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의도에 38층에서 일한다. 지금 하는 일의 장점은 그게 전부다. 그저 높이 있는 것. 아아, 또 있다. 나름 나의 시간이 많다. 덕분에 회사에서도 글을 퍽 쓰는 편이다.
이곳에서 보는 장면들은 참 다채롭다. 수많은 빌딩들, 자동차들, 인파, 그리고 여의도 공원, 그리고 한강. 그중에서 제일을 뽑으라 하면 어렵기는 하나 한강 위에 끝없이 보이는 다리의 연속이다. 순서대로 마포대교, 서강대교, 양화대교, 성산대교 그리고 날씨가 좋으면 월드컵 대교도 살짝 보인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풍경은 그 끝으로 갈수록 다리의 존재가 희미해지는 풍경이다. 있는 듯 없는 듯 그 애매하고 모호해지는 풍경이 오히려 그 다리를 보려고 애쓰는 순간이다. 시각의 한계이자, 인지의 한계 속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보려는’ 시도를 한다. 그래서 뇌의 생동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또 좋아하는 풍경 중 하나는 흐릿한 날의 풍경이다. 이곳은 꽤 그 층수가 높아서 구름이 많이 끼는 날이면 모든 유리들이 흰색으로 뒤덮인다. 때론 그 흰색 입자들 사이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압도적인 구름의 존재에 나라는 존재의 사소함을 느낀다.
이런 흐릿한 날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그 흐릿함이 사라졌을 때의 순간도 있다. 햇빛이 구름을 몰아내는 격인데,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던 이 구름은 햇빛만 보면 그 존재를 감춘다. 녀석도 햇빛은 무섭나 보다. 이 대비적인 순간이 참 인상적이다. 압도될 것 같던 순간도 손짓 한 번이면 사라지기도 하니까.
가만 보면 이 구름이라는 놈은 사랑인 것 같다.
구름 속에서 보는 구름은 세 가지의 속성이 있다. 흐릿한 날의 구름 속에는 압도적이고 웅장함이 있다. 그리고 맑은 날의 구름 속에는 풍성함이 있다. 세 가지 속성의 공통점은 사람보다 크다는 점인데 사랑 또한 이 점에서 마찬가지다. 그 거대한 감정의 순간들이 가득 차 있다.. 그게 웃음이든 행복함이든 다툼이든 뭐든 간에.
가득 차 있다고 사라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5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의 실수가, 한 번의 손짓이, 몸짓이, 것보다 더 순간적일지라도 햇빛을 본 구름 마냥 갑자기 사랑은 사라질 수 있다.
거대하고 가득해 보이고 무거워 보여도 결국 한 순간에 눈앞에서 그 존재를 감출 수 있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래서 사랑은 무거운 구름이다. 사랑은 구름을 안고 있는 것처럼 나를 가득하게 만든다. 좀 더 정확히는 가득하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가득함에는 무게가 있다. 그 가득한 정도만큼 무게도 가득하다. 질량이 무거우면 무거워질수록 주위의 것들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사랑이라는 구름은 우리의 감정을 끌어당긴다. 그 속도는 매우 빨라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중독성은 상당히 강력해서 그 사랑의 맛을 계속 맛보려 한다.
하지만 결국 사랑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을 수 도 있는, 실존하지만 허상이기도 한 상태이다. 그리고 허상의 상황이 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우리의 짧은 한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순간을 통제해야 한다. 순간이 달콤해 보이더라도 그 달콤함이라는 칼은 결국 나를 향해 있다. 누군가는 이를 부담이라 여기겠지만, 이는 부담감이 아닌 책임감이라는 이름이고 그 뿌리는 행복의 지속성에 대한 염원에 있다.
사랑은 무거운 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