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비는 자유가 아니에요
요즘 박사하기 쉬워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박사를 한다고 하면 '챗GPT 쓰시죠?' 하고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챗GPT 안 쓰면 바보'라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있다. 챗GPT 프리미엄을 구독하고 있고, 퍼플렉시티랑 제미나이도 사용하는 건 사실이다. 특히 영어 논문을 읽어내려가던 과거와 비교하면 지금은 훨씬 논문을 쓰기 쉬워진 건 사실이다. 영어로 된 논문을 쭉쭉 번역해주니까 번역에 드는 품이 과거보다 훨씬 줄어서 빨리 논문을 읽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문이 진짜 인공지능을 다 써주지는 않는다'.
친한 석사 언니가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교수님이 챗GPT 돌린 부분만 지적하시더라"는 것이다. 우리끼리 교수님은 교수님이다 하는 이야기를 했다. 아마 우리도 학생들이 챗GPT로 과제를 제출하면 알아보기는 하겠지만 언니 나름대로 수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딱 걸린 것이다. 쉬워진 건 사실이지만 논문을 거저 먹을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논문을 써도 써도 늘 부족하게만 느끼는 게 바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쓰고 있는 연구생의 마음이다. 지인 중에는 박사 종심을 세 번째 미룬 분도 있다. 들여다볼 때마다 수정할 거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만날 때마다 축 쳐진 어깨와 짙은 다크서클을 보며 응원하지만, 사실 나도 안다. 논문은 들여다볼 수록 부족해서 자꾸 미루게되는 그 마음을 말이다.
"두산은 6일 열린 홈 경기에서 LG를 5:4, 1점차로 간신히 꺾으며 안방에서 승리했다. 두산은 니퍼트를 선발로 등판시켰고 LG는 임정우가 나섰다. 팽팽했던 승부는 5회말 2아웃에 타석에 들어선 홍성흔에 의해 갈렸다. 홍성흔은 LG 유원상을 상대로 적시타를 터트리며 홈으로 주자를 불러들였다."
로봇이 쓴 위 기사는 무려 10년 전, 2015년에 쓰여진 것이다. 일반인 600명, 기자 164명을 대상으로 기사를 누가 썼는지 물었다. 일반인의 81.4%, 기자의 74.4%가 인간 기자가 썼다고 응답했다. 전문가인 기자들마저 인간이 쓴 기사인지, 로봇이 쓴 기사인지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게 쓰여졌다는 의미이다. 이제 우리가 읽는 책이나 기사가 인간의 것인지 인공지능의 것인지는 점차 알아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어쩌면 논문도 그렇게 될 지 모르겠다. 이미 많은 논문들이 챗 GPT로 쓰여지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그걸 정하는 것은 결국 논문을 쓰는 '나'인 것을 나는 안다.
아마 하이데거의 이름만 아는 사람이라도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말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언어는 우리 존재를 드러내는 장소이며, 인간이 그 언어 안에 거주한다는 의미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의 언어는 우리 존재의 사유방식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척도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언어에는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 경험, 삶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인간의 경험과 생각은 우리의 글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글쓰기는 단순히 무언가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삶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인간의 기억과 감정, 관계, 역사적 맥락은 글의 전반에 깊이 스며든다. 글이라는 것은 삶의 내면의 고유한 흔적을 언어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시적 언어를 통해 존재의 진리가 드러난다고 한 것이다.
나는 질적 연구로 박사를 시작하면서 내가 관심이 있는 주제를 정하는 데 무려 1.5년을 썼다. 교수님께서 '주제를 정하라'고 할 때부터 내가 가장 관심있는 분야, 내가 몇 년을 들여도 끝까지 해낼 수 있는 주제를 찾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결국 쓰고 인터뷰를 하면서 많은 부분이 바뀌었지만 그 때 그 주제를 정했기에 무려 3년째 논문에 매달리면서도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좀 지친다)
나 역시 챗 GPT, 퍼플렉시티, 그리고 제미나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성형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며 논문을 쓰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는, 최소한 '내 논문'이라 명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나의 생각과 나의 관심이 담긴 글이었다.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의 집까지는 아닐 지라도, 내가 쓴 글이라는 건 결국 나의 생각과 손을 거친 글이라는 점이다.
좀 진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챗GPT로 소설을 써서 아마존에 올리고, 그것으로 돈을 벌고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것도 안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박사 논문이라는 긴 작업에 몰두하면서 내 글이 아닌 것은 결국 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수도 없이 많이 느꼈다. 마치 인공지능 기자의 글처럼 전문가들 조차 헷갈릴 정도로 정교한 글일지언정, 그것이 내 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협업하고 도움을 받되, 결국 그 창작의 중심에는 인간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 경험과 생각을 통해 만들어진 글이 아직은 나는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