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발상과 인내심이 가장 필요한 곳
요즈음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로 무척 혼란스럽다. 유가가 단 몇 주만에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역사적으로 석유, 천연가스, 정유, 석유화학 등의 에너지 관련 산업은 굉장히 높은 가격 변동성을 보인다. 이들 산업은 경제와 산업적 요인 외에도 지정학적 요소가 수급과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산업 외에도, 철광석, 석탄, 알루미눔, 시멘트, 철강 등의 원자재 (commodity) 섹터 역시 굉장히 높은 변동성을 가진다.
원자재나 에너지 섹터에 투자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많은 전문 투자자들도 이들 섹터의 특이성과 높은 변동성 때문에 어려워 하기도 한다. 그러나 투자 원칙을 잘 지키면 이들 섹터는 비교적 명확하게 투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의 경우도 이들 섹터에 대한 투자 성과는 다른 것들에 비해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왜 그럴까?
투자자들이 흔히 쓰는 말 중에 "buy high, sell low"라는 표현이 있다. 즉 PER이 높을 때 매수를 하고 PER이 낮을 때 매도를 하라는 뜻이다. 얼핏 모순으로 들린다. 사실 이 말은 역발상의 필요를 뜻하는 말이다. 통상 에너지나 원자재 기업은 경기 하강기에 이익, 즉 PER의 분모가 되는 E(earnings)가 급감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PER이 급상승하는 것이다. 반대로 경기 상승기에는 굉장히 큰 이익을 보기 때문에 PER이 급감한다. 이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단순히 PER이 낮아서 저평가 종목으로 간주하여 매수하다가는 큰코 다친다.
그럼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 바로 PBR이다. 이 지표는 순장부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익의 변동성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오히려 밸류에이션 사이클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경기 하강기에는 주가, 즉 P가 내려가고 대신 순장부가인 B(book value)는 변동이 미미하기 때문에 PBR이 하락한다. 이보다 명확한 밸류에이션 시그널은 없다.
또다른 중요한 특징은 이들 섹터의 경기사이클과 주가의 밸류에이션 사이클은 역사적으로 매우 반복적이다. 예를 들어, 원자재 가격이 일정기간 낮게 유지되면 섹터내 투자가 감소하여 수급이 회복된다. 따라서 원자재 가격이 다시 오르게 된다. 여기에는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방향성(secular trend) 보다는 반복적인 사이클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PBR에 근거한 "buy low, sell high" 투자 원칙은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PER은 잊어버려야 한다.
또 한가지 주의할 점은 가격 사이클을 길게 보는 것이다. 현재의 에너지나 원자재 가격을 투자 기준으로 보면 큰일난다. 이러면 고점에 물린다. 역사적인 사이클 전체의 평균 가격을 밸류에이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 10년 평균 유가 대신에 지금의 배럴당 100불을 밸류에이션 기준으로 삼으면 투자에 실패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만약 역사적 원유가격이 평균 70달러라면 이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서 에너지 종목을 매수하고, 지금 같이 100달러가 넘으면 아예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현재 주가는 현재의 원유가를 반영하고 있으나, 역사적으로 100달러 수준의 유가는 장기간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원자재 종목에 대한 접근법도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이들 섹터에 대한 투자는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어떤 경우에는 저평가 국면이 몇년씩 계속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매수 타이밍에 좀 더 신경을 쓰면 어떨끼?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들 섹터의 주가상승은 보통 단기간에 급격히 이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냥 저가 매수에 끈기있게 기다리면 된다. 다만 재무제표가 불안한 회사는 가급적 피해야 한다. 자칫 장기간 경기 하강에 부도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시장에서는 반도체 주식이 가장 뜨겁다. 많은 사람들이 PER에 집중해 저평가를 외친다. 나의 견해로는 여기에는 상당히 주의해야 할 점들이 몇가지 있다. 이에 대해 나중에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