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자주 걷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는, 걸음을 통해 원하는 바를 느낄 수 있을 때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보통은 새로운 장소 혹은 추억의 장소를 걷는 것을 좋아한다.
추억의 장소라 함은 아주 뻔하게도 고향이 되겠다.
도봉구 방학동의 초당초등학교 앞 우성아파트. 아직 걸어보진 않았지만 늘 다시 하루 종일, 그다음 날도 걷고 싶은 장소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이 묻어 있는 노원구의 은행사거리. 그 거리도 늘 걷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곳이다.
추억이, 기억이 있던 곳을 걷는다는 것은 비생산적인 활동이다. 오직 걷기 위해 그 장소를 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다시 복귀하는 것조차 너무나 귀찮다. 시간도 돈도 잡아먹는다.
가만 보면 그런 장소들이 생각나는 이유는 나 자신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장소들 속의 나는 아직도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곳곳에 과거의 시간선이, 그 시절의 내가 가득하다. 그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물론 힘이야 얻을 테지만은) 반대로 지금의 내가 더욱 선명해진다.
달라져 버린 신장, 몸무게, 생각, 사고, 걱정, 주위의 것들, 하물며 옛날 아줌마라고 놀리던 또래 여자아이까지. 그 모든 것들이 달라졌다. 본질조차 달라졌을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그 형태는 달라졌음이 분명하다.
그 차이를 통해 나는 나를 더욱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를 느끼는 방식에는 당연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론 걷는 것을 선호한다.
과거의 내가 수도 없이 걸었을 이 거리들, 셀 수 없이 남겼을 발자국들을 괜스레 맞춰보기도 한다. 이유야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야만 이 시간 여행을 더 실감 나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추억의 장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장소도 그렇다.
일본, 유럽 등 수도 없이 걸었던 곳은 많지만 그래도 딱 하나 꼭 적고 싶은 장소가 있다.
하와이였다.
당시 하와이를 가게 된 계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봄 방학 때 여행을 가길래 별 생각이 없었던 나는 1.5주일 동안 그저 농구와 수영만 할 생각이었다. 부족했던 슛 연습을 하기엔 좋은 기간이었기에.
여행을 갈 생각은 없었다. 돈을 아끼고 싶었고 남들이 여행을 가길래 따라서 가고 싶지도 않은 곳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차가운 3M 깊이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던 도중, 문득 난 항상 물을 좋아했던 것이 생각났다.
사실 역사나 지리는 잘 모르지만, 그저 ‘물’이라고 하니까, 하와이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하와이를 다음 날 갔다. 짐은 없었다.
사실 계획도 없었다. 그저 하와이가 물이 유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와이에 가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하와이 친구를 사귀게 되어 그 친구에게 로컬 스폿을 알려달라 했고 그렇게 ‘Mermaid Caves’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꽤나 도심에서 먼 지역이라 4시간은 이동을 해야 했다.
어차피 시간이 많았던 터라, 가기로 결심했다.
다만 어느 정도는 걸어서 가고 싶었다. 이 하와이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선 날 것으로 이 자연들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렇게 바지만 입은 맨몸으로 아쿠아 슈즈로 고속도로를 3시간가량 걸었다.
그때 느낀 것들은 지금도 그대로다.
하와이는 태양이 크다. 태양이 실제로 더 커서 햇빛이 항상 있고 심지어 강하다. 그 강렬한 햇빛아래에서 등이 실제로 익는 것을 느끼며 그냥 걸었다. 맛이 있었다. 실제로 지평선 끝까지 도로다. 그리고 왼쪽에는 바다가, 오른쪽에는 크나큰 분화구 같은 산이 있다. 그 사이에 있는 나라는 존재는 그 존재함조차 무안해질 정도로 작다. 그 무력함과 웅장함을 동시에 느낀다는 것은 은근히 무서운 일이다.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지는 모른다. 배는 고파온다. 목은 말라온다. 그렇다고 마음껏 먹고 마실 수는 없다. 화장실이 어디 있을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물과 음식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아껴 먹어야 한다. 가진 거라곤 3L짜리 생수통과 선글라스, 땅콩버터맛 초코바 3개, 파인애플 통조림이 끝이었다. 그렇게 거대한 자연 사이를 죄라도 지은 것 마냥 잔뜩 긴장한 채로 그저 걸었다.
그렇게 목표한 곳에 도착했고, 마찬가지로 그저 해변가에 3시간은 누워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와이에서 서핑도, 관광지도 가봤지만 그때 그 걸었던 경험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고 그립다.
뭐랄까, 다른 것들은 인위적인 경향을 띄지만 그 걸었던 것은 하와이라는 곳을 당연히 100%는 아니지만 1%라도 제대로 그 본질을, 있는 그대로 느꼈던 덕인 것 같다.
물론 남은 것은 까맣게 타버린 피부와, 전신 화상이긴 했지만. 단연코 후회는 없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처럼 추억의 장소도, 새로운 장소도 걷는 것도 좋지만 그런 장소에 그저 맨몸으로 누워서 한껏 그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받아들이고 싶다. 특히나 자연이라면 더더욱이 그러하다.
놀려도 좋다. 비웃어도 좋다.
하지만 난 남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여생을 살다 보면, 기껏해야 순간(혹은 조금 긴 순간) 마주칠 사람들의 진심도, 관심도 없는 말 한 두 마디에 의해 나라는 사람은 사라지게 된다. 나만이 오직 내가 숨을 멎을 때까지 나와 함께 있는 녀석이다.
난 나와 함께 살고 싶다.
난 걷는 것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