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by Henry


이따금씩 누군가의 순수한 웃음을 볼 때가 있다. 그 웃음이 정말로 “순수”한 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 사람을 특정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순수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 웃음은 평생 나에게 “순수한” 웃음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누군가의 순수한 웃음을 볼 때면 아무런 것도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지금 그렇게 웃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이, 그 웃음만 있으면 된다는 듯이. 그 웃음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웃음이기도 하다.


그 웃음은 옛날의 것이기도 하다. 나로 하여금 그 상대방의 과거를 보게끔 만든다. 그 사람이 기억도 하지 못할 그 어리고 어린 시절에, 어떻게 웃었는지가 보인다. 입 주위에 주름의 구겨짐, 웃었을 때의 볼의 움직임, 웃었을 때의 눈이라던지 그런 것들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다. 그 과거를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아도 말이다.


그 웃음은 중독적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웃음을 볼 수 없는 까닭일까? 웃음에 전염성이 있는 것일까? 웃음을 보고 있노라면 나 역시 마음 아래에 있는 무엇인가가 웃으려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더욱 그 순수한 웃음이 보고 싶다. 조금은 순수해지고 싶은 걸까?


그런 의미에서 웃음은 물이다. 그냥 시중에 파는, 다른 화학성분이 섞인 물이 아닌 순수한 물 그 자체, 즉 정제수이다. 이 순수한 물은 역설적이게도 절대로 순수하지 않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이 순수한 물을 절대로 그 본질에 맞게 마실 수 없다. 그 어떤 화학성분도 없이 경도가 0인 정제수는 우리의 입술, 입안에 닿는 순간 세균에 접촉이 되어 그 본질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 순수한 웃음도 마찬가지다. 마치 순수한 물과 같아서 그 웃음을 보고 웃는 웃음은 그 순수함을 상실한 2차적인 상태에 불과하다. 그저 그 웃음이 1차적으로 누군가의 얼굴에서 펴졌을 때만이 그 순수함을 확인할 수 도 있는 순간인 셈이다.


부럽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부럽다. 그런 웃음을 짓는다는 사실 그 자체가 무기력하게 부럽다.


미안하다. 그 애의 순수한 웃음 앞에선 나의 부끄러운 모습들이 벌거벗어지는 기분이다. 그저 웃기만 해도 충분할 텐데.


나 역시 그런 순수한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아니, 나는 순수해지고 싶은 것일까? 아니, 나는 걱정이 많아서 그런 웃음을 짓지 못하는 걸까? 생각해 보면 걱정이라는 것들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불안에 근거한 것일 텐데, 그저 한번 더 웃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왜 나 혼자서는 그런 웃음을 짓지 못하는 것일까?


이제 조금 알겠다. 짓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 웃음을 확인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확인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서 확인이 가능하다. 웃음이란 혼자가 아니다. 최소 2명이 필요한 것이 웃음이다. 웃음이란 마치 대화와 같아서 혼자 웃는 것보다는 나의 웃음을 통해 상대방의 웃음을 보고, 상대방의 웃음을 통해 나의 웃음이 생기는 것이다. 자그마한 미소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의 옛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어린 시절 순수했던 웃음의 흔적을 보여주며, 서로의 순수함을 통해야만 스스로가 순수해질 수 있기에, 우린 혼자가 아닌 서로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팔로워
작가의 이전글꿈이 되어버린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