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모르는 100만 유튜버

by 이니


이것도 유튜버 Pick 이네?


세계 1위 유튜버 미스터 비스트가 만든 초코릿


나는 올리브영 가기를 좋아한다. 특히 친구랑 만나다가 중간에 시간이 남으면 올리브영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좋다. 카페랑 다르게 원하는 걸 시키지 않아도 되고, 가끔씩 필요한 것도 직접 테스트해보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올리브영에 있다보면 사실 2,3만원 쓰는 게 우스울 정도이다. 가면 신기하게도 별로 안 필요한 것 같은데 물건을 하나씩 사게 된다.


그런데 올리브영에 가면 자주 보이는 광고 문구 중 하나가 '유튜버 Pick'이다. 어떨 때는 내가 처음보는 얼굴도 있는데 100만 유튜버, 50만 유튜버로 팔로워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다. 100만 유튜버이면 사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건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 100만 유튜버가 낯설다. 100만명이 사랑하지만 정작 나에게는 너무나 낯선 이름인 것이다.


세계 1위 유튜버인 미스터 비스트가 만든 초콜릿을 우리나라 편의점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한국에 미스터 비스트가 온다면 그의 열정적인 팬(우리 반 아이들처럼)도 있지만 그저 외국인 관광객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유튜버는 내가 구독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내가 모르는 100만 유튜버


인플루언서가 늘어나면서 우리가 모르는 유명인들이 늘어났다. 남편이 가끔 나에게 추천하는 유튜브를 보면 전혀 모르는 인물일 때가 있다. 축구, 음식 요리법, 경제를 좋아하는 남편과 애니메이션, 음식 요리법, 경제를 좋아하는 나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유튜버는 전혀 다르다. 남편은 주로 고기 요리하는 법을 즐겨 시청하고, 나는 샐러드나 야채찜 같은 다이어트식을 즐겨 시청한다. 그러니 전혀 다를 수 밖에 없다. 남편은 육식맨님을 좋아한다면 나는 유지만님을 좋아하는 것이다. 나는 육식맨님을 잘 모르고, 남편은 유지만님을 잘 모른다. 이렇게 서로가 모르는 유튜버를 팔로우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 집에 살면서 이렇게 다른 세상을 본다.


나를 가두는 필터 버블



필터버블이란 사용자가 보고 듣는 정보가 온라인 알고리즘에 의해 선별되고 제한되어, 마치 거품 속에 갇힌 것처럼 편향된 정보만 접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2011년 미국에서 엘리 파리저(Eli Pariser)가 자신의 책 <The Filter Bubble>에서 처음 본격적으로 소개하면서 알려진 개념이다. 인공지능은 포털 사이트, SNS, 유튜브, 쇼핑몰 등은 사용자의 검색 기록, 클릭 행동, 위치, 친구 관계 등을 분석한다. 그리고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사용자가 "선호할 것 같은" 콘텐츠만 우선적으로 보여주게 된다.


"선호할 것 같은" 콘텐츠는 다시 말하면 개인화된 맞춤형 정보이다. 특정한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 가수에 대한 영상이 지속적으로 추천되면서 해당 영상을 시청하게끔 유도한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영상을 시청할 때 추천된 영상을 시청하는 비중은 61%로 나타났다. 우리가 선택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알고리즘에 의한 선택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필터버블은 개인화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함으로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용자는 해당 영상 추천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인식하기가 어려운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유사한 정보에 노출되게 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선택해서 해당 영상을 시청한다고 믿는다. 이런 필터버블의 효과는 에코챔버라는 정보환경으로 이어진다. 에코챔버란 개인이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는 가치관과 관점에 일치하는 정보에만 노출되는 환경을 의미한다. 자신과 반대되는 견해는 배척하고, 기존의 의견만 강화하여 취사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의 생각이 보다 강해지는 확증편향으로 이어지게 된다.


대표적으로 부동산에 대한 유튜브가 이걸 명확하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 '부동산 하락론'을 추종하는 사람은 관련된 영상을 주로 시청하게 된다. 그러면 끊임없이 하락론자들의 유튜브를 보고 듣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부동산 상승론'을 추종하는 사람은 관련된 상승론 영상만 보고 듣게 된다. 이후에는 끊임없이 부동산 상승론자의 유튜브가 추천된다. 결과적으로 하락론자는 하락론을 믿게되고, 상승론자는 상승론을 믿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에 대한 믿음은 더더욱 확신으로 굳어진다.


이런 필터버블과 에코챔버는 자신과 다른 생각에 노출되는 상황을 줄이게 된다. 결과적으로 비판적 사고나 대안적 관점을 검토할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부동산은 상승할 수도 있지만 하락할 수도 있다. 그런데 상승론만 듣거나 하락론만 들으면 자신과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나와 다른 의견을 생각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단순히 부동산을 넘어 정치에서는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자신의 정치에 대한 확신이 극단화되어 서로 다른 진영간의 대화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는 사회 통합을 막는다는 점에서도 매우 염려스러운 일이다.


필터 버블 시대에 돌아보는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독일 출생의 유대인이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뉴요커>의 의뢰로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전 오스트리아의 나치 친위대의 아돌프 아이히만을 상대로 이루어진 재판을 참관하여 기록하게 된다. 그렇게 나온 책이 수많은 논란을 일으킨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사람들은 아이히만을 악인으로 생각했다. 독일은 아이히만이라는 악인에게 죄를 전가하고 면죄를 얻고 싶어 했으며, 유대인들은 아이히만을 범죄적 의도를 지닌 괴물같은 존재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렌트의 눈에 비친 아이히만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랐다. 살짝 벗겨진 머리에 고르지 못한 치열, 자신의 가족에게는 자상했던 아버지인 아돌프 아이히만은 그저 평범한 남자였던 것이다. 사실 아이히만은 다른 사람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보는 것도 어려워 할 정도였다. 거기다 수백만의 유대인을 죽이는 데 기여했지만 자신이 유대인과 다툰 기억은 저항하는 유대인 지도자의 따귀를 때린 것이다. 따귀를 때리고도 여러 날 동안 양심의 가책을 느낄 정도로 꽤나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기여했다. 아렌트는 나치의 명령에 복종하고, 비판적 사고없이 명령을 따른 아이히만의 문제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보았다. 비판적 사고 없이 명령에 복종한 아이히만에게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논한다. 아이히만은 괴물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은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아이히만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타인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비도덕적이고 위험한 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은 어떠한가? 우리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가? 아니면 나와 같은 생각에 맹목적으로 빠져들게 만드는가? 나와 같은 생각을 끊임없이 마주할 수록 우리는 나의 견해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보다 확증편향에 빠져들기 쉽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과 소통하는 사이에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기 쉽다.


알고리즘 시대, 필터 버블은 보다 정교하게 우리의 생각을 확고하게 만들어 나간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생각해보자. 어쩌면 우리는 같은 생각만 접하는 동안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법을 배울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은 결과가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출처


2024 지능정보사회 이용자 패널조사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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