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기준 남자의 평균 기대 수명은 81세, 여자의 평균 기대 수명은 87세.
그냥 100년이라고 할래.
100이라는 숫자가 주는 안정감과 만족감이 있잖아.
그리고 우리가 6,70살이 되고 나면 의료 기술이 더 발전해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그냥 100년이라고 할래.
20대 초반에 만난 너는 이미 20년을 써버린 상황이야. 나도 마찬가지고.
생각해 보면 20년이라는 시간은 지금의 우리에겐 너무나 빨리 흘렀던 것 같아.
그 시간을 지나왔기에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리 다를 것 같진 않아. 너와 함께할 나머지 7~80년이. 지금의 20년이 지나왔듯이
앞으로의 20년씩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오히려 빠를 것 같아. 시간은 가속이 붙거든. 시간의 유한성을 생각한 시점에서부터, 시간이라는 놈은 눈치라도 챈 것 같아. 그래서 더 빨리 사라지는 것 같아. 우리의 5년을 보면 알 수 있어.
100년이라는 시간은 참 짧아.
난 26년 동안 나라는 사람조차도 알지 못했어. 지금도 모르겠고 말이야. 하물며 너는 어떨까. 너도 마찬가지겠지.
사랑은 서로가 서로의 부모가, 아이가 되는 거 같아.
너를 만나, 나를 만나 어려지는 너와 나의 모습을 보면 단계가 있는 것 같아.
처음 우리가 만나 약 5년 동안이라는 시간은 서로의 슬픔을, 행복을, 기억을, 추억을, 순간들을, 흔적을 맞이하면서 같은 출발선으로 준비하는 단계였던 것 같아.
그다음은 이제 서로가 0살이 되어버려. 각자가 가지고 있던 고유의 것들에서부터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하거든. 새로이 출발하는 거야. 그동안 혼자 살아왔다면 이제는 같이 살아가기 시작하는 거지. 혼자 지내왔던 22년은 적립되지 않아. 둘이서는 지내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게 조금씩 서로의 생활에, 영역을 방해하기도, 침범하기도, 차지하기도, 허락하기도, 초대하기도 하는 거야.
그렇게 서로를 통해 0살부터 살아가는 것 같아. 그리고 알아가기 시작하는 것 같아. 나는 너를 통해 나를, 너는 나를 통해 너를. 일종의 비교, 대조 군이 생기는 거지. 그래서 너의 눈을 보는 게 좋은 것 같아. 너의 눈을 바라보다 보면 너의 흑갈색 눈동자에, 너를 바라보는 나의 상이 맺히거든. 네가 아니면 볼 수 없을 나의 모습이 네 눈에 있어.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키워주고 혼내고 보듬어주면서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 같아. 서로가 보모인 셈이지.
그런데 변수가 있어. 사람의 사고 과정은 극단적으로 개인적이라서 나는 나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너의 생각을 절대로 알 수는 없거든. 너도 나의 생각에 확신을 느끼지 못할 테고. 그래서 슬프게도 우린 서로의 비언어적인 행동들과 언어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어. 그것들을 믿어야만 하니까.
그래서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아. 너라는 사람을 알아가기에는. 아니 어쩌면 나에게 아무리 많은 시간이 허락된다 하더라도 너를 알 수는 없을 것 같아. 본질적으로 나는 네가 될 수 없잖아. 되고 싶지만 말이야.
그래서 우리에게는 100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걸지도 몰라.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적어도 이 정도는 있어야 너라는 사람을 어림짐작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확실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하지만 난 네가 알고 싶어.
네 모든 것들을 알고 싶어.
네가 왜 우울해하는지도.
네가 왜 행복해하는지도.
어떤 슬픔들이 너를 무너지게 할 지도.
어떤 행복들이 너를 일어나게 할 지도.
너의 본질을 알고 싶어.
그러니까 유통기한처럼 이 짧디 짧은 100년이라는 너의 시간에 나를 초대해 주었으면 해.
나도 너를 초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