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많이 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적지 않게 타긴 했다. 난 여행을 좋아하는 편인 것 같다. 물론 그 여행을 결심하기까지에는 많은 즉흥적인 순간들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비행기가 좋다. 항공권을 예약하고, 그 전날엔 짐을 싼다. 그리고 당일이 되면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에 가 여러 귀찮은 심사를 받는다. 그 과정마저 기분 좋을 뿐이다.
그렇게 게이트를 통과하면 밥을 먹는 시간이다. 비행기를 많이 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의 루틴은 있다. 인천의 출국장에는 던킨 도너츠가 있는데 항상 그곳에서 ‘카카오 허니 딥’이라는 싸고 퍽퍽한 1,700원짜리 도넛과 커피를 산다. 그리곤 우걱우걱 먹기만 한다.
(도넛은 차가워야 한다. 그리고 뻑뻑해야 한다. 그래야 도넛을 입에 머금고 커피를 마실 때, 그 커피의 순간순간들이 모두 느껴진다. 뻑뻑한 빵 사이로 들어오는 씁쓸한 차가운, 원두를 희석시킨 차가운 얼음물은 나에게 행복을 준다. 그 행복을 위한 도넛이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기차를 탈 때에도 늘 그렇다. 서울역으로 가는 공항철도를 타고 KTX 로비까지 쭉 가다 보면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한다. 그 에스컬레이터의 끝엔 마찬가지로 던킨 도너츠가 있다.
어쩌면 도넛과 커피는 나를 다른 장소로, 물리적으로 이동시키는 행동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의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도넛과 커피를 마시면 그제야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러 간다. 정신없이 타고난 뒤에야 비행기가 보인다.
비행기는 무섭기도 하다. 온전히 나의 목숨을 그저 나와 같은 불완전한 한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억울하게도 그 사람의 실수가 나의 생명을 정하는 불합리한 이동 수단이다. 하지만 자동차도 마찬가지이며, 그 사고의 확률이 교통사고보다 낮다는 팩트를 떠올리며 항상 이륙에 임한다.
그리고 비행기는 설렌다. 인간에게 불가능한 “비행”의 경험을 제공해 주는 것도 설레지만 다른 이유가 있다. 일종의 탈의실의 역할을 비행기는 하기 때문이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나는 비행기에서 나라는 사람을 갈아입는다. 소심하고, 보수적이고, 안전지향적인 성향의 나를 한국에 두고 도착하는 장소에서 지낼 새로운 나를 고른다. 대게 그 모습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평소 희망하지 않는 모습을 고르려 최대한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비행기란 장소는 기존의 나의 끝임과 동시에 새로운 나의 시작이다. 이 과정들은 아주 믿음직한 시차라는 커튼 속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아무도 모른다. 오직 나만 알고 있다.
아마 내가 대부분의 비행을 긍정적인 비행의 경험으로서 경험하였기에 도출된 주관적인 생각일 확률이 높다. 난 아직 하기 싫은 비행을 하진 않았으니. 하지만 나완 달리 힘든 비행을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물리적 이별, 대한민국에서의 1등 시민 포기, 문제가 생겨 급히 비즈니스 출장을 해야 하는 경우 등 헤아릴 수 없는 힘든 비행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도 성립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재회, 계약 성사를 알리려 가는 아테네 군의 심정, 과거를 잊는 새로운 출발처럼 행복한 비행도 존재한다.
그래서 비행기는 꿈이 많다. 그 꿈엔 종류가 다양하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가는 기대와 희망의 꿈.
다시 기존의 현실이 되어버린 슬픈 꿈.
이 서로 반대되는 성격의 꿈들은 비행기 안에서 끊임없이 싸운다. 긍정적인 꿈들은 그 부푼 희망으로 끝도 모르게 비행기를 끌어올린다. 마치 추락하지 않을 것처럼.
반면 부정적인 꿈들은 그 비행기의 고도를 한없이 낮추려 한다. 일종의 방어기제의 한 종류처럼.
이 난기류 속에서 난 어디에 있을까.
때로는 고도를 상승시키기도 한다. 때로는 고도를 낮추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에게 양가감정이 존재한다. 그 모순의 존재를 인정하며 나의 고도에도 가치평가 없이 그저 그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이 답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차라는 커튼 속에 나를 숨긴다.
비행기엔 꿈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