·경제적 이론은 마르크스와 레닌이 정립했다. 그람시는 이에 문화적 투쟁 이론을 덧입혔다. 교육, 예술, 종교, 대중매체 등 문화의 전 분야에서 사회주의 사상의 침투를 노렸다. 그의 실질적인 영향력은 사회주의 사상가 중 최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그가 시에나에선 나름 많은 존경을 받는 모양이다. 그의 이름을 딴 공원이 도심 내에 있으니 말이다. 다분히 아이러니하다. 자본주의의 첨병인 은행의 탄생지에 사회주의의 지존이 공존하니 말이다. 이것도 시에나의 매력일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느긋하다. 전통을 사랑하고 천천히 음식을 즐기며 주위 사람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한다. 슬로우 리빙, 슬로우 푸드 운동이 이곳에서 시작된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패스트 리빙에 대한 저항이요 전통을 지키려는 생존 본능이다. 반면에 느긋한 분위기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은 가끔 당황할 수도 있다. 로마공항에서 시에나로 올 때 버스 탑승구를 찾느라 한참 고생했다. 버스티켓에 쓰여있는 탑승구 정보가 틀린 것이다. 버스터미널 카운터에도 물어보았다. 그들 또한 엉터리 정보를 줬다. 결국 스무 개가 넘는 탑승구를 헤맨 끝에 겨우 찾았다.
이제 다시 로마공항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곳 시 외곽 버스정류장엔 아무런 탑승구 정보가 없다. 티켓에도 없다. 버스회사 웹사이트는 완전 무용지물이다. 정류장엔 카운터조차도 없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다들 느긋해 보인다. 어디에서 무슨 버스를 타는지 다들 아는 듯한 표정들이다. 탑승 시간이 거의 됐는데 로마공항행 버스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옆 사람에게 어딜 가냐고 물어봤다. 자기는 볼로냐로 간다고 한다. 흠…
불현듯 Toto Cutugno의 노래가 뇌리를 스친다.
"Lasciatemi cantare. Perché ne sono fiero. Sono un italiano. Un italiano vero."
"내가 노래하게 하라. 나는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이탈리아인이다. 진정한 이탈리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