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by Henry


날이 선선해졌다. 24년의 11월 15일. 원래라면 선선한 날이 아닌 쌀쌀한 추위에 하루를 시작해야 할 시기이나, 따듯해져 버린 지구는 11월도 따듯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건 오후1시의 출근 길의 햇빛은 여전히 머리카락부터 쪼리를 신은 나의 발가락까지 기분 좋게 만든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은 늦게 시작해서 여전히 늦게 끝나는 편이다. 밤 11시.


누군가는 저녁이 없기에 불평을 내비칠 수는 있으나


개인적으로 아침에 활동하는 편이 더 좋은지라 내게는 적합한 근무시간이다.


늘 11시가 되면 11시 4분 혹은 6분에 오는 세 종류의 버스를 기다린다.


160, 260, 600.


물론 가끔 마포대교를 걸어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버스를 탄다.


그렇게 달리는 버스 속에선 여전히 창문을 활짝 연다.


좋아하는 노래를 대부분 듣는 편이나 가끔은 음악 없이 그저 창문을 연다.


그리곤 그저 공기를 뚫는 버스의 속도를 느낀다.


분명 공기는 가만히 있을텐데, 내가 바람이라고 착각하는 그 공기에


얼굴을 집어 넣는다. 숨을 쉬는데 어려움을 느낄 때도 가끔 있으나


그래도 그 바람을 맞는게 좋다.


바람을 맞고 있으면 나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만 바람을 맞는 상황에서는


얼굴 끝의 굴곡들이 각자 여기에 존재함을 강력히 주장하듯 얼굴의 윤곽이 그려진다.


과학은 잘 모르지만 아마 공기저항이나 그런 개념일 것 같다.


이 바람을 통해 나의 얼굴이 거기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다.


물론 이 느낌의 전제는 너무나 촉각 중심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무엇인가를 통해 나의 존재를 느낀다는 명제는 꽤나 적합한 상황이 많은 것 같다.


연애도, 결혼도, 사물도, 상황도, 직장도, 강아지도.


우리는 결국 마주치는 “추상적이고 실제적안 어떠한 것”을 통해 우리 자신을 지속해서 표현하고 드러낼 지도 모른다.


상대방을 통해 나의 감정, 나의 마음을 확인하고


어떤 물건을 통해 나의 성격이 드러나기도 하고


어떤 상황을 통해 나의 역할이 드러나기도 하고


어떤 녀석을 통해 나의 본능이 드러나기도 한다.


우린 결국 그 ‘어떠한 것’을 통해야만 우리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다.


그 말인즉슨, 우리는 우리를 더 잘 알고 드러내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로도 발전할 수 있다.


앎을 통해 드러내기도 하고, 드러냄을 통해 알기도 하듯이.


그렇다면 나를 드러내는 것은 무엇일까.


아, 명확히 있다.


글이다.


나는 나의 글을 통해 나의 불완전함을 드러낸다. 나의 글들에는 수많은 부끄러움과 불완전함과 창피함이 있다. 그것들을 글로 쓰면 옛날 초등학교 시절, 고해성사를 했던 것과 같은 느낌이다.


민망하지만 후련하기도 하고 오히려 적어놔야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도 한다. 마치 온갖 짐덩어리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 정리해놓은 느낌이다.


그래도 이런 불완전한 나조차 좋다.


일종의 자기도취라고 해야 하나.


이 불완전함 역시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이고, 이 불완전함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불완전함을. 그리고 감히 세상에 드러내려 한다. 이 드러냄을 통해 몰랐던 나를 알 수도 있을테니. 역시 충분히 좋은 경험일테니.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가 떠오른다.


완벽한 불완전성.


Perfect imperf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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