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는 행복하지 않다

카뮈식 논리: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

by ㅅㅇㅎ

나는 예전에 실존주의가 철 지난 논쟁이라는 것에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 쪽의 정치, 사회, 철학 등을 접하면서 현대 사회에서의 실존주의의 대중화와 신자유주의의 관계를 포착할 수 있다. 아까 전에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었는데, 니체의 약간의 변형인 것 같다. 이론적 논의보다는 감성적 주장들이 많아 논의보다는 느끼려는 태도가 옳겠지만, 그의 부조리주의라는 이론에는 약간의 문제가 보인다.


부조리주의. 그의 사상은 우리와 독립된 세계에 의미가 없지만 한 개체는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에서 부조리가 나온다고 설명한다. 무엇을 해도 절망하고 실패할지라도 삶을 살아가는 태도, 그의 윤리학일 수도 있으며 인간학일 수도 있다. 그의 삶의 무의미성에 대한 논증이 부족한 것은 제쳐두더라도, 세계와 독립된 개체의 분리라는 이원적 요소를 그대로 갖다 쓴 것은 철학을 배운 게 맞는지 의문이 가게 되며 그의 마지막 장 시지프 신화는 버티기 힘들었다. 시지프 신화를 파해쳐 보기 전에 그의 고립된(원자화된) 존재론을 건드리겠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로 해석될 수 있다고 느낀다. 이 책 자체가 시대적 무력감(제2차세겨대전)을 견지하고 읽어야 되는 책이다. 하지만 인권과 같이 (마르크스가 비판한 것처럼) 사회적 관계를 통해 자율성을 추구하는 것도 아닌 그저 남을 피해 독립된 모나드의 자유라는 인권과도 같은 개념을 인간의 실존에 갖다 붙인 것은 그의 존재론을 평이하게 만든다고 볼 수 있으며 그의 부조리주의가 본질적이라기보다는 시대적 맥락에서 나올만한 무기력한 사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시지프 신화에서 돌을 굴리는 그를 떠올리며 그가 행복해야 한다고 상상한다는 명제는 참이지 인생의 고난을 안 느껴본 자들만이 꺼낼 말이긴 하다. 예시를 들겠다. 프롤레타리아가 자본가에게 저임금을 받으며 잉여노동, 노동한 만큼 노동가치를 얻지 못하며 잉여 노동을 통해서 생산된 이윤들은 순전히 자본가의 몫으로 들어간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은 착취다. 카뮈는 어떻게 말하겠는가? 사고(반항)하되 긍정하라! 이게 뭔 개 같은 소리인가. 그의 사고는 혁명에 지친 반동주의와 다를게 뭔가. 그의 존재론을 비판한 이유도 이와 관련된다. 고립된 개인의 존재는 독립된 실체처럼 다뤄지지만 현실은 다르다. 존재는 사회적 관계의 유동성 속에서 정의되며 탈정의화 된다. 이것은 정체성이 아니라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이 공통을 생산한다는 지점을 말하는 것이다. 지칭되지 않는 것. 그렇기에 우리는 사회적-경제적 구조의 부조리를 함께 밝혀 낼 수 있으며 같이 혁명의 양태를 산출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에게는 혁명이 결여되어 있다. 그의 혁명이란 개인의 경험에 제한된 소시민적 '반항'일뿐이다. 이런 사고관의 대중화는 현대 신자유주의에서의 고립감과도 연결된다. 사회적 매개를 원하지만 이런 것들을 통해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자본주의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만의 집착이 아니라 삶을 집착하게 만들거나 포기하게 만드는 구조에 대한 적합한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