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한 편이다. 내가 말을 할 수 있는 것에도, 움직일 수 있는 팔다리가 있는 것에도, 건강한 편인 육체와 정신이 있는 것도. 그 감사함은 비단 나의 몸처럼 나의 소유물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감사한 편이다. 내가 들이마시는 이 공기도. 나의 육체를 유지할 수 있는 이 기압도. 물을 필요로 하는 몸이지만 언제나 물을 자유로이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것에도.
사실 이 감사하다는 마음은 선천적으로 발현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후천적으로 발현된 것이다.
나는 군대에서 허리를 다쳐 공익으로 전환이 되었다.
근무지는 특수학교.
주로 심한 뇌병변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들의 학교였다. 신체 나이는 14~17살이지만 그 정신연령은 5살이나 될까?
그 아이들은 걷지 못한다. 물론 팔다리는 있다.
다만 움직이지 못하는 팔다리일 뿐.
30분마다 한 번은 꼭 경련과 경직이 오는 팔다리일 뿐.
그 경직은 자신들의 부모마저 할퀴는 팔다리일 뿐.
눈은 다 달려있다.
다만 그 눈이 있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희여 멀건 윤곽으로만 보이는 눈.
초점이 잡히지 않는 눈.
사팔뜨기의 눈.
그런 눈일 뿐이다.
충격이었다. 장애를 가진 것이 기본값인 상황과 공간을 내가 버틸 수가 없었다.
솔직히, 안궁금했다. 내가 굳이 알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나의 세상이 있고 저들은 저들의 세상이 있다.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할 거면 그냥 그 존재조차 모르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실제로 아이들을 1달은 바라보지 못했다. 비정상이 정상인 곳에서 정상인 나는 비정상이었고 스스로가 그 정상임을 버티지 못했다. 괜한 죄책감과 미안함만이 있을 뿐이었다.
‘너희가 그렇게 태어나는 것을 선택하진 않았던 것처럼, 나 역시 이렇게 태어나는 것을 선택하지는 않았어. 그저 내가 운이 조금 더 좋았을 뿐. 내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나의 죄책감을 위한 핑계였다. 하지만 맞는 말이지 않은가. 그렇게 나의 뇌를 감쌌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래도 1달은 버텼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누군가는 절망적으로 원하는 것들임을 알고 난 후에는, 그곳에 있는 모든 하루가 죄책감이었다. 그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서는 그저 열심히 일을 하는 것.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웃었다. 내가 잘하는 거라고는 그저 잘 웃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게 2달이 채 지나지 않아, 변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아무런 것도 변하지 않았다. 1달에 한 번은 아이들이 중환자실로 가는 것도. 1년에 1명은 꼭 죽는다는 것도.
변하는 건 나였다.
아이들은 항상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다만 아이들을 보는 나의 눈이 바뀌어졌다. 아마도 눈빛이 바뀐 거겠지.
아이들은 자기들이 불편한 건지도 모른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을 테니 당연한 법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팔다리를 가지며 자유로이 움직이며 자유로이 말하는 나를 부러워하지도, 질투하지도 않는다. 그저 순수한 눈으로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한다. 물론 말을 하지 못하지만 행동으로 보여준다. 이를테면 양치를 할 때 힘이 들면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그럼 나는 도와준다.
그 과정에는 어떠한 감정도 없다. 그저 도움만 있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잘 들리지도 않는 발음으로 말을 하려고 노력한다.
“ㄱ..감..ㅈ..자..하..한…ㄷ..다.”
고맙단다.
뭐가 고맙단 말인가.
나라면 화를 내겠다. 이런 나 자신이 너무 싫고 불행해서 모든 것들에 다 화를 내겠다.
부모한테도 화를 내겠다.
나는 왜 걷지 못하냐고.
나는 왜 말도 어눌하냐고.
나는 왜 평범한 아이가 아니냐고.
창문 밖으로는 멀쩡한 녀석들이 가방을 메고 뛰어다니는데
왜 나는 휠체어 전용 버스에서 겨우 끈 4개로 고정된 채로 바라만 보아야 하냐고.
이렇게 만들 거면 낳지를 않았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도대체 너희들은 뭐가 그렇게 고마운 거냐.
나조차 너희들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사람한테 도움을 받고 고맙다고 하지 말라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차라리 화를 냈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차라리 그러면 내가 죄책감만 가질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창피했다.
이런 부끄러움도 팔다리를 가졌다가 잃어버릴 상황을 상상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결국 나는 멀쩡한 사람의 시야로 녀석들을 바라본 것이다.
반면에 녀석들의 눈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눈에는 처음부터 부러움도, 질투도 없어 보인다.
처음에는 그게 포기와 체념의 눈인 줄 알았다.
나였어도 그랬을 테니까.
하지만 그 눈은 수용과 인정의 눈이었다.
그래, 녀석들은 받아들인 거다.
그래서 창피했다.
나는 녀석들보다 부족했다.
녀석들은 나보다 성숙했다.
그래서 미안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 역시 너희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그 어떤 시각도, 관점도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곳에서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너희가 도움이 필요하면 당연히 도와주고, 나도 너희랑 스스럼없이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하고. 너희가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해주고.
이 모든 것들을 감히 봉사하는 마음으로도 생각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너희들과 같이 지내면서 그 어떤 뿌듯한 마음도 들게 하지 않겠다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최선의 존중임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참 불공평하다. 순전히 운이다. 내가 이렇게 태어날 확률, 너희가 이렇게 태어날 확률.
그 숫자는 참 잔인하다. 어쩌면 그 숫자가 내가 되었을 수도. 너희가 되지 않았을 수 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숫자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감사해야 한다. 모든 것들에 대해.
그리고 도와야 한다. 아무런 긍정적인 감정 없이.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고, 그 확률은 죽기 전까지 항상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