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자율주행을 하고싶었던 한 전자공학도의 이야기
나는 현재 7년차 AI엔지니어 또는 AI과학자로 첫 직장에서 계속 근무를 하고 있다. '대 AI의 시대'이기 때문에 좋은 점도 있지만, 트렌드가 매우 자주 바뀌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금세 뒤쳐지는 그런 피곤한 직업이기도 하다. 다시 돌아가도 AI를 할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지금 내 직업을 아주 사랑하지는 않지만, 이만큼 계속 나로 하여금 흥미를 느끼게 만드는 분야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내가 이 업으로 진로를 정하게 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때는 거슬러 올라가면 고3 정도로 올라갈 것이다. 나의 장래희망은 초등학교 5학년 이래로 쭉 '프로그래머'였다. 12살에 빌게이츠 자서전을 읽고 나서 뭔지 모르게 꽂히고 만 것. 그리고 초등학교 때 컴퓨터 학원도 재밌게 다니기도 하면서 나는 컴퓨터 공학을 대학교 가면 전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보니 선생님들은 모두 만류했다. 컴공을 가면 돈을 벌지 못한다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던 나는 대기업 취업도 잘 되는데 소프트웨어도 배울 수 있는 '전자공학과'로 진로를 정하고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반도체가 주류인 전자공학과의 공부는 나에게 아주 잘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공과목에서도 수학 관련 과목과 소프트웨어 과목은 나에게 흥미적으로도 적성적으로도 잘 맞았다. 4학년 때 유독 '이미지 영상처리', '병렬 컴퓨팅'과 같은 과목들을 많이 수강하고 좋은 성적을 얻었고 나는 갑자기 대학원 생각을 하게 된다. 4학년 1학기까지 인턴하고 취업을 하려던 나는 그 시절 뜨기 시작했던 미래 산업인 '자율주행' 분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대학원을 준비하게 되었다. 처음에 원하던 방식의 석사 진학은 안되었지만 내가 전공과목에서 1등을 한 과목의 교수님에게 컨택을 하고 자율주행을 꿈꾸며 연구실에 들어가게 된다.
자율주행을 연구하는 연구실이었던 우리 연구실은 사실 관련만 살짝 있고 직접적으로 차량 관련 연구를 하지 않았다. 대신 이미지 잡음제거나 초해상도 뭐 이런 영상처리에 대해 집요하게 파는 연구실이었다. 처음에 연구실 들어갔을 때는 사수가 시키는 과제를 이거저거 해봤다. 근데 내 성격이 워낙 시킨 것만 하는 성격도 아니고, 사수가 워낙 연구실을 잘 안오는 괴짜(?)이기도 하여, 나는 사수가 시킨 과제를 하고 남는 시간에 다른걸 시도하게 되었다. 블링블링한걸 보면 못참는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홍콩과기대 김성훈 교수님의 '모두의 딥러닝'이라는 강의였다. 강의는 정말 쉬웠지만 내용이 실했고, 강의를 들으며 연구실에서 하던 고여버린 방식 대신에 이 '딥러닝'이라는걸 써서 우리 연구실에서 하는 영상처리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뒤의 여정은 제법 길었는데 결론적으로 나는 딥러닝을 이용하여 영상처리를 하는 연구를 그 이후로 졸업 때까지 쭉 해버렸다. 나는 연구실에서 최초로 딥러닝을 다루는 학생이 되었고, AI 또는 딥러닝을 '도구'로서만 취급하던 교수님의 미운털을 한동안 받기도 했다. 그러나 AI 기반의 연구들은 우리 분야에서 SoTA(State-of-the-art, 최고의 성능)를 찍으면서 각광받았기 때문에 결국 내 졸업 이후로 우리 연구실 전원이 딥러닝 기반의 연구를 하게 되었다. 시대적으로 좀 빠르긴 했지만 나는 딥러닝 기반의 이미지 연구를 한 이력을 바탕으로 회사에도 동기들보다 일찍 선취업을 결정지었고, 그때 결정지은 회사에서 여전히 이미지 관련 AI를 연구개발하면서 다니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 내가 핫한 일을 하고 있다라는걸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기 앞길을 잘 파다보면 길이 나온다. 그 길이 원래 생각한 방향이 아니더라도 좋은 길일 수 있다. 나는 전자공학과에 가서 소프트웨어 공부를 꿈꿨고, 자율주행 연구실에 가서 AI를 하게 되었다. 연구실 관련 에피소드는 이거저거 또 많은데 차차 풀어보도록 하겠다. 대 AI의 시대는 이제는 주니어라고 부르기 어려운 내 경력에도 다소 벅찰 때가 많다. 하지만 고개를 들고 내 앞길을 헤쳐나가다 보면 또 다른 길이 나올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으며 내일 또 AI랑 싸우러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