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멋있었다. 특히 서양권의 외국인들을 보면 왜들 그리 잘생겼나 싶었다.
극명한 차이점 때문이었을까 유독 동양인의 특징을 가진 내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동양스러움이.
그래서 어릴 적부터 영어가 재밌었다. 잘하진 못해도 뭐라도 영어로 궁시렁거리는 것조차도 재밌었다. 그리고 가끔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싶었다. 질투가 나기도 했었고 부럽기도 했었고 욕심이 나기도 했었다.
문화 사대주의. 알고 있다. 그게 뭔지.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상태를 설명하기에 적합한 단어였으니까. 특히나 그 사대는 서양을 향해 있어 그저 서양 것이라면 좋았다. 설령 사실이 아니더라도 객관적으로(주관적이었지만)도 좋아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그 사대주의는 닿을 수 없는 무기력함이 되지는 않았다. 영어가 재밌었기에 다른 과목에 비해 영어를 꾸준하게 했었고, 그로 인해 영어 성적은 나름 상승했다. 그렇게 운 좋게도 영어로 대학에 진학했고, 편입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교환학생도 갈 수 있었다.
의외로 교환학생은 빨리 갈 수 있었다. 나의 역마를 위한 자극제가 빨리 되고 싶었던 걸까. 우연찮게 교환학생 공고를 2주 전에 보았고, 우연찮게 성적을 맞출 수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학기를 미국에서 수강하게 되었다.
그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두고 온 것들이 너무 많아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꿈에 그리던 미국을 직접 간다는 그 부푼 마음이 더 거대해 비행기를 이륙하게 만든 것 같다.
그렇게 5~6개월을 미국에서 지내게 되었다. 여러 사건 사고도 많았지만 나와 그 문화가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유학생인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거주 기간 1년 이하는 다 좋다고 말한다고 한다. 1년 이하는 거주가 아니라 여행이라며.
그래서 궁금했다. 1년 이상 거주가 타지 생활을 힘들게 한다는 말은 1년 이상 거주한 사람들만이 말할 수 있는 일종의 허세 같았다. 그런데 그게 너무 갖고 싶었다. 그 허세를 부리고 싶었다. 그 힘듦을 알고 싶었다. 직접 내가 겪고 내가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역마살, 나의 방랑병은 시작되었다.
그 역마를 가진 채로 미국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문자 그대로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의 감정들이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생생히 살아있기 때문인데, 그 순간은 나의 역마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진 몰랐다.
같이 지냈던 친구들이 공항에 바래다주었고, 비행기에서의 간식도 챙겨주었다. 그때까지도 몰랐다. 그냥 가야 하니 갔다.
비행기를 타고난 직후에도 몰랐다. 피곤한 탓이었을까.
시간이 조금 지나야 알았다. 아팠다. 더 정확하게는 심장 정 가운데, 내 가슴의 왼쪽이 시큰했다.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은 나의 현실이 되었었던 부푼 꿈, 그 현실이 지금 이 비행기를 통해 다시는 닿을 수 없는 꿈의 순간이 되어버리는 도중이었다.
시렸다. 다시 이 현실을 느낄 수 있을까?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꿈만 같던 현실이 이젠 멀어져 가끔 과거를 상상하며 정신적인 위로나 해야 하는 꿈이 되어가고 있었다.
알고 있다. 잃어버림을 느끼기에 더욱 소중했던 것임을.
하지만 그 기억들을 단순히 소중”했던” 기억으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돌아오기로.
설령 힘들고 한국이 그리워도 한번 힘들게 지내보기로.
그래야 죽기 전 후회가 없을 것 같다.
나중에는 이 글에 대한 속편을
미국에서 1년 이상을 지낸 후에 꼭 적고 싶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여전히 부러워하고 있다.
그 부러움을 간직한 채 이 글을 마무리할 테니
이다음은 너에게 맡긴다.
나에게 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