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by Henry

글을 적는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나를 자랑하고 싶어서


누군가를 설득하고 싶어서


공감과 위안을 얻고 싶어서


달라지고 싶어서


많은 이유가 있을 테다.


생각해 보면 그 어떤 글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내겐.


특히나 공감과 위안이란 타인이 해줄 수 있는 게 아닌 스스로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서점에 자주 보이는 흔한 “괜찮아”라는 주제의 책들을 보면 역겨울 정도다.


그렇다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랑인 걸까?


생각해 보면 아무 이유가 없다. 그래서 주제도, 내용도 그 무엇 하나 정해진 대로 가는 법이 없다.


애초에 정해지지도 않고.


글은 예술일까? 예술엔 뭐가 있을까. 미술, 음악 정도가 생각난다.


사견으론 둘의 공통점은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글을 통해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일까.


얼추 맞는 말 같다.


한편으론 두려운 것 같기도 하다.


이 세상을 선물 받아 아무런 흔적 없이 간다는 것은.


그래서 글을 적는 것 같다.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어쩌면 나의 글은 그저 출력기에 불과하다.


나의 생각을, 기억을 그저 적는 기계의 작동 과정처럼 그저


적을 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맞이하는 그 모든 순간들을 적고 싶다.


아, 맞이하지 않는 순간마저 적고 싶다.


모든 것들에겐 모든 것들의 순간이 있다.


풀, 바다, 바위, 나무, 햇빛, 바람, 새, 강아지, 사람.


그들만의 순간들이 있다.


그중 대부분은 사람들에 의해 놓쳐진다.


나를 포함한 인간이라는 종은 한없이 이기적이라


보고 느끼는 것들 만을 보고 느끼고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난 나로부터 멀어지고 싶다.


그저 사진기처럼. 그저 기계처럼 모든 것들의 순간을 담고 싶다.


행운인지 무엇인지 몰라도 나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쓰다 보니 알겠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저 모든 것들의 순간을 만나기 위함이다.


인간이라는 이유로 그 순간들이 놓쳐진다는 건 참 잔인한 일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난 글 적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


그러니 너의 순간들에 나의 순간이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너희가 나를 초대하듯 나도 너희를 초대하려 한다.


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한다.


나는 너를 바라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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